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응. 왜? 왜?”
“어, 내가 便意가 있거든”
하하하 변의라니. 그냥 화장실에 가고 싶다던가 ㄸ이 마렵다거나 하면 되지 변의란다. 남편 요즘 화법에 웃지 않을 수 없다. 섬망 중일 땐 더 그렇다. 오줌 마렵다는 말을 “배뇨 좀 합시다.” “하수 처리합시다,” “오물 분리수거합시다.”라고 한 걸 보면 ‘변의’가 이해 안 될 것도 없다.
화장실 가는 과정을 두려워하는 남편의 의지라고 의심될 정도로 일을 본 지 닷새가 넘은 마당에 변의가 있다니 반갑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급하다. 소변은 침대에서 바로 소변 통을 이용했지만, 대변은 상상만 해도 머리가 무거웠는데 닥쳤으니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내 책상 의자로 사용 중인 바퀴 달린 의자를 데려온다. 바퀴 의자가 남편의 이동 수단이 되어 줄 것이다. 사실은 이런 때를 대비해 혼자 연습도 해 두었다. 바퀴 의자를 남편 침대에 바짝 붙인다. 그의 다리를 방바닥 쪽으로 내리게 유도한다. 본인도 급한 걸 인지했는지 언제 나무늘보였나 싶게 잘 따라 준다. 침대에 걸터앉은 그를 번쩍 안아 들어 의자에 옮겨 앉히는 데 성공! 자 그럼, 의자를 굴려 화장실 입구까지 갈 차례. 그의 뒤통수만 봐도 그가 겁이 나 있고 잔뜩 긴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나를 못 믿어서도 그렇지만 자기 다리 힘을 믿지 못해서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축만 해주면 화장실 출입에 문제가 없었다. 섬망이 심해지고 기운이 더 빠지더니 그리되었다. 아예 식탁까지도 올 생각을 못 하더니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침대에서 내려 바닥에 서 보지도 않고 자신 없어 한다. 그러니 소변도 간이 소변 통을 이용한다.
화장실 입구까지는 왔지만, 잔뜩 겁먹은 남편에게 나는 또 뻥쟁이가 되어야 한다.
“일단 당신 몸을 나한테 완전 의지해. 전적으로 나를 믿어야 한다고. 그렇게 해야 의자에서 변기로 옮겨 앉는 게 식은 죽 먹기가 된다니까. 거, 있잖아. 순간이동! ”
뻥이 먹히길 바라며 남편이 딴 생각을 못하게 주절거린다.
내 몸무게가 남편보다 더 나가지만 자신보다 키가 20센티미터나 작은 여자, 툭하면 스타우브 국 냄비가 너무 무겁다고 옮겨달라고 하던 여자한테 자기 몸을 맡기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생각할 틈을 안 줘야 한다. 내가 하도 큰소리를 치니까 해보기는 할 모양이다. 그로서는 나를 못 믿는다고 해도 화장실 앞에 와서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자, 힘을 빼세요. 힘을 빼고 나한테 기대 봐요. 그러곤 나는 그를 번쩍? 들어 나에게 완전히 의지하게 세우고 속옷을 내려준다. 조심스럽게 그를 변기에 앉히는 데 성공한다. “우와, 할 만하네.” 너스레까지 떨어주는 마누라다.
남편이 큰일을 금방 해결하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진 않다. 나는 그가 편히 앉아서 변의를 이어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가 앉은자리 그의 발 앞에 딱 들어갈 다른 의자를 가져다 놓고 푹신한 쿠션을 올려놓는다. 그가 편히 엎드리기 딱 좋다. 불거진 등 뼈를 보니 등이 시릴 수도 있겠다 싶다. 모포를 가져다 등을 덮어 준다. 남편에게 편하냐고 물으니 그러네, 한다.
