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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도령 Mar 02. 2022

포켓몬 빵의 귀환

고찰 열, 한정판과 수집욕에 대하여

포켓몬 빵이 다시 진열대에 올랐다. 어릴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빵은 버리고 스티커만 모아 논란이  세대가 이젠 추억에 젖어 아들,  손을 잡고 편의점을 돌아다니며 같은 빵을 찾는다.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다시 쓰레기통에 빵을 버릴  있다니..!”하는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는 말도 하더라.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인간의 오랜 욕구인 수집욕과 포켓몬 빵에 대한 필자의 생각에 대해 적어보고자 한다.


자고로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물건을 소유할 때 몸의 단전에서 끓어오르는 희열을 느끼는 것은 사람을 포함한 여러 생물들의 본능 중 하나라고도한다. 사물을 소유하고 수집하고자 하는 욕구는 원시 시절부터 내려온 생존을 위한 습성이라 한다. 조금이라도 더 많고 희소한 자원을 가진 개체가 생존에 더 유리했을 테니 나름 일리가 있다. 물건을 소유하게 됐을 때 본능이 충족되고,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상심리로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하는 것, 그게 수집욕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유아기 시절 많은 아이들이 젖병이나 이불 같은 애착 물건을 정하고, 성장하며 다양한 물건에 추억을 가지고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도 이를 뒷받침 하는 증거 이리라. 이에 따라 사람들은 우표, 장난감, 의류, 골동품, 사진, 서적은 물론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돌이나 나무, 물고기, 동물 등등 다양한 물품을 수집하고는 한다.


사람들의 이런 본능적 욕구에 맞춰 마케팅 기법도 진화했을 것이다. 수집욕의 갈증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환상을 극대화하여 보여주고, 실제 제품의 기능을 넘어선 이미지를 불어넣음으로써 그 제품이 없으면 안 되고, 대체재가 없을 것이란 식으로 세뇌시킨다. 어들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어린이들은 이런 수작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아, 텔레비전에서 광고하던 수많은 로봇 장난감 광고에 넘어간 필자의 부모님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다만 필자와 동년배들의 어린 시절엔 수집에 관련된 유혹들이 참 많았다. 다마고찌, 로봇 장난감, 인형 놀이 세트, 레고, 건프라, 유희왕, 포켓몬 카드, 딱지, 게임 등등… 합체 로봇도 참 악질이었다. 중간 로봇이 없으면 항상 결핍됨을 느끼게 하는 완구라니 얼마나 사악한 어른들의 장난인가!(필자가 선라이즈와 타가라(일본의 애니메이션, 완구 제작사)에 놀아난 것을 알게 된 것은 10년이나 지나게 된 후이다…)


아무튼 포켓몬 빵도 거의 천재적인 악랄함으로 수많은 가정불화를 만들어냈다. 이미 만화영화와 게임에서 한참 노출되어 인지도가 높은 포켓몬의 스티커를 빵에 넣으니 안 팔릴 수가 없었다. 스티커 종류도 나름 적당한 150개 언저리여서 포기할만한 마음이 들지 않게 했다. 스티커 종류가 1000개였으면 아마 대부분 거들떠보지 않았으리라…  재발매된 포켓몬 빵 대란을 보고 있자니 참 어릴 적 생각이 많이도 난다. 애매한 단맛의 초코빵에서 질리도록 같은 빵들을 꾸역꾸역 삼키거나 어딘가에 몰래 버리며 공책에 스티커를 열심히 수집하던 우리의 어린 나날들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이제 필자는 피카츄 스티커가 아닌 추억을 찾으려 빵 봉지를 여는 스물여덟 아저씨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아직도 수집욕을 해소하기 위해 맥도날드에서 마리오 장난감을 받으려고, 스타벅스에서 서머 레디 백을 받으려 줄을 서는 미숙한 어른들이 되어버렸지만, 추억을 즐길 수 있는 멋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 물건 대신 추억으로 수집에 대한 갈증을 채울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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