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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발 Aug 03. 2022

마음만은 수영장


빌라 꼭대기층에 살고 있다. 한낮에는 실내 온도가 33도까지 올라간다. 해가 지면 31도. 다시 해뜨기 전까지 그 온도를 그대로 유지한다. 콘크리트는 욕심 쟁인가 보다. 열을 가두기만 하고, 내보낼 줄을 몰라. 


에어컨이 없다 보니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쏟아진다. 샤워하고 선풍기 앞에 앉아 있으면 잠깐 시원하지만 사람이 한 자리에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기가 힘들다. 앉아 있기가 힘들어 드러누우면 잠이 온다. 자다 보면 등에서 땀이 난다. 뽀송했던 티셔츠가 늘어지고 몸에 감긴다. 찝찝하다. 


꼭대기층 열기는 사람의 정신도 흐트러뜨린다. 약간 몽롱한 상태가 된다. 불쾌하고 텁텁한 안갯속에 갇힌 것처럼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의 상태가 찾아오기도 한다. 피할 곳 없는 무더위 속에서 산다는 것이 이런 건 줄 전에는 몰랐다. 


수영장, 계곡에 몸을 담그고 싶다. 당장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유튜브로 계곡 탐방하는 영상을 찾아보고, 수영장에 가는 상상을 한다. 사람의 감각은 오묘해서 그런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시원해지는 기분이다.


8월 7일은 입추. 23일은 처서. 

살면서 특정 절기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건 처음이다. 에어컨 없던 시절에는 다들 그랬을까. 그렇다면 나는 시간을 거꾸로 돌려 살고 있는 셈이겠다. 그래. 뭐. 어차피 제정신도 아닌데 꼭대기층 삶의 낭만이라고 생각하자. 피할 수 없으면 현실을 잊는 게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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