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밥상을 차립니다>
많이 망설였습니다. 유쾌하지 않은 남편 이야기를 그렇게 시시콜콜 쓰고 싶더냐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아 갈등도 있었습니다. 정말 드러내기 쉽지 않은 이야기는 옮겨 놓지 못했어요.
남편이 췌장암 선고를 받는 순간 거대한 철문이 가로막고 선 듯 아득했습니다. 남편 건강 챙김네 했던 세월이 고작 오답 노트만을 복기한 셈인가 하는 자책으로 괴로웠어요. 빵점 처리된 시험지를 펼쳐 들고 삶의 덧없음과 방향을 알 수 없는 분노와 그에 대한 연민이 뒤엉켜 혼란스러웠습니다. 거대한 자장이 삶 전반을 흔들어 놓고 갔는데도 남편은 오히려 덤덤하더군요. 젊어서 암을 만나 30년 훌쩍 넘게 잘 살아온 것도 감사하다고 했어요. 남편 옆에서 생각이 많았습니다. 감사는 가까운 곳에 있는데 남의 불행을 보면서 내 행복을 가늠했던,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이었거든요. 다시 한번 최선을 다해보자! 제 시계는 오로지 남편 따라 돌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박제된 고통을 짊어진 채 하루하루 버텨내는 심정, 세상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또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새삼 다시 느끼고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말하긴 너무 아픈 경험이지요.
암과 싸워 치유해 가는 과정을 기록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일기 쓰듯 브런치를 시작했습니다. 마감이 있다는 장점을 이용하면 어떻게라도 써지겠지 해서요. 환자와 실랑이하다 보면 글이 사치처럼 여겨지는 날도 있었지만, 마감날 저녁에 앉아 딸과 주고받은 문자를 토대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한 편 한 편 고통으로 마비된 스토리지만 훗날, 이 기록이 삶에 치열했던 어느 한 시기로 회자되기를 소망하며 진솔하게 쓰려고 애썼습니다. 울울하고 외로워도 고개 묻고 잠시 쉬어갈 어깨 하나만 빌릴 수 있어도 그럭저럭 견딜만하다고 한 선배의 글이 생각나요. 브런치는 제가 막막하고 외로울 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어깨였습니다. 글을 쓰면서, 40년 넘게 붙어 살고도 몰랐던 남편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하고 객관적 시각으로 저를 다시 돌아보고 알아가며 의식의 확장을 경험하는 소득도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작하기 잘했다고 생각해요.
어느 한때 이토록 '지금'에 몰입해 본 적이 있었던가 싶네요. 남편과 오직 하나에 집중하고 매진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또한 매번 힘들게 글을 채우면서도 누군가 읽고 응원해 주신다고 생각하면 힘이 났습니다. 제가 비슷한 처지에 계신 분의 글을 읽으며 화살기도 뜨겁게 바쳤듯, 누군가도 제 글에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한 꼭지 한 꼭지 이어갈 동력이 되기도 했답니다.
한 개인 사사로운 감정의 구구한 넋두리에 불과한데도 구독해 주시고 공감의 라이킷과 애정 어린 댓글까지 남겨 주신 작가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밥상을 차립니다> 연재는 30회로 마무리합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나 다음을 기약할게요. 더 유연해지고 강해져서 돌아올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물오름 달 3월에 연재를 마치며
흰꽃 향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