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로 나를 불러서 하는 말
남편의 목소리다. 하던 일을 팽개치고 달려간다.
“나 좀 어떻게 해줘.”
그의 ‘어떻게’는 몇 가지 의미가 있다. 아프니 약을 달라는 말이기도 하고 자기 자세를 바꿔 달라는 요청일 때도 있다. 어느 땐 몸을 짓누르는 이불 좀 들어내 달라는 부탁이기도 하고, 너무 아프니 자기를 어떻게 좀 해 달라는 깊은 뜻도 있다.
통증이 온 것 같지는 않은데 뭘 해달라는 얘기지? 하고 보니 자세를 바꿔 달라는 얘기다. 한쪽으로만 누워있게 되면 그쪽만 짓무르는 눈을 보호하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욕창을 예방하는 차원으로 자주 자세를 바꿔야 한다. 돌아눕는 것도 쉽지 않은 남편은 수시로 나를 불러 자기 몸을 돌려달라고 한다. 책장 쪽으로 각을 세우고 누운 그의 몸과 매트 사이에 양손을 넣고 벽 쪽을 향해 돌려준다.
“응 됐어. 고마워!”
자세를 바꾸고 나면 잊지 않고 그의 손 가까이 휴대전화를 가져다 놓아야 한다. 받고 거는 일이 거의 없지만 전화는 옆에 두어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그는 이제 폰을 열어서 뉴스나 유튜브를 보지 않는다. 가끔 오늘이 며칠인지 또는 몇 시인지 확인한다. 그런 거야 나에게 물어도 되니 전화는 큰 쓸모가 없어 보이는데도 안 보이면 찾아 댄다. “내 시계가 없네.” “카메라가 도망갔어.” “계산기에 발이 달렸나 봐.” “내 지갑 어디 갔지?”하는 식으로 휴대폰을 찾는다. 나를 불러놓고 빨리 나타나지 않으면 전화할 때도 있다. 막상 연결되면 “아, 집에 있었어? 어디 나간 줄 알고” 한다. 내가 집을 비우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잠시만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안 놓이는 모양이다.
나 좀 어떻게 해줘! 속에는 이불도 끼어 있다. 이불을 매우 가벼운 것으로 바꿨는데도 여전히 무겁다고 한다. 근육이 없으니 깃털마저 바위처럼 느껴지는가. 무거운 것이 자기를 짓눌러서 꼼짝 못 하겠다고 한다. 그가 나 좀 어떻게 해달라고 해서 가보면 이불속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있는 그의 다리 쪽을 눈으로 손으로 가리킨다. 이불을 살짝 들춰주면 ‘아고, 이제 살았네’ 하는 그의 표정이 꼭 천진스러운 아이 같다.
나 좀~~ 뒤 어떻게 해달라는 말까지도 못하고 급하게 나를 불러댈 때는 상황이 급하다. 통증 때문에 어떻게 해볼 수가 없으니 자기 좀 어떻게 해달라는 거다. 속을 열어볼 수도 없고, 도대체 무슨 놈의 암 덩어리가 내 남편을 이리 힘들게 하나 맞짱이라도 뜨고 싶은 심정이다.
한참 잠에 빠져 있을 때 불러대면 나 또한 '나 좀 어떻게 해달라'라고 소리치고 싶다. 몸은 천근이고 정신은 혼미하지만 안 일어날 수 없는 상황. 짜증낸들 무슨 소용일까만 이 철딱서니 없는 여자는 일어나면서도 우는소리를 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남편은 나타나 주는 아내가 고마운지 예전에 안 하던 립서비스, 고맙다는 말부터 한다. 나에게 유난히 화를 내던 때, 이렇게까지 해주는 내가 이쁘지 않냐며 한 번만 고맙다는 말 좀 해달라고 들이대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볼 뿐 말을 아끼던 남편이었는데 요즘은 수시로 고맙다고 한다. 너무도 부드러운 말투에 정신이 번쩍 든 나는 남편 옆에 바짝 다가앉는다.
