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솔길 Jan 08. 2024

FM 같은 사람

 업무와 학년을 발표하고 첫 만남을 가졌다. 털털해 보이는 K가 천천히 다가와 뜬금없이 내게 부드러워 보이는 인상이라고 말을 건다. 자기 경험을 늘어놓고 아직 잘 모르는 후배에게 농담 삼아 건네는 말투는 그래서 귀에 거슬렸다. 동학년으로 만났으니 선후배 간에 예의를 지켰으면 했는데 무르디 무른 연약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았다. 뜻하지 않는 업무로 바짝 긴장을 한 첫날부터 동학년 동료로 만난 두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 그래도 친하게 지내던 직장 선배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며 한 걱정을 . '바람이라도 불면 확 날아가게 생겼어. 밥 좀 많이 먹어!' 


 둘째를 유치원에 들어 보낸 후 출근하면 정말 기운이 다 빠지고 온몸이 흥건하다. 동료나 후배들은 행동부터 똑 부러지는 데 언제나 난 허둥댄다. 직장맘의 처지는 비슷할 텐데 지각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는 것은 나뿐인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건 품에서 떨어지기 싫다고 붙잡은 둘째가 안쓰럽다가도 출근과 동시에 직장일에 몰두하는 점이. 그때는 아이와 집안일을 끌어안고 바쁘게 앞만 보고 살던 엄마이며 교사였다.


 그날도 예체능 수행평가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준을 정하고 최대한 공평하게 실시하는 것을 목표를 삼으며 두 과목을 연달아했다. 먼저 안내를 했는데도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꼼꼼하게 챙기며 진지한 편이다. 평가로만 느끼지 않고 발전하는 모습을 만나도록 지도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종례시간이 10분 이상이나 늦었고 오후 협의회가 있다는 것을 깜박했다.


 서울깍쟁이 같이 생긴 L이 빨리 오라고 앞문까지 왔을 때야 비로소 생각이 났다. 죄송한 마음으로 동학년 회의에 들어갔다. 숨이 차게 앉으며 늦은 이유를 간단하게 말하자 털털한 K가 "김 선생은 참.... FM 같아!"라고 말하는 거다. 나는 라디오 채널에서 말하는 FM이 언뜻 떠올랐지만 그가 말하는 FM이 라디오 소리가 잘 들리도록 깨끗하게 맞추는 주파수가 아님을 알아챘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융통성이 없이 원칙대로 수행하는 내가 답답하다는 뜻이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내 생각이지만 뭐를 해도 젊은 내가 나으면 나았지 뒤쳐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학급경영이야 환한 아이들의 얼굴만 봐도 알 것이고 고학년이지만 문제 한번 일으킨 적이 없을 정도다. 기본부터 쌓은 결과라며 수업참관 때마다 관리자들은 칭찬을 했. 그런데 FM 같다고?


 반사적으로 에? 하는 순간이지만 미세한 동작들이 보였다. 먼저 털털한 K의 입사이로 삐죽이 새어 나오는 웃음을. 동시에 긍정인지 동감인지 알 듯 모를 듯 크게 는 서울깍쟁이 L표정까지.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묘한 기분이 들었고 틀림없이 그건 비웃는 것에 가깝다고 느꼈다. 그런데도  순간은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털털한 K와 서울깍쟁이 L은 그동안 일했던 사람들과 많이 달랐다. 우선 매년 3월이면 겪는 업무 스트레스 최고치인 기간을 대하는 태도부터 그랬. 3월은 만만치 않은 업무량에 사람대 사람으로 만나는 교사 본연의 학생지도 때문에 목이 붓고 입술주위로 수포가 생길 정도로 힘든 시기다. 겨우겨우 견디며 이겨내는 내 앞에서 그들의 발걸음은 여유롭고 느긋했다.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는 능력자들이었다. 늘 학교에서 가장 빨리 퇴근하지만 아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제출하라는 문서나 학생 파악 자료 기한이 지나도 개의치 않으니 나중엔 담당자가 오히려 부탁할 정도였다.


