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나만 빼고 다 반짝거릴 때
그럴 때, 참 아프고 힘들었다.
그런 때가 있었다. 내 삶이 내가 가진 것들이 너무 음습하고 어두워 곰팡이 냄새를 풍기는 것 같은 그런 시기.
남들은 당연하게 갖는 일상이 내게는 너무나 벅찬 현실이었다.
“딸, 밥 먹었어? 몸은 괜찮아? 엄마, 아빠랑 맛난 거 먹으러 가게 집 좀 와.”
저 말이 뭐라고 너무너무 듣고 싶었다. 저 말을 당연하게 듣는 친구를 보면서, 그런 부모가 물질적으로 충분치 않음을 탓하며 삐뚤삐뚤한 마음을 부모에게 티 내는 친구를 보면서 참, 미웠다.
어긋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해야 했다. 남들보다 더. 인문계를 진학하기 위해, 얼마나 모진 말을 들어야 했는지, 기자라는 꿈을 지키기 위해 4개의 아르바이트를 뛰며, 그 와중 남들 누리는 대학생활을 누리기 위해 학과 생활에 동아리에, 학보사에 참 별난 노력을 많이 했던 거 같다.
대학 친구들은 대학 시절을 그리워한다. 종종 그때가 좋았다고 말하는 그들을 보며 난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부모님의 용돈을 받으며 술을 먹고 미팅을 하러 다니던 너희와 어울리기 위해 나는, 정말 노력했다. 새벽 3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전 수업을 가고 수업 끝난 뒤 부랴부랴 과 활동을 하고 불금엔 학보사에 틀어박혀 기사를 마감하고 밤새다시피 한 채로 또 주말 아르바이트를 나가고.
너무 피곤했다. 사실 다시 돌아가 밝은 척 애쓰며 그 피곤한 삶을 다시 살 용기가 없다.
그 피곤한 시기가 지나고 아르바이트한 돈을 까먹으며 언론고시에 달려들었고 1년이란 시간밖에 없던 나는 결국 눈을 낮춰 지방일간지에 입사했다.
남들에겐 고작일 수 있는 그 결과가 내겐 혼신의 힘을 다한 결과였다. 그 결과를 얻어냈음에도 난 그 흔한 정장 한 벌 부모에게 받지 못했다.
그런 내 곁에 있던,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서도 매번 비뚤어지던 친구를 보며 너무 배가 아팠다. 나는 이렇게 노력하는데, 그런데도 그런 부모가 없는데. 넌 그렇게 아무런 목표 없이 의지 없이 살아도 네가 예뻐 죽겠다는 부모가 있는데 왜, 자꾸 비뚤어지는 거야.
그렇게 그와 서서히 멀어졌다. 그 곁에 있는 내가 너무 초라해서, 아무 조건 없이 매번 내게 최선을 다하는 그 친구가 미워지려 해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 친구는 내게 선뜻 손을 내밀었다.
“잘 지내?”
그 한마디가 우리 관계의 물꼬를 텄고 우린 아무렇지 않은 듯 만나 술 한잔을 기울였다.
얼큰하게 달아올랐을 즘, 그 아이는 내게 말했다.
“그때, 갑자기 연락 끊은 거 이유는 묻지 않을게. 그냥 너는 이해돼. 네가 다니는 회사가 엄청 거창하지 않은 거 알아. 그런데 그 회사에 이렇게 평범한 모습으로 다니기 위해 네가 얼마나 얼마나 노력했는지 나는 알아. 너무 알아. 남들이 가진 오늘과 네가 가진 오늘이 얼마나 큰 차이인지 내가 너무 잘 알아. 동정하는 게 아니야. 그냥 그런 네가 너무 대단하고 대견해. 그러니까 네가 또 힘들어지면 또 연락 안 해도 돼. 그리고 시간이 지나 괜찮아지면 연락해줘. 기다릴게.”
별말이 아닌데 눈물이 났다. 술 먹고 우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그렇게 눈물이 났다. 내 아등거림을 알아주는구나. 남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일상을 누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아주는 이가 있구나.
그 아등거림에 내가 지친 건데, 그래서 내가 너에게 상처를 준 건데 또 그걸 아무렇지 않게 이해해주는구나.
만감이 교차했다. 고마웠다. 이렇게 내게 진심인 이를 두고 나는 왜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그저 내가 가진 어둠이 초라해 견디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이 사람을 놓았을까.
왜 그랬을까. 참 모자란 사람이었구나. 또 이런 자리가 결국 그 친구의 용기에서 비롯된 시작이라는 게 아렸다.
빛내며 살고 있다 생각했지만, 여전히 용기 있진 않구나. 조금 더 용기 내 살아야겠다.
내 어둠에 내가 삼켜지는 듯한 그런 날, 세상은 빛나는데 나만 곰팡이 색인 것 같은 그런 날 이제는 손을 놓고 도망치지 말자. 그저 그렇게 빛나는 이가 이런 날 진심으로 사랑해준다는 것에 감사하자. 그렇게 다짐한 어느 날에 대한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