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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갑순이 Sep 13. 2022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기

그리고 색감

신혼집은 화이트, 그레이, 블루로 꾸몄다.


화이트를 좋아하는 것도, 그레이를 좋아하는 것도, 블루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유행타지 않을 색감으로 집을 꾸몄다. 차가운 느낌이 싫어 따뜻한 느낌의 그레이, 시폰 암막 커튼을 활용해 햇빛이 차단된 듯 안 된 듯한 느낌.


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침대. 회색의 목재이면 차가울 것 같아 열심히 청소하자 다짐하며 장만한 벨벳 프레임의 라지 킹 사이즈 침대.


나, 댕이, 밍구 셋이 누워야 하기에 큰 걸 샀지만, 댕이가 우리 생각과 달리 세로가 아닌 가로로 누워 밍구는 여전히 모서리에 끼여 잔다.


주말 아침과 낮 그 경계, 어슴푸레 들어오는 빛에 눈을 뜨면 댕이는 우리 한가운데 누워 배를 보인 채 한 손은 머리 위에 한 손은 본인 얼굴 옆에 둔 채 뻗어있다. 밍구는 그런 댕이에게 치여 침대 끄트머리에 새우처럼 웅크려 구름같이 폭신 폭신한 따뜻함 한 방울이 녹여진 회색 이불에 포옥 쌓여 잠들어있다.  


댕이는 내가 깼다는 걸 눈치채곤 시원하게 기지개를 켠 채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곧 “애-옹~” 아침 인사를 건넨다. 댕이 목소리에 밍구가 깰까 입가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쉬-잇.” 댕이는 이내 알아들었단 듯 조용해진 채 몸을 좌우로 뒹굴며 몸을 다시 한번 편다.


그런 털북숭이 배에 손을 갖다 댄다. 오동통한 뱃살을 만득이 만지듯 주무르며 가만히 누워 그 따뜻한 공기를 만끽한다.


다시금 밍구에게 눈길을 돌린다. 34살, 그러나 여전히 아기 볼 살 같은 볼 살이 양 볼에 두툼히 단 채 입을 오물거린다. 그 귀여움을 못 참고 볼에 손을 갖다 대면 그는 곧 “일어났어?” 인사를 건넨다.


“응.”


“왜 더 안자?”


“지금 이 공기가 분위기가 너무 따뜻해서 더 자기 싫어.”“일어날까?”


“아니, 지금이 너무 좋아.”


밍구의 기상으로 나른한 공기는 이내 생기를 찾는다. 우리의 말소리로 인해 분위기가 바뀐다. 그 또한 행복하다. 아침에 눈을 떠 무언가에 쫓기듯 팍팍한 오늘을 살아야 하는 게 아니라서.


31년 만에 드디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기, 분위기를 찾아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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