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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럽집 May 02. 2020

스페인 코르도바 여행 Ⅲ

여행고픔증 연재 006.  메스키타 - 가톨릭 편

메스키타 내부에 있는 '대성당' 천정 장식


건축은
존재 자체가 '역사의 증거'

   


건축 공간,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며 중요한 깨달음 하나가 있었다. 건축은 역사의 증거가 된다는 것. 건축은 당대의 사상, 영광, 전쟁, 비극, 고민, 도전, 삶 모두를 반영한 예술이다. 그래서 건축물을 실제 마주 했을 때 감동이 크다.


코르도바 메스키타 내부에는 이렇게나 멋진 '가톨릭 대성당'이 있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대번에 감탄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장식 하나하나 이유를 찾다 보면 여행이 더욱 뜻깊고 의미있어질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여행기는 '이슬람과 가톨릭'으로 된 '메스키타'에서 가톨릭 부분에 해당하는 '대성당'에 대해 예술사, 건축사, 세계사를 빗대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듣고 즐길 수 있도록 쉽게' 이야기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동안 내가 건축과 실내, 전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던 지식과, 여행을 준비하며 읽었던 스무권 가량의 책, 관련 다큐 내용이 여기 녹아질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코르도바'여행을 즐길수 있던 사전지식들이 ‘과시’아닌 누군가 코르도바를 찾았을 때 '정보'될 수 있도록 스페인 코르도바 여행 Ⅲ, 메스키타 - 가톨릭 편'을 재미있게 써보고자 계속 노력중이다.



이전 글 '스페인 코르도바 여행 Ⅱ, 메스키타 - 이슬람 편'



지상에 재현한 '천상의 공간'
가톨릭 장식과 이슬람 아치가 만나는 지점
파이프 오르간과 가톨릭 천정 조각

'가톨릭의 영광과 승리'


지금은 세계적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문화를 많이 존중하지만 과거엔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국가들이 가장 앞선 기술을 바탕으로 번영하고 있었다. '유럽'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서로마가 멸망하고 동로마가 쇠퇴되어갔던 중세에는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 문명이 유럽보다 앞서갔던 게 사실이었다.


론디니움(런던), 파리, 로마, 피렌체 등 유럽의 대도시들이 인구 1만을 못 넘겼던 8세기에 아랍은 콘스탄티노플과 여기 '코르도바'에 각각 인구 50만 명씩 모여 살았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식량 기근과 전염병으로 시달리던 당시 유럽과 달리 아랍은 농업기술과 의학이 앞서있었고, 코르도바에만 50여 개의 도서관과 900여 개의 목욕탕을 갖췄다고 하니 당시 유럽과 아랍의 '문화와 기술'차이는 비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슬람은 300년간 스페인 땅에서 '코르도바'를 수도로 삼아 최대 번영기를 누렸다.


그러다 스페인 북부 변방에 쫓겨나 자기들끼리 싸웠던 가톨릭 세력들이 서로 협력하기 시작했다. '가톨릭'이라는 동일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로 똘똘 뭉쳐서 '이슬람'이라는 공공의 적을 만들어 동맹을 맺고 남쪽으로 전진한 결과 1236년, 드디어 코르도바를 다시 되찾게 된다. 코르도바를 이슬람에게 빼앗긴 지 500년 만에 다시 되찾은 영광스러운 승리였다.


미카엘 대천사 조각과 천정 장식
'아라베스크' 종유석 장식과 '성 페르난도'


500년 만에 코르도바를 되찾고, 800년 만에 완전히 스페인 땅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스페인의 가톨릭 세력은 승리의 영광을 '대성당'건축과 장식들로 표현하고자 이슬람 사원이었던 '메스키타'한가운데를 철거하고 '대성당'을 짓게 된다.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건축된 '조선 총독부'를 철거한 자리에 '서울 시청'을 지은 것처럼, 메스키타의 흔적을 없애고 그 자리에 성당을 지을 수도 있었지만 당시 왕이었던 '카를로스 5세'는 다행히 일부 철거하고 증축의 방법으로 대성당을 짓기로 한 거다. 만약 이때 카를로스가 이슬람 예배당을 '이교도의 예배당'이라 규정하고 전체 철거를 지시했다면..? 아마 나는 코르도바에 가지 않았거나, 가더라도 메스키타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전 글 '스페인 코르도바 여행 Ⅱ, 메스키타 - 이슬람 편'에서 '콘비벤시아, 관용이 허용되는 사회'라는 문장을 사용한 바 있었다. 카를로스 5세 왕은 자신의 입장에서 원수 같은 이슬람교의 문화재를 없애버릴 수 있었지만 '관용'적인 태도로 메스키타를 보존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기 때문에 우리 인류는 '세계문화유산-메스키타'를 계속 볼 수 있게 됐으니까.


