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다운 집에서 살 권리

by 갑순이

집이 커졌다. 스물아홉. 난 집다운 집을 가졌다. 아니, 빌렸다. 언제나 그렇듯 꽤나 운이 좋았고 모든 게 순리대로 풀렸다.

청년 정책의 힘과 무너진 금리로 인해 초저금리 대출을 받았다. 사실 밍구의 도움이 컸다. 100% 대출은 없다. 그러나 갑작스레 천만 원에 가까운 몫 돈이 있을 리 없고 입사일이 얼마 되지 않는 내게 은행이 돈을 빌려 줄리는 만무했다. 전전긍긍 고민하는 내게 밍구는 공무원의 힘이 얼마나 큰지 보여줬다. 성실히 일한 그에게, 절대 망하지 않는 회사를 가진 그에게 은행은 너그러웠다. 그 너그러움을 밍구는 내게 선뜻 나눠줬다. 덕분에 그럴싸한 투룸을 얻었다. 매번 ‘자취방’에 지나지 않던 내 공간이 ‘집’으로 변모했다.

집다운 집이 생기자 가장 큰 변화는 심리적 안정이었다. 7평 남짓한 곳에 이것저것 욱여넣고 괜찮다, 괜찮다,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위로하며 집이 아닌 방에 갇혀 살았다. 그게 최선이었다.

얼마 안 되는 월급을 집에 쏟아부을 순 없으니. 외풍과 어둠은 참을만했다. 그러나 그 공간이 주는 답답함은 어쩌지 못했다. 집에 머물고 있지만 불안했고 허망했다.

집이 변하니 미친듯한 안정감과 따뜻함이 몰려왔다. 정말 행복하다. 집은 커졌지만, 외로움과 허망함은 사라졌다. 못난 집사를 만난 댕이에게 매번 미안함과 이상한 죄책감을 느꼈지만 드디어 당당하다. 조금 더 뛸 공간 조금 더 돌아다닐 공간을 그에게 선물했다.

더불어 방 한 칸에 모든 걸 때려 넣어야 했던 지난날과 달리 오늘의 난 옷 방을 가졌고 내 로망이던 가방 전용 행거를 가졌다.

침실에는 실내 자전거 한 대도 들였다. 부러진 팔 때문에 운동을 못 가니 이렇게라도 운동하자 싶어 구매했다. 큰 맘먹고 매트리스도 구매했다. 이 집에서 오래 살겠다는 결심이 섰기 때문이리라.

잦은 이사 때문에 큰 짐은 꿈도 꾸지 않았는데 이제는 집다운 집에서 더 안락함을 추구하며 큰 짐을 구매하는 것도 그다지 망설여지지 않는다.

이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내 집 마련에 전전긍긍하며 사나 보다. 우리들이 집다운 집에서 살려고 그렇게 노동을 하나 보다. 다시금 느꼈다.

그런데 요즘 지어지는 청년 주택과 불법 방 쪼개기를 자행하는 건물주나 그걸 방치하는 지자체를 보면 청년의 삶의 질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만 같다. 마치 자신들은 그 좁디좁은 방에서 살아 본 적 없는 것 마냥 집을 짓는다.

돈 없고 가난한 우리의 잘못인 것 마냥 당연하게 방에 가둔다. 청년 주택이랍시고 짓는 것들은 모두 5~7평 남짓, 불법 방 쪼개기의 결과는 닭장을 연상케 한다. 그렇게 우리는 집다운 집에서 살 권리를 박탈당한 채 닭장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며 모이만 먹는 닭들처럼 일 그리고 잠, 일 그리고 잠만 반복한다.

집이란 건 잠만 자는 곳이 아니다. 비만 안 맞으면 되는 곳이 아니다. 때로 지쳐 상처 받는 날에는 목 놓아 울며 이불이 주는 포근함에 위로받는 공간이다. 내가 간절히 바라던 일이 이뤄졌을 때 마음껏 소리 지르며 방방 뛸 수 있는 공간이다. 돈벌이를 끝내고 들어오면 내 집 냄새에 취해 ‘그래, 내가 이래서 돈 벌지.’라는 용기를 주는 공간이다.

그런데 우리는 몇몇 돈에 눈먼 어른들의 욕심 때문에 이런 행복을 잊고 살아간다. 지쳐 잠이 드는 개똥벌레 마냥 피로에 취해 그저 비 안 맞으며 잘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내일을 맞이한다.

집다운 집에서 살 권리.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야 하는 행복이 더는 부서지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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