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잠(沈潛)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가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
서로의 숨결을 나누듯 맞닿아 있다
아직은 어둠이 짙은 시간,
언 손을 입김으로 호호 녹이며
간절한 마음으로 해를 기다린다
지금 보이는 수평선은
바다와 하늘이 구분 없이
묵직한 푸른 회색빛으로 잠겨 있다
어느새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그곳부터
서서히 붉은 기운이 번져온다
마침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회색빛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힘차게 솟아오르는 태양
그 찬란한 빛 앞에서
나는 조용히
희망의 소원을 빌어본다
"수면 위로 떠오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가장 깊은 바닥까지 조용히 내려가 발을 딛는 용기다."
침잠(沈潛).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물속 깊숙이 가라앉거나 잠긴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원치 않게 이 침잠의 시간을 맞이하곤 합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면, 주인공 박동훈이 뇌물 누명을 쓰고 회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 위기는 오히려 그가 얼마나 양심적이고 정직한 사람인지를 증명하는 계기가 되고, 결국 그는 상무로 승진하며 반전을 이뤄냅니다.
드라마 같은 이야기지만, 현실에서도 이런 반전은 일어납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예기치 못한 위기를 맞습니다.
잘 나가던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직무를 정지당하거나, 온갖 오해와 소문의 중심에 서게 되는 순간 말이죠.
저에게도 그런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일에 휘말려 갑자기 직무가 정지되었을 때, 저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 속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것조차 고역이었습니다.
아내를 출근시키고 수영을 다니고 공부를 하며 억지로 몸을 움직였지만, 마음은 이미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공포가 저를 잠식했습니다.
그때 저를 버티게 한 건 아내였습니다.
멍하니 있는 저를 다독여 무언가를 하게 만들고, 끊임없이 응원을 보내주었습니다.
들려오는 흉흉한 소문들은 비수처럼 꽂혔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제 인생의 '인간관계 청소' 기간이었습니다.
제가 바닥으로 떨어져 보니, 누가 나를 믿어주는 진짜 내 사람인지, 누가 나를 외면하고 뒤통수를 치는 사람인지 명확히 보이더군요.
긴 침잠 끝에 저는 다시 복귀했습니다.
처음엔 몸만 돌아온 듯 자신감이 없었고 정신적으로 피폐했지만,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들이 이어졌습니다.
복귀 후 우연히 넣은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는 행운이 따랐고, 업무 능력을 다시 인정받아 1년 만에 상위 부서로 보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꾸준함이 모여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 시련은, 잘난 맛에 취해 주변의 아첨에 흔들리던 저에게 "정신 차리라"며 하늘이 내려준 호된 교육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때 저를 외면했던 사람들이 제가 다시 자리를 잡자 연락해 왔지만, 저는 단호히 관계를 정리했습니다.
시련이 걸러준 귀한 교훈 덕분입니다.
지금 인생의 바닥을 치고 있다고 느껴지시나요?
주변의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깊은 물속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서나요?
그렇다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끝난 것이 아니라, 다시 튀어 오르기 위해 바닥을 딛고 있는 중입니다.
고요한 침잠의 시간은, 세상의 소음 대신 자신의 내면 소리를 가장 정확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바닥을 쳤다는 것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는 뜻이다. 이제 남은 방향은 오직 하나, 위로 솟아오르는 것뿐이다.
<손디아 - 어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