그의 등이나 복부를 부드럽게 마사지하듯 또는 쓰다듬듯 어느 땐 득득 긁듯 몸을 자극해 줘야 한다. 복부, 옆구리, 등, 팔, 다리 내 손 닿는 어디든 뼈뿐이지만 나는 악기 연주하듯 리듬을 타면서 오르락내리락한다. 조물주가 빚어 놓은 인간의 형상이 이토록 정교하고 아름다운지 근육을 반납해 버린 한 남자를 보면서 느낀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뼈의 독특한 모양새, 뼈 구조 하나하나 신이 빚어 놓은 예술품이다. 그의 납작하고 날카롭기까지 한 골반에서 내 손은 멈춘다.
근육을 잃어버린 남자에게도 산악대장으로 깃발 날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와 나는 북한산 산악대회 첫 번째 우승 멤버였다. 남자 다섯 여자 둘이 한 조, 나도 그 팀에 끼었다가 살 떨리는 고통을 겪으며 골인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 어찌 잊히랴. 살이 너무 빠진다고 남편에게 극구 말렸던 마라톤은 또 어떻고. 마라톤 완주 매달로 꽉 찬 서랍 때문에 장이 한쪽으로 기우는 거 아니냐며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끝내 마라톤만은 못 하게 했다. 그때만 해도 남편의 뒷모습 꽤 근사했는데...
그 단단한 근육 속에 이토록 얄팍한 뼈가 숨어 있을 줄 상상이나 했으랴. 나는 아담의 뼈를 만지는 행운을 얻었다. 찬찬히 더듬더듬 그의 몸을 만져준다. 만져준다고 쓰지만 탐색하듯 만져 본다는 게 맞을지도. 예전 같으면 내 손이 자기 허리만 감아도 누가 본다고 몸을 사리던 사람이 통증을 뺀 몸은 자기 것이 아닌 듯 내게 맡기고 있다. 팔이 저릿하고 허리가 뒤틀리는 지경이 될 때까지 쓰다듬고 있으려니 그제야 그의 얼굴이 평온해진다. 통증이 사라져서라기보다 심리적 안정이 부른 겉잠일 것이다.
그렇게 겨우 또 잠이 드는가 싶으면 나 좀 어떻게 해달라고 또 부른다. 몇 차례나 그랬을까. 도드라진 척추를 따라 손을 펼쳐 쥐고 훑어 내리면서 나도 급기야 꾸벅꾸벅한다. 창이 희불그레한 걸 보니 날이 밝아 오나 보다. 내가 조는 걸 보았는지 그만 내려가서 자라고 하면서 말을 보탠다.
“자긴 왜 그렇게 나한테 잘해? 고맙고 미안한데 자꾸 부르게 되네. 이제 안 부를 테니까 얼른 자.”
몽롱하다. 코가 맹맹하고 뒷골이 땅긴다. 한 시간 후면 영양제를 놓기 위해 간호사님이 온다. 잠깐이라도 자 둬야 견뎌 낼 것 같아서 남편한테 말한다. 그럼 30분만 눈을 붙일 테니 부르고 싶어도 참아보라고. 남편은 알았다고 어서 가 자라고 손을 민다. 다정도 하다.
알람을 맞춰 놓고 세라젬의 따듯한 온기 속에서 막 잠이 드는가 싶었는데 남편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버튼에 눌린 공처럼 벌떡 일어나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그에게 간다. 남편은 잠들어 있다. 나는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일까. 다시 돌아와 눕는다. 남편이 부른 건지 꿈속이었는지 누가 나를 잡아끄는 것 같아 또 벌떡 일어난다. 내 가슴은 방망이질이다. 그는 다리에 감긴 이불을 털어내려고 발버둥인데 안 되는지 연속 헛발질이다. 이불자락을 살짝 들어준다. 그가 눈을 뜨면서 “고마워” 한다. 친절해진 남편. 하하 <우리 남편이 달라졌어요>라고 광고라도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지금 브런치에 광고하는 중이다.
그렇게나 내 눈꺼풀을 잡아당기던 잠은 이미 달아났다. 커피 물이나 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