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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발 Jul 23. 2022

백수의 달리기

<하는 일도 없는데 달리기라도 해야지>


작년부터 올해까지. 자주 백수가 된다. 자의 반 타의 반. 생계로부터 멀어진다. 


참으로 미스터리한 일은 나름 20년 가까이 꾸준히 일을 했는데, 일을 그만둔 바로 다음 달부터 생계의 위협을 받는다는 점이다.  내 돈은 다 어디 갔을까. 나는 돈을 벌긴 벌었나. 혹시 돈을 벌고 있었다고 착각했던 걸까. 앞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뭘 해서 벌지. 어쩌다 이렇게까지 가난해졌지. 어디 보자. 아. 태어나면서부터 가난했구나. 그러면 죽을 때까지 가난하려나.  큰일 났네. 


내둥 하는 일이 없으니 쓰잘데 없는 생각을 집요하게 파고들게 된다. 생각을 파기 시작했는데 불안이 샘솟는다.  머릿속에서 무한 삽질을 하다 보니 불안의 검은 강이 나를 잠식할 것처럼 빠르게 차오른다. 피로하다. 하는 일도 없는데 잠이나 자야지. 


두 어 시간 자고 일어났더니 무척 개운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58분. 일어나니 배가 고프다. 하는 일도 없는데 밥이나 먹어야지. 김치찌개, 오이무침, 계란말이에 잡곡밥. 상큼한 오이무침과 따뜻하고 짭조름한 계란말이가 밥맛을 돋운다. 아. 밥은 왜 또 맛있고 난리야.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절도 없고, 가족도 없는 중년이 심지어 직업도 없는데, 왜 밥은 맛있냐고. 

나는 어쩌다 나이고, 참으로 변하지 않는 나여서, 내가 나로 사는 건 가끔 환장할 노릇이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밥맛을 없앨 수 없다면 달리기라도 해야지. 

달리다 보면 불안함도 잠잠해지니까. 


식욕과 불안이 다른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한쪽이 너무 비대해지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이 균형이 무너지면 많이 힘들어질 것 같다. 경험상 그랬다. 

그러니까 하는 일은  없지만 밥도 먹어야 하고,  달리기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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