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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럽집 Apr 19. 2020

스페인 톨레도 여행 Ⅲ

여행고픔증 연재 003. 톨레도 대성당, 그리고 여행을 마치며

Iglesia de Santiago del Arrabal / 사진 : 유감성
톨레도는 가톨릭 장미창과
이슬람 아치가 합쳐진 곳




톨레도의 세 종교 이야기
Mezquita Cristo de la Luz / 사진 : 유감성


세 종교가 공존하던 도시, 톨레도.


'어떻게 세 종교가 공존할 수 있었을까'라는 주제는 오래전부터 내가 관심이 있던 분야다. 이걸 확인하고 탐구하는 여행을 주로 했으므로 마드리드는 네 번,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은 거의 두 번씩 가보게 됐었고, 톨레도는 이번이 처음이라 매우 기대되는 도시였다.


코르도바나 세비야, 그라나다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많은데 비해 상대적으로 톨레도는 적었으므로 직접 이 곳을 여행하며 세 종교 흔적들을 찾아보고 싶었다. 톨레도는 기독교의 '성당(카테드랄)'과, 많지 않지만 유대교 예배당 '시나고그', 이슬람의 '메스키타'가 남아있었다.


이슬람 사람들이 기도하던 곳을 '메스키타'라고 부른다. 'Mezquta Cristo de la Luz'는 간단히 말해서 '메스키타'라고 생각하면 된다. 로마의 발달된 건축 기술 '아치'형태를 받아들이고 발달시켜서 '이중 아치'를 개발하거나 말발굽 모양의 둥그런 아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창문의 형태를 자세히 보면 중동의 거대한 이슬람 건축물의 '돔'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처럼 톨레도가 애초부터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유럽이지만 유럽이 아닌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유럽은 '가톨릭'의 로마네스크부터 시작해서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모더니즘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이슬람'양식을 쉽게 볼 수 없다. 유럽에서는 유일하게 스페인에서 이 매력적인 양식을 볼 수 있어서 여행하고 싶었다.



톨레도 대성당
톨레도 대성당 전경 / 사진 : 위키피디아
Catedral de Santa María de Toledo / 사진 : 유감성


스페인 가톨릭의 총본부(대주교구), 톨레도


절실한 가톨릭 국가. 스페인 전체에 '가톨릭'을 믿게 하는 게 일생의 목표였던 가톨릭의 왕 이사벨과 페르난도 2세. 왜 그렇게 가톨릭화 시키려 했을까. 톨레도 대성당은 그 의지의 결과라고 볼 수 있었다.


과거 가톨릭을 믿었던 서트족들이 떠난 자리에 홀로 남은 톨레도 사람들. 이후로 300년을 이슬람 무어인들의 지배를 받으며 살았다.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가 위대하고 희소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 자부심과 오만함의 중간쯤인 심정으로 톨레도 사람들을 개종시키지 않고, 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같이 살았었다.


그러나 서고트족들이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를 통해 다시 톨레도를 점령했을 때 가톨릭 세력들은 종교를 통해 톨레도 사람들을 정신적으로도 지배하려 한다. 톨레도를 점령한 서고트족 뿐만 아니라 중세의 유럽 도시국가들은 모두 로마 가톨릭의 수장 '교황'의 말에 절대복종하고 있었다. 무력 통치 만으론 유럽의 도시국가 영주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자기들끼리 싸울 수 있으니까 '가톨릭'이란 이름으로 정신적으로도 지배하려 한 게 아닐까 싶다.


더군다나 13세기 다시 톨레도로 입성한 '가톨릭 세력'은 8세기 톨레도 사람들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이었다. 이후 이슬람 세력 통치하에 '종교의 자유'를 갖고 몇 백 년 살아왔던 톨레도 사람들로서는 쉽사리 이들에게 복종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톨릭 세력'은 톨레도 사람들의 개종과, 정신적인 복종이 필요했으므로 이 거대한 성당을 짓게 된 것이다.


