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1월의 단상
* 진통제와 안정제 한 알씩을 삼킨 남편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나는 늘 그의 안색을 살피고 눈을 마주치려 애쓰는데 그는 어쩌다 정색을 하고 나를 본다. 오늘따라 시선을 고정하고 보는 이유가 나를 알아보지 못해서 저러나 가슴이 철렁한다. 차마 내가 누구냐고 묻지는 못하고 내 이름이 뭐냐고 했더니 어이없다는 듯 웃는다. 진통제로 살면서 저렇게 천진하게 웃을 수 있다니....
* 똑바로 누워 있는 게 불편하다고 거의 한쪽으로 몸을 기울여 눕는 남편. 미처 자세를 바꿔주지 않으면 한쪽 눈두덩이 잔뜩 부풀고 가장자리가 짓무른다. 따듯한 물수건으로 눈 주위를 지그시 눌렀다가 얼굴 전체를 세심하게 닦아 주고 로션을 발라 준다. 퉁퉁 부은 손과 발은 가만가만 주무른 다음 뜨거운 찜질을 해주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표정도 한결 밝다.
* 점점 아기가 되어 가는 남편. 이제 성낼 힘도 없는지 내가 하는 대로 온순히 받아들인다. 뭐 먹고 싶은 것이 없느냐고 물으니 한참 생각하더니 “오늘 육회 나오는 날인가?”한다. 아, 육회! 난 사실 남편이 육회를 찾을 때마다 불편하다. 암 환자에게 생식은 절대 금지인데 그는 수시로 육회를 찾는다. 정해진 요일에만 소를 잡는 정육점이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남편이 육회를 찾을 때 몇 번 다녀오긴 했다. 육회를 주는 마음이 정말 편치 않지만, 환자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이니 그게 보약 아닌가 하는 자위를 한다. 예전에 즐기던 것도 아닌데 육회를 찾는 것도, 설사를 달고 사는 사람이 육회 먹고 나면 속이 편하다고 하는 것도 아이러니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남편이 잘 먹고 탈이 없는 음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남편이 육회를 얼마나 반기는가는 자진해서 젓가락을 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요즘 그 어떤 음식도 제 손으로 먹으려 들지 않는 그가 육회만은 스스로 젓가락질을 해서 먹는다.
* 뭘 먹으려고 맘을 먹으면 어렵게 어렵게 식탁으로 나와 주는 것도 고맙다. 대소변도 어떻게든 날 의지해 화장실에 가서 해결한다. 그것만으로도 눈물 나게 고맙다. 많은 분이 그를 위해 기도 하고 계시니 그가 내딛는 걸음이 그를 세워 놓을 거라고 믿고 싶다.
* 그는 어제도 단 한 번 입술만 적시듯 먹고 버티었기에 오늘은 애걸복걸하는 나를 위해서라도 먹어주겠지 했는데 아닌가 보다. 갈등하는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힘이 들면 저럴까 싶지만 그렇다고 그냥 둘 수는 없는데 어떡하나. 아기처럼 달래 보고 얼러보지만, 남편은 단호하다. 안 먹겠단다. 지금은 물론 하루 종일 안 먹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 그에게 무엇을 먹고자 하는 의욕이 없기도 하지만 먹으면 더 심해지는 복통과 먹은 것을 내놓기 위해 기력을 소진하게 되고 암성 통증과 겹쳐 거의 실신하다시피 한다. 먹지 않으려는 마음 백 번 천 번 이해한다. 먹고 싶은데 삼키기가 어렵다면 다 갈아서 빨대를 꽂아 먹게 할 수도 있겠는데 먹으려 들지 않는 데는 방법이 없다. 그. 러. 다. 간. 못. 일. 어. 난. 다. 그. 럼. 어.떻.게 되.느.냐. 어.떻.게.든. 먹.어.야. 한.다.는 말은 남편에게 이미 의미가 없다. 남편이 살고자 하는 의욕까지 상실해 버린 건 아닌지 더럭 겁이 난다. 그가 목구멍으로 삼키는 건 진통제뿐이다. 두 종류의 마약성 진통제 패치를 부착하고 또 세 종류의 마약성 진통제를 번갈아 먹는다. 오늘은 평균 5시간 간격으로 진통제를 삼키고 있다.
