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 좋은 엄마가 될거예요.
시험관 이식을 하면
바로 4주차가 된다.
그리고 약 10일이 지났을 때,
임신확인을 위한 첫번째 피검사를 진행한다.
5주차 1차 피검사
6주차 2차 피검사 더블링 성공
1차 피검사때보다
호르몬 수치가 2배로 뛰어야 임신성공.
하지만 안심할 순 없다.
7주차 아기집과 난황 확인
8주차 심장 반짝거림 확인
이렇게 심장 반짝 거림까지
확인되면 난임병원은 졸업하고,
임산부 확인증도 나와
정부에 정식적으로 임산부 신고를 할 수 있다.
8주차까진 거의 매주 병원을 방문해
임신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고,
그 후론 2주에 한번씩 분만병원에 방문해
태아가 잘 크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10주, 젤리곰 확인
12주, 1차 기형아 검사
시간은 참 빠르게 흘렀다.
그래서 였는지 불안이 극에 달하기 전에
병원을 방문해 정상적으로 크고 있음을
확인 받고 안심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12주, 가장 중요했던
첫번째 기형아 검사에서
나는 통과를 하지 못했다.
언제나 친절하셨던 원장님은
그날따라 유독 긴장한 듯 보이셨고,
바로바로 설명해주셨던 것과 달리
말을 아끼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쌍둥이라 잘 안보여서 일까,
뭔가 문제가 있는걸까,
초음파실의 침묵이 나를
점점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37세, 첫번째 시험관 시도로
로또와 같은 행운으로 쌍둥이를 임신했다.
채취할 때 순탄하지 못한거에 비해
정말 운이 좋았다고, 세상에 너무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딱 열 달만 스스로만 잘 챙기면 될 것이라고,
그렇게 근심, 걱정없이 잘 지내보자고만 생각했다.
역시,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게 분명했다.
결국 한 아이의 목투명대는 정상범위를
넘어섰다고 조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하셨다.
한단계 한단계 매번 시험을 받듯
통과해야하는 마음이 참 힘들었던 것 같았다.
정상이 아니라는 말에
눈물이 쏟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매번 혼자 다니던 산부인과가
그날따라 나만 혼자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37세, 노산인만큼 추가적으로
유전자검사를 하는 것을
많은 병원에서 권장한다고 했다.
결혼을 늦게 한 게 문제였나,
아이를 너무 늦게 가지려고 했던 게 문제였나,
그냥 모든게 내 문제같아서 더 심란했던 거 같다.
추가 유전자검사는 65만원정도,
다행히 정부지원금으로 검사비를
해결 할 수 있었기에 바로 검사를 진행했다.
'제발제발, 아무 문제 없으라....'
씩씩하게 쑥쑥크라고 지어준 태명이,
제발 힘을 내어 이 어려움을 무사히
지나보내게 해달라고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매일 기도 했던 것 같았다.
함께 걱정해줄 걸 알지만,
괜히 더 많은 걱정을 할까봐
남편에게도, 양가 부모님께도
최대한 담담하게 별일 아닌 듯
이야길 전할 수 밖에 없었다.
제발, 괜찮을거라고 스스로 다짐하듯이 말이다.
니프니 결과까지는 약 열흘.
마음을 다잡으며 기다리는 것
밖엔 할 수 있는게 없었기에,
인터넷에서 태교 바느질 세트를 주문했다.
어쩌면 나는 계속 무사히 지나갈것이라고
주문을 걸고,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의 간절한 주문은 통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