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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럽집 Aug 02. 2018

'용서를 구할 용기'가 필요해.

영화 [신과함께 2-인과 연] 후기 1│강림, 밀언, 故노회찬.

<신과함께-인과 연>에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승사자 셋의 개인사와 고려의 역사, 얽히고설킨 서로의 인연, 1편에 등장했던 '김자홍'의 동생 '김수홍'의 억울한 죽음과 누명까지. 그리고 그 과정엔 사회 비판적인 요소와 현란한 영상 효과까지 담고 있어 오랜만에 재미에 의미까지 더해진 훌륭한 영화를 보게 됐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 영화는 단지 이야기의 재미나 영상 효과뿐 아니라,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용서를 구할 용기'에 대한 메시지가 있어서 특히 감명 깊다. 하정우가 역을 맡은 '강림'이라는 인물은 천 년 전, 질투와 시기로 인해 큰 잘못을 하고 말았다. 즉시 후회하지만 이미 모든 상황은 끝난다. 그리고 그 일들은 후회로 남아, 천 년 동안 괴로워하며 살아간다.

영화에선 이렇게 말한다. 나쁜 인간은 없다고. 나쁜 상황만이 있다고. 우리는 꽤 많은 잘못을 하고 살고 있지만 그 잘못을 용서받지 못하거나, 시간과 기회가 지나 용서를 빌 수도 없는 상황을 맞이하곤 한다. 특히 그 대상이 고인이 된 분이라면 일찍 사죄하지 못한 데에 대해 더욱 후회를 느낀다. 그래서인지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가 흥행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척 감명 깊게 봤다.




기억을 지우고 싶은데...


며칠 전, 좋아했던 한 정치인의 비보를 들었다. 그분을 다시 볼 수 없을 거란 사실도 믿기 힘들었지만 그분이 극단적인 결정을 한 까닭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4천만 원이라고 했다.

며칠이 지나 진정이 됐을 때, 그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혹시 지은 죄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법으로 판단할 정도가 아니라면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서 본인이 그 무게를 판단한다. 물론 4천만 원 아니라 백 원이라도 청렴하지 못했다면 반성할 일이었으나 흔히 정치자금에 관련한 뉴스를 보면 매번 액수의 평균치가 4천만 원 보단 턱없이 높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故노회찬 의원이 극단적인 결심을 하기엔 적은 양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던 거다.


인간은 자신의 죄를 인지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그걸 '후회할까 봐'그렇다고 생각한다. 후회하게 되는 순간 미안해지고, 사과를 하기 전엔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내가 나쁜 사람인 건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그 일말의 '양심'을 위해 공교롭게도 죄를 인정 못하는 게 아닐까. 약간 말이 안 되지만, 양심이 있어서 사과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저승사자 강림(하정우)
신과함께1 포스터 / 강림, 덕춘, 해원맥

하정우 배우가 맡은 '강림'이라는 인물이 첫 번째 편 <신과함께-죄와 벌>에서 '김자홍'이라는 주인공을 돕는 정도로 나왔다면, 이번엔 '강림'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

강림은 천 년 전, 세 사람에게 죄를 짓는다. 시기와 질투로 시작해 미움으로 이르고, 결국 죽이기까지 한다. 물론 그 과정엔 의도한 바가 아니었을 때도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상황이 그렇게 흘러갈 때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 즉시 후회도 했지만 결국 현실을 되돌릴 순 없었다. 그 자책감과 죄책감, 그로 인한 괴로움 와 후회를 안고 살아간다. 끔찍하고도 가엽다. 자신이 죽인 인물들과 1000년을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많이 잘못해서 잘못했다고 말할 용기도 없다. 벙어리 냉가슴 앓으며, 긴 시간 자신을 채찍질만 한다.

