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일상에서의 투쟁에 지치면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먹고사니즘이고 뭐고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 권태로움을 꾸역꾸역 참다 보면 내가 날 갉아먹어가는 그 느낌에 아무 이유 없이 주저앉아 울 때가 있다.
그럴 때 난 하나씩 작은 꿈을 그린다. 햇살을 받으며 생동감이 느껴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글쓰기, 윤문하기와 같은 작지만 큰 꿈을 그린다.
그 꿈을 이룰 때 난 마냥 행복하기도, 다음 꿈은 무엇으로 정해야 하나 고민되는 마음이 교차된다.
최근 사표를 내고 이직을 해 이런저런 낯섦에 마음이 참 불편했다. 그 와중 내 부서장은 참 어려운 사람이었다. 남에게 대는 잣대는 그 누구보다 엄격한데, 자신에게는 마냥 너그러운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자존감이 참 낮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자존감 낮은 사람들의 가장 특징적인 화법은 남을 깍아내려 본인을 올리려 하는 거다.
한날은 남자친구 이야기가 나왔고, 이런저런 사담을 나누다 남자친구가 경찰이라 말하게 됐고 자연스레 밍구는 경찰대 출신이라는 걸 이야기하게 됐다.
그러자 그는 “전 경찰대 폐지돼야 한다 생각해서”라며 맥락과 상관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뭐, 경찰대 폐지에 대해서는 찬반 여론이 갈리는 이슈다 보니 어떤 의견을 갖던 그건 자유지만, 사담을 나누던 중 내 남자친구가 경대 출신임을 밝히자, 폐지돼야 한다?
독특하다 생각했다. 그 외에도 알 수 없는 까내림을 시전하는 그를 보며 안타까웠다. 나름 배울만큼 경험할 만큼 세상을 살았는데 자신에 대한 자신감 없이 남이 가진 것에 대한 부정적 시선과 비판의 탈을 쓴 비난을 이어가는 그를 보며 지쳤다.
어쨌든 받아주다 보니, 참 힘들었다. 힘들다는 느낌이 들 때쯤, 더는 그와 사담을 나누지도 어떤 말을 이어가지도 않았다. 그는 결국 내가 받아주지 않자 날을 세우기 시작했다. 뻔하다.
자존감은 낮은데 자존심은 센 이들이 하는 그 행동. 너 내편이니? 오 내편이구나! 함부로 하는 건 아니고, 그냥 난 이런 사람이야, 어? 내 편 아니야? 그럼 너도 내 적이구나!라는 테크.
결국 난 고작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총력전을 개시했다.
그러던 어느 날 참 부질없단 생각과 왜 난 무던하지 못할까라는 자책에 반려묘를 안고 울었다.
내일 그만둔다 말할까?라는 어둠이 날 잡아 먹으려 할 때 잠시 멈췄다. 숨을 골랐다.
어떤 행복을 그릴 것인가. 어떤 행복을 꿈꾸며 걸을 것인가.
오늘, 난 내가 그리던 꿈이 무엇인지 알았다.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바다를 내려다보며, 글을 쓰고 그 앞엔 내 짝꿍이 앉아 게임 혹은 독서를 하는 어떤 하루를 그려보기로 했다.
틀에 박힌 듯 똑같이 생긴 지하철을 타고 삭막함이 감도는 회사 건물에 들어서며 똑같이 생긴 책상들 중 유독 지저분한 내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는 그런 하루 말고.
햇살의 변함을 느끼고 카페에서 틀어주는 노래에 귀를 맡기고, 내 글에 취해 바람이 살랑이는 변화를 느끼는 그런 하루는 꿈이었다.
오늘 나는 그 꿈을 이뤘다.
지지난주 금요일. 내 짝꿍은 게임을 하다 말고 “아, 다다음주 토요일에 우리 그거 갈 거야.”
“어디?”
“카라반!”
“거짓말.”
“진짜로.”
무던하고 무심한 그가 한 말 치고는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경찰 수련원 중 카라반을 운영하는 곳이 있는데 내가 카라반 가고 싶다 한 걸 기억해 될지 안 될지는 모르나, 카라반을 신청했고, 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첨이 돼 우린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요즘 짝꿍이 이상하게 섬세하고 따뜻해졌다. 세상 무심하고 무던하던 그가 섬세해지고 있다. 그렇게 오늘 우리는 강화도에 위치한 경찰수련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목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들렀다.
짧게나마 그곳에서 글을 쓰고 부업으로 하는 출판사 일을 하라는 거였다.
탁 트인 유리창 옆에 자리한 우리는 창가에 건물이나 도로가 아닌 갯벌과 바다가 보이는 풍경에 한참 취해 사진을 찍어댔다.
밍구는 앞에서 플스를 하고 있다. 나는 한참 윤문을 하다, 이 행복을 기록하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비움. 난 권태로움에 지쳐 울며 그렸던 꿈을 하나 이룸으로 하나를 비워냈다.
오늘의 난 코끝이 찡할 만큼 참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