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단발 Aug 13. 2022

밤의 소리

<밤. 잠들 수 없는 사람들>



주택가 골목길은 잠들지 않는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 바깥에서 육중한 차가 급히 멈추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바스락 - 달그락 - 쿵, 하는 소리가 여러 차례 들린다. 리드미컬한 소리가 멈추고 다시 차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골목길과 도로가 이어지는 모퉁이에 쌓아 둔 쓰레기를 수거하는 소리다. 


20미터 남짓한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7개의 빌라가 들어서 있다. 빌라는 5층 높이. 한 층에 2가구씩 잡으면 약 70가구가 모여 살고 있는 셈이다. 70가구가 내뱉는 쓰레기의 양은 상당하다. 지자체에서 주 5일 수거해가는 일정이지만 하루도 쓰레기가 쌓여있지 않은 날이 없다. 거의 매일 밤. 환경미화원들이 쓰레기를 치우는 소리가 들린다.


골목길이 다시 고요해진다. 잠시 후. 또 다른 차가 시동을 끄지 않고 차를 세운다. 드르륵 쿵. 철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번엔 택배. 거의 뛰다시피 하는 택배 기사의 발소리가 울린다. 어떤 날은 내가 사는 빌라 복도까지 들어오기도 한다. 한 번은 우리 집 앞에 물건을 두고 가기도 했다. 나는 '새벽 배송'을 신청했는데 '새벽 한 시 배송'을 해준 것이다. 


새벽 배송. 신선한 먹을거리를 주문 당일 혹은 주문 다음 날 새벽까지 문 앞에 배송해주는 서비스. 소비자 편의의 끝판왕. 그 서비스를 실행하기 위해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이 돈을 버는 소리가 언젠가부터 서글프게 들린다. 


자본주의 시대에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게 고달픈 일이다. 더워도, 추워도, 폭우가 쏟아져도 예외 없이 일해야 한다. 배송 기사가 곧 택배 상자를 실어 나르는 수단이기 때문에 자의로 멈출 수가 없다. 


며칠 전.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서 강남 일대가 물바다로 바뀌었던 날. 모 기업의 택배 기사와 관리자 사이에 오간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배달을 도저히 갈 수 없다"는 기사의 말에 "상황은 알고 있으니 갈 수 있는 곳만 부탁한다"는 관리자의 말.  


'갈 수 없는 건 아는데 갈 수 있는 곳만 가라.'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관리자에게 배송을 멈출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문제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상식적으로 배송을 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배송을 멈출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자가 아니면 배송 시스템을 멈출 수 없다는 것. 우리는 권한이 없으면 상식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상식적으로 대처했을 때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져야 하니까. 


책임도 권한도 없는 사람이 밤새 수단으로 존재하는 밤의 소리가 고달프고 서글프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만은 수영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