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사람

사람을 통해 삶을 배우는 중

by 갑순이

친구가 생겼다. 같이 폴을 타며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됐다. 그 아이는 참 독특했다. 독특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그 친구가 네게 건낸 첫마디.


“안녕! 난 하라야. 그런데 성이 편이야.”


라며 해맑게 웃었다. 자신의 이름을 이런 방식으로 소개하는 사람을 처음 봤다. 당황스러움에 그를 살폈다.


하얗고, 길쭉한 팔다리, 예쁘장한 얼굴, 작은 얼굴에 크디큰 눈망울. 그 큰 눈망울이 참 예뻤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맑은 그 눈이 정말 예뻤다.


마침 나이도 동갑이었고, 우린 그렇게 조금씩 각자의 삶 한 켠에 스며들었다.


대낮에 곱도리탕을 먹고 폴을 타고 예쁜 카페를 갔다. 때로는 그와 술을 마시며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아픔을 스스럼없이 꺼내 보이고, 그 아픔에 잔잔한 위로를 건넸다.


하라의 선함이 편안한 삶에서 나왔을 거라 생각했다. 술 한잔 기울이며 조심스레 하라에게 말을 꺼냈다.


“넌 참 맑아, 예뻐. 선해.”


이 애매한 단어를 알아들었단 듯, 하라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마냥 비단길을 걸은 건 아니라는 것. 그 길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걸어왔는지, 또 그 길을 걸으며 발바닥에서 피가 날 때 독을 품지 않고 오로지 더 나은 자신만을 상상했다는 그런 이야기.


하라의 맑음이, 그 예쁜 눈망울이 평탄한 비단길 덕에 거저 가진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마치 진라면인 줄 알고 불닭볶음면을 먹은 느낌이었다.


하라의 그 예쁜 눈은 꽃잎에 맺힌 이슬이 아니라 유리였다. 뜨거운 불에 녹여지는 그 시간을 견디고 이리저리 늘어나는 고통을 감내하며 복수나 독 따위를 품는 대신 예쁜 무언가로 만들어질 자신만을 생각하며 견뎌낸 유리.


사람을 볼 때 개인적으로 눈망울을 많이 본다. 눈빛 혹은 눈알. 눈의 생김새가 아니라 사람마다 가진 그 눈빛은 절대 속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소름 끼칠 만큼 악의로 똘똘 뭉친 빛을 내비치는 사람, 열등감에 절어 고집스런 자존심으로만 버텨내고 있는 사람, 말도 안 되는 맑음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람, 자신감에 눈에서부터 빛나는 사람까지.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이 있다.


무서운 눈빛을 가진 이를 볼 때면 나를 돌아본다. 나는 남 탓을 하며 오기와 독을 눈에 담고 살고 있지 않나? 어렸을 적 아픔을 탓하며 어둠을 내뿜으며 살아가지 않았나?


맑은 이들을 보면 다가간다. 너의 맑음의 원천이 무엇인지, 어쩜 그리 예쁜 눈빛을 갖고 살아가는지. 그렇게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또 깨달음을 얻는다.


모두에게 아픔은 있구나. 마냥 평탄한 이는 없구나. 그 아픔을 어떤 마음으로 어떤 미래를 그리며 버텨내는지에 따라 달렸구나.


올해 내 삶 한켠에 맑음을 물들이고 간 그 덕분에 나는 또 타인의 삶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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