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갑순이 Feb 17. 2023

나는 공갈 수저다.

사색의 힘

사색에는 힘이 있다.

치열하게 ‘왜?’를 질문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회사 동료가 내게 물었다.

“혹시, 사회 계급이 있잖아. 금수저, 은수저, 이런 것들. 이런 걸 타파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야? 노력해야 된다 생각해?”

흙수저. 사실 나는 공갈 수저라고 말하는데, 법적으로 부모가 있지만, 없는, 그래서 사회적 보장제도 안에 들어가진 못하지만, 결국 모든 걸 홀로 해내야 했던 지난날. 그래도 집은 있었잖아라는 물음에 ‘보증금 들고 사라지던데?’라고 답했던, 소풍비, 수학여행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봤냐고 반문하는 난 공갈 수저.

그 물음에 답변했다.

흙수저가 금수저와 가장 대비되는 것은 미래에 대한 태도라 생각한다. 경제관념과 꿈이 미래를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데, 예를 들면 금수저 친구들은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부모들이 하는 투자라는 개념과 돈의 가치에 대해 배울 수 있다. 그러면서 항상 그들은 더 나은 미래를 그려나가고 이루기 위해 행동한다. 반면, 흙수저인 친구들은 당장 오늘을 살아남기 위해 급급해 미래를 그릴 여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경제관념에 대한 격차, 미래에 살게 되는 모습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때부터 고민했다. 왜 내가 사는 동네에는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사람이 많을까? 왜 밤이면 한 번씩 경찰차가 출동을 할까?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여유를 갖고 내일을 대비하며 사는 사람이 있나?

당장 우리 부모만 해도 명확한 계획 없이 그저 오늘의 재미에 취해 살았다. 투자는커녕, 실비 보험 하나 없이 가치 없는 자잘한 것을 사모으던 엄마,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대학 학비를 모으기는커녕, 아무런 경제관념 없이 그날 번 돈을 그날 써재끼기에 바빴다.    

그리고 점점 교복을 벗어야 하는 나이에 다가올수록 주변 사람들의 직업을 들여다보게 됐다. 아르바이트, 휴대폰 판매원, 배달원, 생산직. 직업을 비하할 마음은 정말 없다. 노동의 가치는 존귀하기에.

다만, 스스로 질문했다. ‘넌 저 직업에 행복할 수 있어?’

대답은 ‘아니.’ 었다.

그래서 그 틀 안에서 벗어나려 책을 읽었다. 경제 도서, 에세이, 문학. 가리지 않고 읽었던 것 같다.   

고상한 척한다는 주변의 비아냥에도 귀를 틀어막고 그저 책을 읽었다. 문제는 실천하는 방법 자체를 몰랐다는 것. 이에 대학에 가 다양한 친구를 사귀고, 그들에게 조언을 얻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었다.

청약 통장, 실비 보험, 통장 쪼개기. 책에서만 봐오던 세상이 대학 친구들은 이미 실천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벌써 본인 앞으로 모아진 주식을 부모님께 이어받아 운용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런 신세계를 보고 적잖은 충격과 부모에 대한 분노를 눌러야 했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경제 강의를 들으러 다니고, 해외여행을 가고, 공부를 했다. 내 부모가 물러주지 못한 ‘그 무언가’를 채우기 위한 노력을 혼자 해왔다.

그리고 오늘의 난, 그래도 공갈 수저 티를 벗고 ‘평범함’이라는 탈을 쓴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세상이 내게 새겼던 계급을 타파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가 없다고. 그들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 와서, 결이 달라져 버린 우리는 더는 친구가 되질 못했다고.

이런 이야기를 나만큼이나 계급 탈피를 위해 애썼던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도 무한하게 공감하며 그래서 본인도 이제 옛 인연이 없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리고 그는 곧 답을 내놓았다.

“우린 20대에 만족하며 마냥 행복해하지 않았거든. 우린 지옥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떤 미래를 갖고 싶은가 치열하게 사색하고 답을 내고 움직였거든.”

“맞네.”

“그래서 우리가 아직 친구인가?”

“무엇보다 우린, 만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만날 때마다 미래를 이야기하지 추억을 팔지 않아.”

“맞네. 추억이 없는 것도 아닌데 우린 추억보다 미래를 그리네.”

오늘에 만족하는 삶이 나쁘다, 틀렸다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삶의 형태 역시 존중한다. 그 또한 스스로 행복하면 최고의 삶인 거다. 그저, 누군가의 물음에 지난 치열함이 떠올라서, 그 시간을 견뎌낸 우리가 대견해서 기록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타인의 무례함에 상처받지 않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