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느려져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

by 시절청춘

속도의 미학



천천히 가는 것이
느리게 가는 것만은 아니다
빠르게 가는 것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너무 빠른 속도는
스쳐가는 풍경을 지워버리고,
너무 느린 속도는
다가오는 기회를 놓치게 한다


욕심이 과할수록
숨 가쁘게 달리려 하고,
비우려 할수록
걸음은 느긋해진다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나에게 맞는 속도를 찾을 때
비로소 내가 놓친 세상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인생의 속도계, 이제는 엑셀에서 발을 뗄 시간


빠른 게 미덕인 줄만 알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뭐든지 빨리해야 했고, 빠르게 끝을 봐야 직성이 풀렸죠.

그 습관의 시작은 중학교 시절, 좁은 방 안에서의 식사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버지는 유난히 식사 속도가 빠르셨습니다.

반면 어머니는 느린 편이셨죠.

저는 그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숟가락을 놀렸습니다.

아버지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그 자리에서 담배를 태우시며 역정을 내곤 하셨습니다.

"밥을 하루 종일 먹을 거야? 빨리 좀 먹고 치워."

자욱한 담배 연기와 재촉 속에 밥을 먹는 건지 삼키는 건지 모를 식사가 이어졌습니다.


그때부터였나 봅니다.

제 식사 속도가 빨라진 것은.

씹는 즐거움이나 맛을 음미할 새도 없이 그저 욱여넣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이지요.

지금도 저는 남들보다 밥을 빨리 먹습니다.

뜨거운 국물도 후루룩, 후배들이 부담스러워할 만큼 속도가 빠릅니다.

그 탓에 소화불량을 달고 살고 살도 찌지만, 한번 빨라진 속도계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습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깨닫습니다.

안전 속도를 유지하며 천천히 달릴 때 비로소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을요.

길가의 꽃, 사람들의 표정, 계절의 변화...

하지만 속도가 빨라지면 시야는 좁아집니다.

오로지 앞만 보고, 백미러만 확인하며 달리느라 세상의 아름다움을 다 놓치게 되죠.

사고의 위험이 커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요.


문득 제 인생의 속도계를 들여다봅니다.

'나는 어떤 속도로 살아왔을까'
되돌아보면, 나의 '인생 전반전'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액셀을 밟았던 시간이었습니다.

타고난 머리가 비상하지 않다는 걸 알았기에,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더 노력해야만 했습니다.

"저 친구, 머리 좋다"는 칭찬은 사실 밤잠을 줄여가며 만들어낸 '노력의 산물'이었죠.

"학교 다닐 때 그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는 갔겠다"는 농담을 들을 정도로, 저는 뒤처지지 않으려, 손가락질받지 않으려 미친 듯이 노력했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그 치열함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인생 후반전'은 조금 다르게 살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흐름이 빨라진다고 하죠.

50대가 되면 인생은 시속 50km로 달린다고 합니다.

저 역시 그 차에 올라타 있습니다.

멍하니 있으면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엑셀에서 발을 떼고, 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도를 조절하려 합니다.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좋은 자리에 대한 제안이 와도, 쫓기듯 결정하지 않고 느긋하게 기다리려 합니다.

내게 맞는 자리는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으로, 지금은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내실을 다지는 '준비의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이제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실속 없이 허송세월하는 느림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음미하고 주변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는 '여유로운 느림'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그렇게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저만의 속도로 인생 후반전을 완주하고 싶습니다.


인생 전반전이 속도와의 싸움이었다면, 후반전은 방향과의 동행이다. 빨리 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제대로 된 풍경을 보며 가는 것이다.



<장기하와 얼굴들 - 느리게 걷자>

https://youtu.be/K9CcKKajSjs?si=8Zki9SicYF-b6U_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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