711년 이슬람 세력은 가톨릭 사람들에게 '코르도바에 계속 살라'며 관용을 베풀었고 결과적으로 1492년, 가톨릭 세력은 이슬람 문화를 보존하는 관용을 보답하게 된다.





돔 천정과 성가대
돔, 궁륭, 궁륭 사이의 장식
성가대와 황금으로 장식된 기독교 문양


천정 돔, 궁륭 천장, 다발 기둥 그리고 성가대.


'메스키타'라는 이슬람의 찬란한 문화를 보존하긴 하지만 가톨릭도 자신들의 '영광과 승리'를 표현하기 위해 메스키타 내부에 자신들의 문화로 '화려한 대성당'을 짓게 된다.


이슬람 예배당처럼 가톨릭도 차별화된 양식을 뽐내며 500년간 이슬람을 믿어왔던 사람들을 개종시키고, 개종시키지 않더라도 가톨릭이 더 우수한 문화라는 걸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까. 대성당은 단지 장식적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천정 돔'은 악기를 쓰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던 중세에, 노래방 에코처럼 '하울링'을 낼 수 있는 중요한 건축구조였다. 바늘이나 포크가 떨어져도 '쨍그랑'소리가 울려 퍼지는 예배당을 둘러보면서 "그레고리안 찬송이 울려 퍼진다면 마치 클럽이나 콘서트장처럼 그 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감동을 경험하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해봤다.


대성당은 뾰족한 (첨두) 아치에, 가운데가 움푹 파인 돔 형식으로 된 구조를 사용하는데, 그 사이사이 징그러워볼 정도로 가지처럼 뻗어있는 선들은 돔의 하중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 선들이 모여서 '다발 기둥'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엔 성경의 내용으로 된 천정 조각을 넣고, 황금으로 성가대를 꾸몄다.


과도하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당시 스페인은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바다로 진출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그곳의 금과 은을 유럽에 들여오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스페인 사람들은 메스키타 한가운데 대성당을 건축하며, 자신들이 생각하는 '천국'을 재현해보려 했던 게  아니었을까.




최고급 소재로 만든 화려한 예배당


"시대를 이해하고 여행하는 것"


솔직히 여행을 하기 위해 세계사를 공부하고 가기가 쉽지 않다. 여행은 쉬러 가는 건데 너무 많은 공부를 하게 되면 마치 '현장학습'을 하는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역사를 알았을 때 여행이 더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곳의 기승전결 이야기를 알았을 때 여행은 더 풍부한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두 종교가 함께 있는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는 전 세계에 또 없는 유일무이한 곳이었다. 이 곳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700년대 이슬람 들어왔고, 500년 동안 번영기를 누리다 1200년대에 가톨릭이 재탈환했다는 사연을 알아야 했다. 그리고 비로소 가톨릭의 '영광과 승리'를 보며 감동할 수 있었다.


대성당을 지은 코르도바 대주교, 조카에게 카를로스 왕이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건축물을, 전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건축물로 만들었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코르도바를 여행하며 "다른 문화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게 불가능하더라도, 핍박과 제거에 대한 대상으로만 보지 말자"라는 교훈을 얻게 됐다. 


2015년과 2019년 코르도바에 두 번 여행했었는데 두 번 모두 '메스키타'를 방문했고 교훈까지 느꼈던 건 정말이지 '내 인생의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자신만의 깨달음과 교훈, 이 이야기를 통해 감동을 느끼고 즐기며 여행하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2주 동안 정리하고 열심히 작성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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