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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부꾸미 Jan 12. 2022

새로운 여행을 기다리며

(※정보제공 아닌 철저한 자기소개글임 주의)

나는 원래부터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여행의 어떤 점이 나를 사로잡았을까 생각해보니 '낯선 곳에서 경험하는 내 삶에 대한 나의 온전한 주체성' 때문인 것 같다. 일상에서의 삶과 달리 여행지에서는 나에게 아무 역할도 요구되지 않고, 나 역시 아무것도 책임져야 하지 않았다. 두 번이나 읽은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서의 표현에 따르면 '아무도 아닌 자'로서 느낄 수 있는 특권이랄까.



이것이 국내가 아닌 외국으로 지평이 넓어지면 그 특권이 보다 극대화된다. 내국인들만 아는 어떠한 규칙, 문화, 예컨대 식당에서의 주문과 지불방식, 예절에 있어서도 외국인은 철저히 예외가 된다. 그래서 이방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관찰자로서의 시선'. 그것을 즐겼던 것 같다. 내가 그렇게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그랬다.



2019.8. 독일여행 때 뷔르츠부르크성에서


작년('19)에 이어 올해('20)도 유럽여행을 계획했었더랜다. 미국에서 교환학생까지 한 사람이지만, 여행만은 철저히 미주보단 유럽이다주의라 무려 출발일 9개월 전에 유럽행 비행기 티켓을 발권해놨었다. 프랑크푸르트 in, 프라하 out. 지난 독일 남부 여행을 잊지 못하고 다녀온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그것도 군산 여행 중 낯선 카페에서 충동적으로 독일 북부 여행을 꿈꾸며 단박에 결제를 진행했다.


원래의 나는 검색에 검색을 최소한 몇 주를 거친 후 최저가라는 확신이 있을 때 결제버튼을 누르는 사람인데. 생각보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군산이라는 여행지가 시시했던 건지, 또 다른 일탈과 새로움을 꿈꾸며(군산은 매우 좋은 여행지이지만, 4~5번째 방문이라 그 신선함이 덜했을 뿐이다.) 그렇게 일시불로 결제를 진행했더란다.(우리 체크카드 할인 혜택을 받기 위해...) 일정은 총 9박 11일에 달해 무려 연차휴가를 7일이나 써야 하는 용기를 내어야만 소화할 수 있는 것이었다.


여전히 눈치를 봐야 한다면 봐야 하고, 어느 정도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안다면 아는 5년 차 직장인인지라(글이 쓰여진 '20년 기준) 약간의 망설임과 약간의 자신감과 용기가 잠시 동안 대치했지만, 나는 자신감 있고 용감한 사람이었는지라(?) 회사에는 얘기하지 않고 여행루트만을 고민하며 행복해했더란다.



여행 계획을 완성해가면서 느끼는 희열 중에 하나는 이미 정해져 있는 여행의 처음과 끝 사이를 가장 최적의 효율성과 충만함으로 메워나갈 때의 만족감이다. 여기서의 최적의 효율성에는 금전적 측면에서의 가성비, 최적 동선 등이 있을 것이다. 작년 독일 남부 여행 때 이미 사두었던 독일 여행 가이드북의 나머지 절반 부분을 뒤져 북부에서 가고 싶은 곳을 추려내었다.

(개인적으로 요즘 대학생들도 여행 가이드북을 챙겨서 여행을 가는지 매우 궁금하다...ㅎㅎ 나는 여행 가이드북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처음 배웠다.)


북부는 하노버, 함부르크, 베를린과 같은 대도시를 거점으로 주변 소도시인 힐데스하임, 고슬라르, 뤼베크, 슈베린 등을 여행하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드레스덴을 거쳐 프라하에서 아웃을 하는 완벽한 루트! 작년에 이미 애용을 해서 익숙한 독일 기차 앱 DB Bahn에서 '일찍 예매하면 저렴한(그러나 환불불가인) 표를 살 수 있다'는 믿음 하에 이 모든 경로의 기차표를 구매해놨었다.



2019.8. 작은 베네치아, 밤베르크


그렇지만, 결론은... 너도 알고 나도 알듯이 코로나 19로 인한 여행 취소. 티켓 예매 시에는 저렴하고 좋았지만, 저렴한 티켓의 반대급부로서 환불불가는 여행 취소를 진행하기에 매우 난감했다. 소비자인 내가 저렴한 가격과 일정에 변경이 생길 경우의 책임을 교환한 것이기에 여행불가를 확신한 이후부터 비굴모드로 여기저기 무료취소 가능여부를 문의하기 시작하였다.


이제까지 한번도 환불불가 옵션을 선택한 후 일정을 변경한 적이 없었기에 이번에도 당연히 비용절감을 선택했던 것인데, 이번 사태로 아주 큰 교훈을 얻었다. 앞으로 절대 환불불가 예약은 하지 않으리라.



아무튼 지금쯤이면 본디 하노버에 있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헛헛한 마음을 이렇게 글로 표현해봄으로써 첫번째 글을 마친다. 다음 글은 꿩 대신 닭 아닌, 독일 대신 제주도에 대한 글이 될 것 같다.



-2020.7.12 작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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