그래서 톨레도엔 이 거대한 성당이 존재한다. 250여 년을 만든 성당이다.  



톨레도 대성당의 디테일, 정말 대단하다.


이슬람 사람들의 '메스키타'더 장식이 화려한데 특히 기하학적 도형과, 코란의 내용들로 이뤄진 '타이포그래피'가 장식 기법이 엄청나다. 지금은 톨레도 여행을 쓰고 있지만 '그라나다 편'을 작성할 계획이고, 그중에서 '알람브라 궁전-나스르 궁전'에 대해 쓸 때 이 기법들에 대해 흥미롭게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건축과 공간,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기도 했지만 '중세미술'과 '종교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기 때문에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슬람 장식과 가톨릭 장식기법에는 큰 차이가 있다. 지금 '톨레도 대성당'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가톨릭'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굉장히 많은 조각들이 있다. 그 조각들은 하나하나 의미가 있지만, 회화처럼 모여있을 때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주로 많이 등장하는 장면으로는 '예수의 탄생' 등이 있다. 그래서 유럽 여행할 땐 기독교(가톨릭) 성경을 공부해두고 가면 여행을 즐기는 데 매우 많은 도움이 된다.




톨레도 대성당 앞 광장의 하늘
태양의 문 'Puerta del Sol'
'피의 아치(Arco de la Sagre)'


톨레도 여행을 마치며..


고작 하루 했던 여행으로 세 편의 여행기를 작성할 줄은 몰랐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톨레도, 쿠엥카, 코르도바, 그라나다, 네르하, 프리힐리아나, 말라가, 세비야, 톨레도를 여행했는데 그중 톨레도는 짧은 여행기간에 속했으니까. 게다 나머지 도시는 거의 두 번씩 여행했는데 톨레도는 이번 여행이 처음이었다. (처음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언젠가 또 갈 것 같아서..)


톨레도는 작지만 굉장히 매력적인 도시였다. 매번 유럽여행을 할 때마다 1-2년간 공부도 많이 하고, 그곳을 상상해보고 의문을 제기하는 상상도 많이 해서 그런지 막상 그 도시에 도착하면 엄청난 황홀경이 느껴질 때가 많은데 이번에도 톨레도 전망대에서 '톨레도 전경'을 볼 때가 그 기분이었다.


톨레도의 옛 이름 톨레툼(Toletum). 옛 로마인들이 지어준 라틴어 이름이 지금의 '톨레도(Toledo)'로 이어져 왔다. 실제로도 톨레도는 삼면이 '타호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육지로 연결된 '비사그라 문'쪽도 급경사로 되어 있어서 방어에는 최적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반전은 그 '요새'역할이 절실할 때 늘 성문은 열려 있었다는 거. 최초 이슬람 세력이 밀고 들어왔을 때 톨레도의 귀족들은 보유한 재산을 갖고 도망가기 바빴다고 한다.


한편, 가톨릭과 이슬람이 몇 백 년씩 반복 통치하며 정체성을 잃었을 톨레도 시민들의 삶도 기구하다. 지금이야 건물도 많아지고, 식료품도 풍부하고 살기 좋아졌지만 그 옛날 여기는 황폐한 땅이 드넓게 펼쳐진 척박하고 메마른 땅이었을 텐데, 비극을 견디면서도 이 곳에 한 평생 머물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면 왠지 그 삶은 어땠을까 궁금해지도 한다.


이 작고, 좁고, 언덕지고, 강이 둘러져 있는 톨레도가 오래전, 오랫동안 스페인의 패권의 중심 요충지였다는 사실이 다시금 놀라워진다. 최종적으로 가톨릭이 이슬람을 몰아낼 수 있었던 이유도 이베리아 반도 딱 중심에 있는 이 톨레도를 점령한 이후 박차를 가할 수 있었으니까. 이런 생각을 하며 톨레도의 여행을 마쳤다.


현재 톨레도는 역사도시(영어 Historic City of Toledo / 스페인어 Ciudad histórica de Toledo)로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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