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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신발이 뭐라고...

24년 12월의 입원 일지

by 흰꽃 향기 왕린


그가 무턱대고 침대에서 내려선다. 본인 처지 생각 못 하고 걸으려는 통에 넘어지기 일쑤다. 바닥에 엎어지면 안아 올려 세우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은데 그게 대수이랴 싶지만 오산이다. 함께 실랑이하다 둘 다 지쳐 바닥에 널브러진다. 넘어진 대로 엉켜 있던 우린 무슨 게임을 하다 그리된 것처럼 풀풀 웃는다. 다행히 요가 매트에 엎어졌을 땐 매트째 잡아당겨 와서 침대에 올린 적도 있다. 침대에서 내려오지 말라는 말은 소용없다. 내 남편 의식이 아니니 무슨 말이 먹힐까. 잠깐도 눈을 떼서는 안 될 상황이다. 기력이 떨어지면 섬망이 오래갈 수 있다는 말에 더럭 겁이 난다. 집에서 좋아지기를 마냥 기다릴 상황이 아니다.


33년 전 다녀간 암이 더 강력한 포지션으로 다시 오리라고 생각 못했듯 뇌진탕 후 겪었던 섬망이 또 나타날 거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기력을 찾지 못하는 이유가 항암과 뇌진탕의 후유증이겠거니 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밥맛 돌아오고 설사도 멈추고 점차 기운도 생길 거라는 의사 말을 믿고 보낸 시간이 길어지자 정말 반갑지 않은 섬망이 왔다.

항암 주기도 2주에서 3주로 늘렸건만 남편 컨디션이 여의치 않아 13차를 또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잘 지내면 항암이야 할 수 있겠지 했는데 항암이 문제가 아닌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넘어진 지 두 달이 지났는데 처음 섬망과 맞먹는 강도의 섬망이라니... 입원을 서둘렀다.


섬망이 있어서 1인실에 들어갔다. 3일 연속 한숨 못 자던 그가 병원에 오기 기다렸다는 듯 첫날밤부터 섬망의 다른 양상으로 잠을 잔다. 의사는 영양제를 계속 주입하면 입맛도 좋아질 것이고 그럼 기운이 생기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입원 이튿날

남편이 밥을 잘 먹는다. 거의 허겁지겁, 입에 넣어주면 삼키고 넣어주면 몇 번 씹지도 않고 삼키기를 반복한다. 그러는 이가 내 남편일까? 밥이라면 그렇게나 학을 떼던 사람이 영양제 한 팩에 밥맛을 찾았다고? 나는 남편 의식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께 내 생각을 말했더니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하는 표정을 짓는다. 남편 증세와 유사한 환자는 없는 걸까. 내 남편은 내가 알 뿐, 비록 의사일망정 다 알 수는 없다고 생각해야 하나. 혈액종양내과 의사도 소화기내과 의사도 수치로 판단하고, 잠깐 보는 것만으로 환자 상태를 진단할 뿐 속속들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내 남편의 현재 정황을 정말 모르고 있지 않은가. 기계가 알려주는 수치 이외에 나타나는 증상에 대해 말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갸우뚱할 뿐이니 보호자로선 답답할 노릇이다. 남편이야말로 환자 중심의 다학제 진료를 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이다.

밥 잘 먹던 그날 밤 남편이 잠깐 제정신이 돌아온 듯해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묻는다. 밥을 잘 먹던데 그렇게 맛이 있더냐고. 남편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자기가 언제 밥을 먹었느냐고 되묻는다. 밥 먹은 사실은 물론 의사 선생님이 다녀간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내 생각이 맞다. 누가 내 속을 알겠나. 그래서 속상하다. 그래서 외롭다. 남편은 앞뒤가 맞지 않는 나의 질문과 의문 가득한 내 시선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입원 3일째.

남편은 끄덕하면 나를 부른다. 1인실 한 공간에서 거의 붙어 있는데도 불러댄다. 통증이 있어도 내가 자기를 보고 있으면 조금 안심이 된다고 한다. 밥은 한 수저도 입에 넣어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전날의 밥 잘 먹던 이는 내 남편이 아니었다.


입원 4일째

식욕은 여전히 없다. 통증을 제어하는 독한 약 때문이겠지만 종일 비몽사몽이다. 손을 끊임없이 움직이며 알 수 없는 잠꼬대와 앓는 소리를 한다. 식사 때는 어찌 그리 빨리 돌아오는지. 식사 30분 전에 식욕 당기는 약 트레스탄 캡슐을 복용하고 식후 바로 우루사정과 펜넬캡슐을 삼켜야 한다. 밥 한술 못 먹기 일쑤이다 보니 미처 약도 못 먹고 놔두었다가 간호사한테 들키곤 한다. 밥은 안 먹어도 약은 먹어야 하는 이유를 귀가 아프게 듣는다. 간호사님은 밥 안 먹는 건 그런가 보다 하면서 의사가 처방한 약엔 민감하다. 저번 병원에서 바로 못 먹은 약은 서랍 속에 넣으라고 하던 남편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밥을 먹기 위한 약인데 밥 한술 뜨지 않고 그런 약만 먹는다는 것도 아닌 듯해서 건너뛰다 보니 약만 쌓여간다. 영양제 위너프에이플러스주 1,090ml를 하루 한 팩씩 주입하고 세 번에 걸친 진통제와 붙이는 패치까지 그를 돕는 중인데 통증도 기력도 나아지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입원 5일째

침대에서 내려와 서너 발짝이면 화장실인데 그이는 소변 통을 원한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던 내 남편이 맞나. 얼마나 기력이 없으면 그럴까 하다가도 그 정도 움직이기 싫으면 어쩌라는 것인가 자꾸 야속한 생각이 든다.


