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왼손잡이

나는 지독한 왼손잡이다.

by 범수
패닉. (1995). 왼손잡이.

한 달 전부터 왼쪽 손목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작년에도 비슷한 통증을 느꼈던 터라, "별 증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사의 소견을 상기하며 무심하게 생활을 했다.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급기야 글을 읽는데 집중하기 힘든 상황까지 다다랐다. 뒤늦게 보호대라도 써야 한다는 동료 선생님의 말을 듣고 손목 보호대를 차니, 마치 연예인이라도 된 것마냥 주변에서 한 마디씩 걱정을 던져주곤 했다.(참 고맙고 따뜻한 사람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주 쓰는 오른손도 아니고 쓰지도 않는 왼손이 아프냐"라며 푸념 섞인 답변을 하곤 했다. 그리고 손목은 얼마 안 가 다시 멀쩡해졌다.


그로부터 2주가 된 어제, 카페에서 책을 읽다 문득 깨달았다. 아, 내가 항상 왼손으로 턱을 괴고 책을 읽는구나.


그때부터였다. 물밀듯이 왼손의 무게를 실감했던 것은. 오른손으로 전철 손잡이를 잡을 때 항상 왼손에는 책이나 스마트폰이 들려있었다. 머리를 말릴 때, 항상 왼손으로 머리를 털곤 한다. 수업할 때, 마이크를 드는 건 늘 왼손의 몫이다. 어쩌면 투정 부리는 것이 아닐까. "나, 이렇게도 묵묵히 일해왔다. 관심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도 푸념은 너무한 것이 아닌가!"라고. 그러고 보니, 나의 인생도 항상 왼손과 같지 않았던가. 평소답지 않게 왼손을 지긋이 마주하니, 왼손의 주름이 유난히 굴곡져 보인다.


아, 나는 지독한 왼손잡이다. 당신은 왼손잡이인가? 당신의 왼손은 무엇(누구)인가? (2024)

keyword
작가의 이전글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