그가 편하게 일을 볼 수 있도록 나는 그 자리를 피한다. 귀는 화장실에 걸어 놓은 채 다른 일을 찾아보지만 무엇에 집중이 되랴. 시간이 흘러도 소식이 없다. 엉덩이 살이 없는 사람이 그리 앉아 있는 것도 힘이 들 텐데... 첨부터 성공하기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아직 무르익지 않은 듯하니 침대로 가서 눕자고 꼬드긴다. 그는 그게 낫겠다고 생각했는지 그러자고 한다.
다시 침대까지 그가 겁내지 않고 갈 수 있게 나는 대범해져야 한다. 동선을 그려보다 그 앞에 등을 들이민다. 업히라고 하자 조금 망설이는 그. 나는 장담한다. 또 큰소리친다. 자기가 힘 빼고 나한테 의지하면 일도 아니라고. 아까 해봤으니 더 쉽다고.
그가 내 목에 팔을 걸자 하나 둘 셋 기압을 주고 일어선다. 그는 내 등을 기반으로 바퀴 의자로 옮겨 앉히는데 간단하게 성공. 그가 한숨을 쉰다. 아마 웃음도 섞여 있지 않았을까. 생각보다 힘들이지 않고 자기가 옮겨지는 것이 재밌기도 하고 걱정했던 게 별거 아니라는 것에 조금 맥이 빠졌겠지. 나는 그가 탄 의자를 몰고 방으로 와서 어렵지 않게 침대에 눕힌다.
30분쯤 지났을까 그가 또 나를 부른다. 신호가 진짜 같다는 거다. 그래? 나는 또 급해진다. 그런데 남편이 겁을 낸다. 좀 전에 그렇게 잘하는 걸 봤으면서도 다시 화장실에 가는 게 불편한가보다. 그럼? 그는 기저귀를 해달라는 눈치다. 나라면 기저귀보다는 어떻게든 화장실에 가는 걸 원할 것 같은데 의외다. 그 정도로 기운이 없는 모양이다. 서둘러 미리 준비해 둔 기저귀를 남편 몸에 장착시킨다. 그러곤 나는 자리를 피한다. 내가 옆에 있으면 어디 쉽겠는가.
그가 부른다. 다 한 것 같다고 한다. 갑자기 아득하다. 내 비위를 못 믿겠다. 안절부절못하고 제대로 처리를 못해서 그를 무안하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뭘 미리 해야 할지 몰라서 둔전거린다. 일단 마스크를 하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낀다. 조심스럽게 기저귀 찍찍이를 떼고 조심스럽게 열어보는데 허헉! 이게 무슨 일인가. 물컹한 것 딱딱한 것 그 어떤 흔적도 없다. 그런데 왜 남편은 변을 봤다고 생각한 걸까. 힘을 줬으나 힘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일까. 참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나는 오래 그 일을 해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다시 기저귀를 벗겨내고 미리 준비해 둔 따뜻한 물수건을 이용해서 뒤처리까지 말끔하게 하고 다시 실내복을 입혀준다.
또 얼마가 지났으려나.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난다.
“자기야~! 또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어쩌지?”
그래그래. 신호가 올 만하지. 다시 기저귀를 하겠느냐고 하니 화장실에 가잔다. 아무래도 화장실이 나을 것 같은가 보다. 한번 연습했으니 어려울 것 없다. 잽싸게 바퀴의자를 대령하고 그를 앉힌 휘리릭 화장실로 직행. 그러곤 그를 변기에 앉히기 부드럽게 성공! 나는 벌써 숙달된 조교가 다 된 거야? 별거 아니잖아.
그는 그제야 속에 있는 걸 다 비우듯 힘을 준다. 나는 느긋해져서 물 한잔 마시고 다음을 위해 힘을 비축했다가 그를 비호처럼 에스코트해서 침대에 안착시킨다. 괜한 걱정했다는 표정 좀 지어주면 좋으련만 남편의 얼굴 표정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게 빼냈음에도 남편 배속에서는 꾸르륵 소리가 나는 것 같아 전기담요를 켜서 배를 감싸준다. 조금 후 그의 얼굴이 낙락해지더니 말한다. 이제 편안해진 것 같다고. 휴우~~~! 나도 마음 놓고 숨 한번 길게 내 쉬어본다.
사진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