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솔길 Mar 13. 2023

05. '홀딱 벗고 새'라고?

『나는 식물을 따라 걷기로 했다』를 읽고


 이런 곳에 책방이 있을까

 바닷가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그곳은 구부러진 좁은 길을 따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시골이었다. 섬에서 흔히 보던 검은 돌로 된 담이 미로처럼 이어졌다. 검은 돌빛을 눅이는 것은 다육식물과 천년초의 녹색빛이었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드디어 녹이 꽃처럼 핀 파란색 대문이 나타났다. 내가 찾고자 한 곳이었다. 지도의 축적이 그렇듯 제주도의 ‘책방올레지도’로 그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책방에 들어가니 보통의 거실보다 작은 공간이었다. 다행히 벽면을 따라 만든 책꽂이에 책이 빼곡했다. 책방 손님은 나와 남편 둘뿐. 두 사람이 들어서니 더 이상의 손님은 어쩔 수 없이 입장이 어려웠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편안하고 아늑했다.

 

 아주 젊은 청춘이 조용히 책을 읽으며 손님을 맞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책을 보며 눈길을 멈추고 재촉도 없었다.  ‘이런 곳에 볼만한 책이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둘러보았다. 하나하나 눈인사를 하며 천천히 살피다가 연두색 책등에 그려진 작은 풀잎이 눈에 띄었다. 화려한 꽃은 아니지만 있는 그대로 핀 풀잎이 반짝거렸다. 한수정의『나는 식물을 따라 걷기로 했다』라는 책을 그렇게 만났다.   


by 오솔길

   

 저자는 식물을 그리는 세밀화가다. 이 책은 평범한 일상을 살던 그가 ‘식물화가’로서 변화하게 된 이야기다. 자연에 대한 애착과 관심이 그의 삶을 달라지게 했다. 그가 걸었던 길에서 만난 식물과 새들을 나도 만나고 싶었다.      


“우리에겐 최소한의 고요와 여유가 필요했다. 그것은 자연을 만나는 데 무척 중요한 요소였다. 산을 오른다 할지라도 발아래 핀 들꽃을 바라보고 신기한 자연물에 눈길을 주며 처음 듣는 새소리에 고개를 돌릴 수 있기를 바랐다.” -본문 중에서     

 

 코로나19로 그동안 다녔던 운동을 그만두고, 대안으로 동네 길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운동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렸다. 특히 이전에는 흘려들었던 새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를 보았다. 빈 나무를 두드리듯 ‘도르르르 도르르르’ 하는 소리가 온 산에 퍼졌다. 아무리 봐도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울림이 무척 컸다. 어떤 새인지 궁금해서 검색해서 보니 ‘오색딱따구리’라고 한다. ‘저 조그만 부리로 그렇게 큰 울림을 만들었다고!’     


 ‘휘리릭 휘리릭’ 하며 여기저기에서 분주하게 오가는 새는 딱새, 참새, 직박구리들이다. 작은 몸으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잽싸게 움직이며 날아다닌다. 비슷한 비행을 하지만 저마다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가졌다. 그걸 담아보겠다고 예민하게 내 귀를 들이대도 참새 외는 어떤 새인지 구별은 어려웠다. 그러다가 작은 새들이 좀 조용해지고 어스름한 어둠이 야산을 비추면 독특하게 우는 새가 나타난다. 처음 들어 보는 소리였다. 걸음을 멈추고 소리에 집중했다. 그러자 그 소리는 호젓한 산골 마을의 지붕을 넘어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울렸다.


‘허허허 허, 허허허 허’

 네 마디를 울고 다시 반복하며 소리를 낸다. 마지막 음은 앞의 세 마디보다 살짝 낮아지며 끝마친다. 내게는 그 소리가 '파파파 미, 파파파 미'로 들렸다. 이 독특한 가수의 이름이 알고 싶어서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홀딱 벗고, 홀딱 벗고'란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참 외설스럽게 운다는 생각에 혼자 19금인가 하다가

“네 마디로 우는 저 새는 검은등뻐꾸기래!”


 오늘도 어김없이 새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길가엔 추운 겨울을 이기고 나오려는 풀들이 움트고 있다. 청량제를 마시듯 움츠렸던 내 감각들이 자연스럽게 열리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저자는 이런 기분을 매번 느끼며 걷고 또 걸었을 것이다. 천천히 걸어야만 보고 들을 수 있는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소소한 책그림 후기 ; 아파트를 나와 우두로(당진시 우두로)를 걸었던 나의 산책로를 간단히 그렸다.


오늘의 책
『나는 식물을 따라 걷기로 했다』, 한수정, 현암사


keyword
작가의 이전글 04. 지랄 총량의 법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