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굿 리스너로 인정받는 장점이
"ㅇㅇ가 갑자기 일이 생겼대. 그냥 둘이 보자."
"둘이?"
"왜? 너도 안돼?"
"아니, 약속 없어."
"그래, 그럼 그 날 만나자."
아... 둘만 만나면 불편한데...
셋이면 다른 둘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면 되고 난 가끔 추임새만 넣으면 되는데.
둘이면 아무래도 혼자 얘기를 다 들어줘야 내 얘기도 또 물어볼 거고...
그래서 전 단짝이 없어요. 친구도 늘 세 명, 모임도 세 명 이상이 돼야 가능하답니다.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를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지나고 보니 나르시시스트 엄마 밑에서 크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못(? 안?) 할 때가 많았고 표현을 안 하다 보니 순응적인 아이가 돼있었고 점점 더 말을 안 하게 된 것 같아요.
엄마가 결정하면 따르는 게 당연했고 말대꾸한다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물론 원래 성격도 그렇긴 해요. 친할머니가 말수가 적으셨고 아버지도 말이 많지 않으셨어요.
이런 성격의 사람은 그럼 친구를 어떻게 사귈까요?
대부분 먼저 친구들이 말을 걸어와요. 같은 동네 사는 친구들이거나, 교실에서 주변에 앉은 친구들이랑 친해지죠. 또 어떤 때는 어영부영 어떤 무리에 속하게 돼서 그렇게 3명, 5명 이렇게 친구들을 만나왔어요.
아주 속 깊은 이야기를 하는 대상인 유일한 짝꿍, 그런 사람이 없어요. 그렇다고 친구가 없는 건 아니니까 그때그때 고민을 털어놓을 대상이 없지는 않고 축하하거나 위로할 일이 생기면 함께 할 친구들은 있고요.
굳이 말하자면 짝꿍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사람은 남편이라고 하면 되겠네요. 그다지 든든하지는 않지만요.
어쨌든 특히 오프라인으로 단 둘이 만나는 걸 꺼리는 이유는 말이 없어 대화에 적극적이지 않으니 당연히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듣는 방청객 같은 역할에 만족하기 때문인데 둘이라면 상대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기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고 호응이나 맞장구도 사실 지치는 일이거든요.
그럼 언제 내 얘기를 하냐고요? 아무래도 가족과 있을 때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아주 절친들과는 속내 얘기를 하고요. 그리고 알코올이 들어가면 말이 좀 많아지는 편이고요. 이 역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기질이죠.
영화 '쉘로우 그레이브(Shallow Grave)'라고 있어요. '땅을 깊게 파지 않고 얕게 시신을 묻은 무덤'이란 뜻으로 결국 경찰에 발각된다는 내용인데요, 공범인 주인공 세 사람 사이의 관계가 깊지 않음을, 즉 유대관계가 피상적임을 의미하는 제목이기도 해요.
다들 그렇잖아요. 굳이 나누어 보자면 가족, 친척, 절친들, 조금 친한 사람들, 그냥 아는 지인들, 비즈니스 관계로 얽힌 사람들 등으로 그룹을 만들어볼 수 있는데요.
저의 경우는 뒤로 갈수록 그 모임에서 더 침묵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말을 하더라도 영혼 없는 자음과 모음의 나열이라고나 할까, 알맹이 없는 동어반복이라고나 할까.
코로나 시국 때 많은 사람들을 한 번 정리하고 나이가 들면서 자주 안보는 사이는 주기적으로 정리를 하죠. 어떤 때는 상대방이 메시지를 보내도 답장을 안 보내기도 합니다. 너무 매정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만나서 불편할 할 사람은 안 만나야죠. 아니면 굳이 만나지는 않더라도 온라인으로 안부만 묻는 관계로만 유지할 수도 있고요.
얕은 무덤처럼 어차피 발각될 진심. 아마도 저는 적당히 얕은 관계를 원하는가 봅니다.
반면 갈수록 친한 사람들이 편하고 그들과의 만남에 시간을 많이 투여하게 됩니다. 이들과의 관계는 오히려 갈수록 더 깊어져요.
저는 여전히 과묵한 캐릭터를 유지하고 있어요.
친밀도가 낮은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과묵한 것은 여러 모로 장점이 많더라고요.
일단 구설수에 오를 일이 많이 줄어들죠. 무엇이든 말이 많아서 문제거든요. 어떤 실마리가 될 일을 아예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말실수가 줄어들어요. 말을 하는 중간중간에 침묵을 유지하면서 생각을 곰곰이 하게 되거든요. 흔히들 생각 없이 말한다고들 하잖아요. 말이 많아지면 사실 신중함이 떨어지고 감정적이 될 수도 있거든요.
한편으로는 결과적으로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장점도 얻게 된답니다.
누구나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가족에게도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어쩌다 보니 굿 리스너로 인정받게 되는 거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것은 큰 장점이지요.
이는 사실 의도치 않은 수확이죠. 단지 에너지를 많이 뺏기기 싫어서 과묵했었는데 말이죠.
말 수가 적든 말하기를 좋아하든 사실 타고난 것일 수도 있으니 어느 쪽이 더 나은지 따질 일은 아닐 거예요.
대화를 하면서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하면 되지 않을까요.
남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편안한 사람이 있고 내 얘기를 털어놓아야 기분이 나아지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서로 보완하는 관계, 서로 돕고 위로하는 관계, 그런 관계들로 촘촘히 엮여서 살아가는 것, 그런 게 인생이겠죠 뭐.
아유, 글로 떠드는 것도 힘드네요. 이제 잠시 침묵 모드 돌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