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내가 대학 입시를 치르던 때는 수시로 최대 6개까지 지원할 수 있었는데, KAIST, UNITST, GIST 같은 국가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들은 그 제한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총 7개 대학에 지원했다. S대, K대, H대, 다른 K대, D대, 다른 S대, 그리고 GIST였다.
당시 학교 담임선생님이나 어머니는 K대 대신 Y대에 지원하는 게 어떻냐고 하셨지만 내 마음은 K대에 더 기울어서 지원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지원하기에는 Y대의 학과들이 메인 학과보다는 좀 더 영어특기자들만 따로 모아놓은 느낌이 강했어서 그게 싫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고3 시절 학원을 오가는 날 6호선을 탔을 때 두 학교의 합동축제날에 과잠을 입었던 K대 생들에 둘러싸였던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했는지 모르겠다.
S 대는 면접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고, 나머지 대학들은 그래도 면접까지는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K대와 H대 모두 면접까지 갔었는데 하필 일정이 겹쳤었다. 지원 전에는 날이 같더라도 이과/문과 면접 일정이 겹치지 않았던 걸로 알았는데, 스케줄이 바뀐 것인지 잘못 알았는지 두 학교 모두 오전 면접으로 겹쳐 버렸다.
어디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학원 선생님과 부모님, 학교 담임 선생님 모두 의견을 주셨는데, 결국 S 학원 선생님이 “면접을 안 보고 나서 후회가 남을 것 같은 쪽보다는, 도전이라도 해봤다고 느낄 수 있는 쪽을 선택해라”라고 말해줬다. 나는 원래부터 K대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결국 그쪽을 택했다.
K대 면접의 테마는 ‘우연’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과학의 발전에서 우연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과학사에서 우연히 발견된 사례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들이 나왔다. 나는 그때 읽었던 전기과학 서적에서 봤던 내용 중, 수은과 절대영도와 관련된 이야기를 예로 들었던 것 같다. 그 외의 질문들은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 우화를 예시로 나온 문제들이 있었는데, 거북이가 토끼를 제칠 수 있었던 이유 등의 질문이 있었다. 나는 도착점을 집으로 하는 경주라면 거북이가 이길 수 있다 등의 답을 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이것저것 질문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자세히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면접을 마쳤을 때 스스로 잘 봤다고 생각할 만큼 잘 풀렸던 것이 기억난다. 나중에 어머니 말씀으로는 계단을 미소 지으며 뛰어내려오는 것을 보고 안도하셨다고 한다.
H대의 경우에는 K대 면접이 끝나자마자 아빠 차를 타고 스릴 넘치는 주행을 하며 달렸는데도 시간이 늦어서 결국 면접을 보지 못했다. 다른 K 대는 면접을 어떻게 봤는지 기억이 거의 나지 않고, D대도 마찬가지로 면접을 봤는지 안 봤는지조차 헷갈린다. 다만 D 대는 가장 먼저 결과가 나왔는데, 예비 8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외 대학들은 대부분 한 번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다른 K대도 합격이었고, 집에서 거의 반대편에 있는 학교였지만 최후의 보루로 지원했던 다른 S대도 합격했었다. 다른 S 대는 첫 면접이었는데 코사인, 사인, 탄젠트의 정의를 설명하다 너무 긴장한 하나를 반대로 얘기했다 정정한 기억도 난다.
GIST는 엄마와 함께 광주까지 내려가서 면접을 봤다. 면접은 과학과 수학을 나누어 봤었는데 커피의 이뇨 작용이나 기본적인 과학 상식 질문에는 비교적 잘 답했지만, 수학 문제에서 완전히 막혔다. 특히 벡터 기하나 벡터 관련 문제에 내가 약했는데, 하필 그게 그대로 나왔다. 프로젝터에 내 빈 답안지가 그대로 띄워졌을 때, 교수들이 잠시 당황하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때 이미 떨어졌겠다는 확신을 하고 나왔던 것 같다.
그래도 승률이 꽤나 좋았고 가장 가고 싶었던 K대에 합격했기 때문에, 입시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가 없다. 합격 발표는 수능이 끝난 다음 주말쯤이었던 것 같다. 그날 친구들이랑 노원에서 영화를 보러 갔을 때였는데, 무슨 영화를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극장에서 나오자마자 어머니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 연락하자 어머니께서 K대에 합격했다고 말씀해 주셔서 소리를 질렀다. 그때의 기쁨과 아직 합격여부를 모르던 친구들이 미묘한 표정으로 떨떠름하게 축하하던 그 미묘한 분위기가 아직도 생각난다.
나의 경우 현역 때 대학에 가는 게 특히 중요했었다. 스스로 재수를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교육정책이 바뀌면서 그다음 연도부터 영어 특기자가 지원할 수 있는 학교나 학과가 극단적으로 적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이 정책이 대학에 전부 지원한 후에 발표되어 어찌할 바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합격에 더욱 절실했으며 그만큼 더 기뻤다. 어머니의 풍족한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그동안의 토익 및 토플 점수, 대외활동, 내신, 면접 등이 모두 어우러져 나온 결과로 노력을 보상받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