* 그는 아픔이 오기 전에 진통제를 먹고 그냥 누워서 잠이 든 상태가 가장 편한 모양이다. 굳이 먹어서 통증을 유발하고 화장실에 드나드는 게 귀찮고 싫은 거다. 지금처럼 먹지 않고 저렇게 누워만 있다간 겨우 부축해서 화장실에 가는 것마저 못 하게 되는 건 자명한 일이다. 그런 걸 모를 그가 아닌데 그는 먹지 않으려 든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남편은 아침에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오고 계속 침대 속이다. 오늘은 먹겠지 하고 정성을 다해 준비한 쇠고기 야채 죽이 내 마음처럼 굳어버렸다. 그는 내가 옆에 다가간 것도 모른다. 또 통증이 오는지 신음을 토해내며 구부리고 있다. 그의 손을 잡아 준다. 그가 눈을 뜬다. 또 아프냐는 물음에 그가 대답한다. 통증이 또 몰아치고 있다고. 내가 해 줄 게 없다. 진통제를 속히 주는 것뿐이다. 단발성 약효가 좋은 진통제 포장을 벗긴다. 그의 손을 잡아끌어 일으키고 약과 물을 건넨다. 그가 바로 받지 못한다. 그는 모든 행동에 뜸 들이는 시간이 있다. 그가 준비가 다 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에 속으로 시 한 편을 외우든 노래 한 소절을 부르든 시간을 죽여야 한다.
* 한참 모자란다. 한마디로 능력이 없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누구 이야기가 아니고 내 이야기다. 보호자요, 간병인이자 그의 아내 자리에서 그 어느 한 가지도 남편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나의 모든 걸 접고 남편의 태엽이 되어 돌고 있다 생각했는데 그것만이 다는 아닌가 싶을 땐 가슴이 무너진다. 그에게 나란 여자는 의지할 상대가 못 되는 것일까. 믿음이 안 생기는 것일까. 건강할 때는 별말을 하지 않아도 우린 잘 통한다고 생각했다. 말만 많은 남자보다는 낫다고 여겼다. 그는 여전히 말이 없다.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거나 아예 고개도 들지 않는 걸 그의 언어로 알아들어야 할 때도 있다.
* 잠깐 자릴 비운 사이에 남편 혼자 움직이다 앞으로 고부라졌다. 내가 아무리 일으키려고 해도 그가 다리에 힘을 못 주니 쉽지 않다. 내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 어찌어찌 침대로 올려주니 그가 하는 말, 계단 아래 있는 박스를 가져오란다. 자기가 가지러 가는 길이었다고. 집에 가야 한다고도 하고 손자 이름을 부르며 일어나려고도 하고 눈은 완전히 풀려 있는데 도무지 잠을 못 자고 헛소리를 한다. 자기는 지금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이렇게 누워만 있어서 답답하다고도 한다. 그렇게 누워서도 평생 해온 일에서 놓여나지 못하는 건 왤까. 참 성실하게 살아온 그에게서 정리되지 못한 일이 무엇일까. 그의 뇌리에서 터진 용어들이 내겐 낯설다. 남편이 열거하는 생뚱맞기도 기발하기도 한 낱말들의 향연을 듣다 보면 푸핫 웃음이 터질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건조하고 덤덤한, 좋다 싫다 감정의 변화가 좀체 없었던 충청도 남자의 기저에 개그끼가 있었던 걸까. 그는 수시로 나를 웃긴다. 남편 삶의 어느 지점에선가 그를 지배했던 단어였을 텐데 듣는 순간 웃음이 빵 터지곤 한다. 내 웃음소리를 들으면 현실이 느껴지는지 그도 멋쩍게 웃는다.
* 섬망과 망상 속을 헤매는 남편, 저러다 내 남편이 내가 알던 사람이 되어버리는 건 아닌가 겁이 난다.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닌, 내가 알던 사람.... 생각만 해도 가슴 아프다.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어도 그에게는 행복한 순간이었기를....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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