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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모두에게 필연적인 '쉬었음'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끝없는 쳇바퀴를 끝없이 돌리고 있었음을요..

https://youtu.be/GwvvNqFSDcI

제 유튜브에서 색다르게 즐길 수 있습니다.

고3 여름, 수시 원서를 쓸 때가 되어서야 세상은 제게 물었습니다.

어떤 길을 갈 건지 빨리 정하라고요.


하지만 대한민국의 평범한 고3이 대개 그렇듯, 저는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딱히 없었습니다.

일은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해 참고 견디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선택의 기준은 단 두 가지.

‘취업이 잘 되는가’, ‘안정적으로 돈을 잘 버는가’였죠.


간호사가 된 내 모습을 상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성적에 맞고, 취업이 쉽고, 돈도 적당히 벌 수 있다고 하는 간호학과는 참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 이야기를 할 수 없고,

여름 벌레에게 얼음에 대해 설명할 수 없고,

편협한 선비에게 도를 이야기할 수 없듯이,


의무교육의 공간, 시간, 지식에 갇힌 고등학생에게 ‘나다운 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의무교육을 받으며, 누구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진지하게 묻지 않았습니다.

다 집어치우고, 일단 대학을 가라고 했죠.

이러나 저러나 제가 향해야 할 목적지는 ‘대학’이었습니다.



초등학생 고학년 즈음, 한창 롯데가 잘해서 부산에 야구가 유행할 때,

(로이스터 감독, 가르시아, 이대호, 강민호 선수가 생각납니다.)

야구 자체가 순수하게 재미있었습니다.

‘야구 선수를 해볼까?’라는 생각도 해봤을 정도로요.


하지만 평범한 초등학생 고학년이 갑자기 야구 선수에 도전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미 어릴 적부터 리틀 야구단에 들어가 야구를 배운 친구들에 비해 뒤처진 것 같았고,

야구선수에 도전하다가 잘 안 돼서 다시 공부를 하게 되면 더 뒤처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내가 향해야 할 곳은 대학이지. 이제 와서 방향을 바꿀 수 없어…’

그렇게 마음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별거 아니라는 듯,

‘빡빡머리가 싫어서 야구를 안 했다.’고 말하고 다녔죠.



세월이 흘러 마침내 대학에 도착했는데, 금세 또 다른 목적지가 정해졌습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가 될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간호사를 하는 게 맞나?”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어차피 간호사 할 건데 뭐…” 하는 생각이 의문을 막았습니다.


저는 항상 저 멀리에 아주 명확한 목적지를 정해뒀습니다.

명확한 목적지가 있으니,

가보고 싶지만 불확실한 다른 길을 갈 필요도,

길을 걷고 있는 나와 이미 지나온 길을 돌아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 모든 건 비효율이고, 뒤처지는 일이니까요.

저 멀리 명확한 목적지가 있으니 빨리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목적지를 정할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살아가면서 나의 ‘생각’, 나를 둘러싼 ‘환경’,

심지어는 나를 이루고 있는 ‘세포’마저 바뀌니까요.


과거의 나는 어떤 일을 하든 참고 견디면 되고,

안정적으로 적당히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간호사가 되었을 때의 나는

무엇보다, ‘나다운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제 다음 목적지는 ‘병원 일에 적응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으로 정해졌습니다.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끝없는 쳇바퀴를 죽어라 돌리고 있었음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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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돌아가서,

초등학생이 뒤처지는 게 뭐 그리 두려워 야구선수를 도전하지 못했나 싶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에서 말했듯이,

야구선수가 되지 못했더라도

그 과정 속에서 찍힌 점들이 연결되어 무언가를 이루었을 텐데 말이죠.


그걸 알면서도,

지금의 나는 나다운 일에 도전하기가 두렵습니다.


평생 제자리에서 쳇바퀴만 돌린 건지..

초등학생인 나와 지금의 내가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여전히 방황하고, 실패하고, 뒤처진 사람이 되는 건 끔찍하고,

죽어라 돌리고 있는 쳇바퀴가 멈추면 큰일 날 것 같습니다.



영화 ‘서브스턴스’에서는

늙고 한물 간 주인공이 미스터리한 약물의 힘으로

‘젊고 완벽한 새로운 나’와 ‘늙고 한물 간 원래의 나’로

일주일씩 살아갈 수 있게 되는데요.


각각의 나로 일주일씩 살아간다는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대충 예상이 되듯이,

“이번 한 번만… 딱 한 번만…” 하며

‘젊고 완벽해 보이는 새로운 나’로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지게 됩니다.


주인공은 ‘이번 한 번만’의 쳇바퀴를 멈추지 못하고

끝내 끔찍한 괴물이 되는데요.


나도 ‘이번 한 번만’의 쳇바퀴를 멈추지 못하는 게 아닌가,

죽어라 쳇바퀴만 돌리다 괴물이 되어버리는 게 아닌가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쳇바퀴를 멈추고 ‘쉬었음 청년’이 되었습니다.

잠깐 멈춰서 지금까지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나의 삶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예상했던 것만큼이나

방황하고 실패하고 뒤처진 사람이 되는 건 끔찍합니다.

이 과정이 어떤 점들로 연결될지 가늠이 안 됩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쉬었음 기간을 통해 이전의 나보다 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가짜 나’를 버리고,

‘망가지고 부족한 진짜 나’를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동기가 부여되고,

누구를 돕고 싶은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진정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여유와 관용을 베푸니,

그제서야 다른 이들에게도 그럴 수 있습니다.


불안하고 조급하지만,

덕분에 불안함과 조급함을 느끼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선택한 쉬었음 기간을 내가 책임져야 하듯이,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의 여정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자유롭고 즐겁게,

좋아하는 걸 시도할 수 있는 학창시절에

이렇게 방황하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쉽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젊을 때 실패해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조금 이해가 됩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뭐 그리 애쓰며 살았는지요…


그렇게 두려워하던 ‘실패’는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정의한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실패해도 괜찮은 귀한 시간을 누리지 못하고 있고,

얼마나 많은 청년들과 어른들이

이미 그 시간을 누리지 못했을까요…?


마음이 정말 답답하고,

속상하고,

안타깝습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는 쉬었음 기간을

거쳐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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