입원 6일째

13차 항암 예정인 날. 항암을 전화로 연기하려고 했더니 일단 대리로 와서 면담 좀 하자고 한다. 환자가 항암 할 체력이 아니라니 담당의로서 어쩌겠는가. 항암을 3주 연기해 놓고 다시 50분 차를 몰아 병실로 돌아오는 길에 단팥죽을 사 온다. 단팥죽이라면 식사 후에도 한 그릇 뚝딱하던 생각이 나서 샀는데 겨우 몇 술 뜨고 만다. 맛있는 단팥죽 한 그릇 먹기 위해 먼 길 물어물어 찾아갔던 오래전 이야기를 하니 기억이 난다고 한다. 예전 일은 그리 기억을 잘하면서 며칠 전 이야기는 기억하지 못하는 증세는 또 뭘까. 자신이 췌장신경내분비암 4기 진단을 받았고 수술도 못한 채 항암을 하다가 지금은 그마저 못 하고 지내는 걸 알고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물리치료사가 남편의 움직임을 돕는다. 침대에서 한 발짝도 나오려 하지 않던 남편이 의외로 잘 따라 한다. 형편없이 무너진 몸이 근육을 키웠던 동작을 기억하는 모양이다. 운동 안 하면 나중에 화장실도 못 가게 된다고 하기에 지금도 침대에서 해결하려고 한다고 일러바친다. 깜짝 놀란 치료사가 지금 움직이는 걸 보니 할 수 있겠는데 벌써 그러면 안 된다고 한다. 어떻게든 움직여야 버틸 수 있다고.

입원 7일째

마약성 패치 진통제 강도를 올렸는데도 간간이 통증이 오나 보다. 진통제 링거를 기다리는 사이 앓는 소리가 병실을 채운다. 그럴 땐 나도 조바심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안절부절못하며 병실을 오락가락한다. 영양제를 투여하는 것 빼고는 다른 조치를 하지 않는 환자. 그것도 1인 병실에 마냥 있어야 하나 회의가 온다. 퇴원하겠다고 하니 입원 전과 컨디션 차이가 있느냐고 간호사가 묻는다. 전과 똑같다고 대답하는 남편. 간호사한테 괜히 민망해진 나는 섬망이 없어졌으니 입원을 괜히 한 건 아니라고 대답한다. 남편이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눈치다. 본인에게 섬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섬망에 대해 여러 번 말했는데도 섬망 중의 자신이 어땠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니 답답할 것이다. 섬망 중 이상한 행동을 할 때 영상을 찍어놓은 것도 있지만 그걸 남편에게 보여 주고 싶지는 않다.

입원 여드레 만에 퇴원 수속을 한다. 환자복 벗어 놓고 병실을 나서면 된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남편은 다음에 할 행동을 잊은 듯 앉아만 있다. 워낙 움직임이 느려서 그러려니 한다. 그가 움직여 주기 기다리다가 문득 챙길 게 생각난다. 내가 침대 옆을 벗어난 순간, 꽈당~~! 하는 소리와 함께 남편이 침대 옆으로 굴러 떨어진다. 이마를 찧고 엎어진 상태로 꼼짝 못 하는 남편. 어떻게든 일으켜 보려고 기를 쓰지만 꼼짝하지 않는다. 나는 울부짖으며 간호사를 불러댄다. 어쩌다 그리된 건지는 남편도 모른다고 한다. 내 잘못이다. 그가 옷을 입고 바닥으로 내려올 때까지 지키고 서 있어야 했다. 외상이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다시 뇌 CT를 찍는다. 이상이 없다는 결과 확인 후 병실을 나선다.


남편의 발이 전혀 붓지 않았는데도 신발을 신길 수가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신발 주인이 움직여 주지 않으니 들어가지 않는다. 나는 본인이 발에 힘을 주지 못하면 신발도 신길 수 없다는 걸 몰랐던 사람처럼 당황스럽다. 남편은 신발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휠체어에 탄다. 사위가 남편이 탄 휠체어를 몰고 승용차까지 이동한다. 신발이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그가 그걸 할 수 없어서 아니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식조차 없다는 걸 인지하지 못한, 얼빠진 나는 그놈의 신발이 뭐라고 자동차 안에서도 신발을 제대로 신지 못한 남편 발에 자꾸 눈길을 보낸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도착해 내렸을 때도 신발 좀 제대로 신었으면 좋겠는데 남편에게는 그런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신발 안 신은 게 뭐가 중요하다고 나는 계속 신경을 쓴다. 그가 앞꿈치를 콕콕 찍어서 자기 신발이 발에 잘 들어가게 하는 것쯤은 할 수 있을 거라도 생각했던 거다. 남편은 사위 등에 업혀서 집에 들어온다. 병원으로 갈 때는 그 정도 아니지 않았나. 8일 입원했다가 돌아오는데 체력은 바닥이다. 속이 상할 대로 상해 그대로 퍼질러 울고만 싶다.




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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