반면, 강림에게 살해된 또 다른 가여운 두 사람은 그 기억이 지워진 채 살아가고 있다. 죄지은 사람만 기억하게 하고 피해자들은 기억하지 못하도록 한 게 '염라대왕'이 강림에게 준 형벌이었다. 강림을 천 년 동안 후회하고, 또 후회하게 만든다.  




기억하고 싶은 대로 말하지 말고, 기억나는 대로 말해!
- 염라대왕이 강림에게 했던 대사中


강림 / 염라

어쩌면 인간이 100년 밖에 살지 못하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천년 동안의 죄책감이 어느 정도의 괴로움인지는 천년을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죄를 천년 동안 해야 한다는 게 어느 정도 힘든지는 알 것 같다. 누군가와 옆에 있으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한 시간 참는 것도 힘이 들다. 사과를 빨리 하는 게 낫다. 사과할 때, 한 시간 내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사죄를 천년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까.

어릴 때 아버지한테 매를 맞고 잠들었다. 그리고 난 이렇게 생각했다. "잘못한 거 다 처벌받았으니 이제 걱정 없이 자면 되겠구나" 라면서. 그리고 자다가 퉁퉁 부운 엉덩이에 연고를 발라주는 아버지를 봤다. 울컥거려서 티 안 나게 울면서 그때 처음 때린 사람, 욕한 사람은 두 다리 뻗고 잠들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다. 




너의 죄는 결코 가볍지 않기에 모든 기억을 남길 것이고,
가엾은 자들은 모든 기억을 없애줄 것이다.


염라 / 강림


염라대왕은 피해자의 기억들은 지우고, 강림 스스로가 잘못한 기억은 남겼다. 이건 어쩌면 염라가 강림에게 '속죄'를 바랐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갑자기 그동안 봤던 근대 한국의 실제를 바탕으로 한 영화나, 미투나 적폐를 다룬 뉴스가 생각난다.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송강호 주연의 <택시운전사>, 위안부의 슬픈 아이들이 등장하는 영화 <눈꽃>, 제주도의 아픈 살생들을 기억하는 추모 <제주 4·3> 사건, 국정농단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특히 이 영화의 첫 번째 '죄와 벌' 편에서는 등장했지만, '미투'운동의 사회적 처벌로 인해 참여하지 못한 '오달수' 배우가 생각난다. 이들은 모두 같은 죄를 지은 건 아니었으나 각자의 죗값을 지불해야 하는 입장의 서있다.

물론 쓰고 있는 나와, 읽고 있는 모두는 위에 해당하지 않지만, 스스로에게 '속죄하지 못한 것'이 있는지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속죄'까진 아니어도 자신을 돌아보는 '숙고'정도는 살아가면서 필요하다. 그 정도가 심하다 해도 극단적으로 삶을 달리하거나, 너무 비굴하게 사과하거나, 되려 화를 낼 까닭이 없겠지만, 혹시 나로 인해 상처 받은 사람들은 없는지 주위를 둘러봐야 할 일이다. 그리고 있다면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꽤 많은 것을 느끼며 노트에 적어놓은 게 꽉 채워 세 바닥이다. 특히 인상 깊어서 적어둔 말이 있다. "정직하고 신념 있으면 다 신문지 덮어야 해"라는 대사. 조금이라도 피해를 보고 싶지 않고, 점점 서로가 양보하기 싫은 사회가 되어가면서 죄라고 말하긴 모안 얌체같이 행동으로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 요새 그런 사례들이 참 많다. 누가 누구에게 "너 죄지었어" 또는 "너 사과해야 해"라며 등 떠밀려서 사과할 일 없도록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판단해보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죄의식 없이 죄짓거나 도덕심 떨어지는 행동을 할까 걱정돼서 나 자신에게 늘 해야 할 질문을 노트 마지막에 나지막이 적었다. 이 질문을 항상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게 옳은 일일까?"라는 질문.


우리는 '용서를 구할 용기'가 필요하다.




링크: 영화 <신과함께1-죄와 벌> 후기 /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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