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변화 속에서..
나가고 싶은 욕망과
머물고 싶은 욕망이
서로 뒤엉켜 있는 듯한
모습을 내려다본다.
어떤 것은 문밖을 향해
어떤 것은 집 안을 향해
제각각인 방향으로
어지럽게 자리 잡고 있다.
각자의 소임은 분명
존재했을 터인데
이제는 그저 쓸모를 다한 듯
바닥에 털썩, 내팽개쳐져 있다.
어쩌면 저 모습이
치열했던 오늘 하루의 일상이
고스란히 돌아와 누운 것은 아닐까.
미소와 안쓰러움이 동시에 번진다.
오늘 하루도
이 무게를 견디느라 참 애썼다고...
조용히 바라보며
가만히 안부를 건네본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날짜가 가는 줄도 모르고 살다가, 문득 벽에 걸린 달력의 숫자가 바뀐 것을 보고 놀랍니다.
어제까지 익숙했던 숫자가 사라지고 낯선 그림과 숫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때, 왠지 모를 허무함과 제대로 채우지 못한 지난달에 대한 후회가 밀려옵니다.
이룬 것도, 새롭게 도전한 것도 없는데 시간은 야속하리만치 속절없이 흘러간 겁니다.
크리스마스트리의 반짝이는 조명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무심코 들른 마트에는 벌써 설날 선물세트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 낯선 풍경 앞에서 순간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변하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바깥공기는 여전히 차갑고 기온은 영하를 맴돌지만, 한낮에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의 각도가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사무실 한편, 작은 화분의 묵은 잎이 떨어지고 연두색 새잎이 돋아나는 것을 보며 계절은 어김없이 순환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매월 말이 되면 습관처럼 지난 시간을 후회합니다.
해보고 싶었던 것, 함께하고 싶었던 것들을 아쉽게 흘려보낸 시간들은 결국 돌아오지 못할 테니까요.
시간의 흐름은 제 몸으로도 느껴집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입지 않고 버텼던 내의를 이제는 챙겨 입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무심코 들여다본 거울 속 얼굴의 주름이 조금씩 짙어지고,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있습니다.
가끔 저는 전혀 나이가 들지 않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았는데, 거울 속의 낯선 모습에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변화에 동참하기 싫은 오기인지 모르겠지만, 단지 마음만은 항상 청춘으로 살아가고 싶은 욕심이 제 안에 여전합니다.
계절이 반복적으로 순환하듯, 우리의 삶도 반복되며 변화합니다.
저 스스로도 변하고, 타인도 변하게 마련입니다.
지금 제 곁에 있는 모든 것이 영원하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계절에 따라 초목이 옷을 갈아입듯, 제 곁에 있는 것들도 변하거나 언젠가는 떠나게 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지금 제 곁에 머무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이해하려 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려 합니다.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든, 어떤 순간으로 기억되든, 그 모든 것이 소중한 오늘을 살아가는 저의 '일상'을 이루는 조각들이니까요.
흐르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을 어떤 마음으로 채울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늙어감을 슬퍼하기보다, 깊어감을 사랑하는 오늘이 되기를..
<임영웅 - 서른 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