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모라는 이름의 사람책

by 마음의여백

사람은 각자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써 내려간다고 한다.

표지도, 장르도, 문체도 모두 다르지만,

그 책은 결국 살아온 날들이 쌓여 엮인 지혜의 기록이다.


우리는 서로의 책을 읽으며 살아간다.

그중에서도 ‘부모’라는 책은 가장 깊고, 읽기 어려운 지혜의 서(書)다

나는 지금 어떤 이야기로 나의 책을 쓰고 있을까.

그리고 묵묵히 자기 책을 써 오신 부모님의 이야기를 나는 얼마나 깊이 읽어 왔을까.


찬 바람이 불면 부모님은 으레 자식들에게 보낼 김장을 준비하신다.

자식들은 이제는 힘드시니 그만하시라 말씀드리지만

부모님은 매번 “올해까지만” 하시고는

다음 해가 되면 다시 배추를 심으신다.


올해만큼은 정말 김장을 하지 않으셨으면 했다.

어머니가 독감과 코로나 예방접종을 함께 맞으신 뒤 쓰러지셨고,

병원에 일주일이나 입원하셨다.

아직도 어지러움으로 통원 치료를 받고 계시는데,

며칠 전 통화에서 또다시 김장을 준비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어젯밤 아내의 열차표를 예매했다.

부모님께 알리지 않은 채 아내는 오늘 아침 국거리만 챙겨 들고 혼자 시골로 향했다.

행사를 핑계로 함께 가지 못해 마음 한편이 아렸다.

내 책을 잘 쓰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아내가 시골에 도착해 보내온 사진 속에는

마당 수돗가에서 차가운 물로 배추를 씻고 계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허리를 굽히신 채 배추를 씻고 포기를 가르시는 손길.

그 모습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버지가 배추를 씻어 문장을 다듬으면,

어머니는 붉은 양념으로 사랑의 밑줄을 긋는다.

두 분은 아픈 허리를 곧추세우며

자식에게 보내는 가장 뜨거운 책을 여전히 쓰고 계신다.


아내는 준비해 간 국거리로 따뜻한 밥상을 차리고

그 곁에서 김장을 도울 것이다.

김치 한 포기에도 부모님의 사랑이 꾹꾹 눌러 담겨 있을 터.

그 김치로 밥 몇 그릇을 비우며 감탄하겠지만

그 맛 뒤에 스며 있을 부모님의 통증을 생각하면

목이 저릿해질 것만 같다.


〔부모님 김치〕


다 자란 자식임에도 부모님의 사랑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끝이 없다.

나는 그 사랑의 깊이를 아직도 다 따라가지 못한다.


부모님이 온몸으로 쓰시는 이 '사랑의 책'을 읽을 땐 참 아리다.


가슴은 훈훈해지지만,

한편으론 그 책장이 더는 힘겨운 노동으로 채워지지 않기를

그러나 너무 빨리 덮이지도 않기를 바라는 모순된 마음이 교차한다.

내년에는 정말 텃밭에 배추가 파종되기 않기를 바란다.

부모님이 더는 몸을 깎아 책을 쓰지 않으셔도,

그 마음은 이미 다 읽었다고 조심스레 말씀드리고 싶다.

#부모님 #사랑 #김장 #인생책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은행나무는 기다려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