 나이가 많아도 경력이 짧은 털털한 학년 부장 K는 싱글벙글 눈웃음을 쳤다. 꼬투리만 잡을 것 같은 그 또래의 관리자들만 보다가 먼저 아는 체를 하는 그가 오히려 친근했다. 지나치는 순간마다 담배냄새가 나고 본인 입으로 술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건강은 무척 챙겼다. 묻지도 않은 개인적인 집안사정이며 요즘 만나는 여자 친구를 소개할 정도로 동학년인 우리에게는 거리낌이 없었다. 가끔은 시나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그의 젊은 시절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묻지는 않았다. 아마도 십 년 넘게 다른 사업을 하다가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일을 접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에 비해 젊었던 서울깍쟁이 L은 날렵한 안경테너머로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재빨랐다. 그의 눈에 띄는 순간, 상대방에 관해 아무 정보가 없더라도 본 것처럼 읊어대면 그럴싸했다. 다 맞다고는 못해도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었다.


 서울깍쟁이로만 알았던 L이 털털한 K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의외였지만 배울만 했다. 부장 업무 경험이 부족하고 일처리가 늦어서 답답했을 텐데 선뜻 아는 체를 하지 않고 무안하지 않을 정도로 도와주었다. 물론  내게 같이 하자는 제안을 꼭 했지만 실수 한번 없이 노련하게 행동했다. 그러더니 부장을 형님으로 모신다고 하면서 둘은 형제처럼 붙어 다녔다.


 그렇다면 분주한 엄마티를 벗어버리지 못하는 나를 L은 어떻게 보았을까? 허둥대며 지각하는 것만 봐도 눈치챘을 텐데 그의 노련함은 여전하다. 내색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대로 포착했던 일이 하나 있다. 털털한 K보다 'FM 같은 사람'인 내 앞에서 대놓고 웃었던 사람이 누구더라? 분명 그를 보며 기분은 상했지만 다행히 그 말에 큰 상처는 받지 않았다. 그들 또한 교사로서 갖출 필요가 있는 표준 주파수에서 꽤나 벗어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간은 바쁠수록 빨리 지나가는 법. 주파수는 서로 달라도 어김없이 2학기는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샘! 괜찮아요?" 하며 후배가 내게 물었. 서울사람들과(K와 L은 서울 사람) 동학년 하면서 불편하지 않냐고? 무척 낯설고 이상한 팀으로 보이는데 힘들지는 않냐고? 정말 걱정했다고 한다. 지나가다 들었는데 선배인 나를 보고 '선생님'이 아닌 '선생'도 아닌 이름뒤에 '씨'를 붙여 부르는 걸 보고 놀랐다고 한다.


 교사라면 당연히 부르고 듣는 흔한 호칭 대신에 가게나 타회사에서도 부르지 않는 그 말이 낯설었다고 한다. 생소했을 그 말은 동학년끼리 터놓고 지내자는 털털한 K부장의 제안이었다. 나를 함부로 하는 뜻이 아니란 걸 안 뒤로는 거북하지는 않았다. '형님!, 아우!' 하는 그들에게 오히려 까마득한 후배인 내게 '선생님' 하는 것이 더 어색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알고 보니 나를 두고 직장 안에서 얘기들이 많았다고 한다. 특이한 조합으로 굴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동료들이나 멀리서 걱정을 한 관리자들은 한편으로 잘 지내는 모습이 신기했다고 한다. 나중에 넌지시 관리자는 내게 이런 말을 다.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잘 지내는 같아! 보기 하고는 다르네!"


 나를 어떻게 보았길래. 보기와 다르다는 것인가? 혹시나 서울 사람들에게 돌려 깎기를 당하거나 물러 터져서 울며 겨자 먹기로 동학년 업무를 끙끙대며 한다고 여겼던 걸까? 그의 단순한 생각인지 아니면 생각보다 단단해서 다행이라는 칭찬인지 모를 말을 전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대로다. 다부지지 못하고 늘 쓰러질 듯 툭하면 감기에 걸리기 일쑤다. 지금은 큰 학교로 옮겼고 곁에는 단단한 어깨로 큰소리치며 휘어잡는 후배들이 많아졌다. 그들을 보면 나 같지 않아서 다행이고 한편으로는 부럽다.


 지난 태풍에 가장 단단하게 버틸 것 같았던 소나무가 먼저 넘어진 걸 보았다. 그 옆에서 흔들리며 쓰러질 것처럼 연약하기 짝이 없던 대나무는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잘 버티고 있는데 말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한 햇살을 받으며 여전히 흔들릴 뿐 그대로다. 견뎌줘서 참 다행이고 고마웠다.







작가의 이전글  그 남자의 미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