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 수용하고 마음의 평온 찾는 것이 현명
얼마 전 유명 개그우먼의 암투병 소식을 접했어요.
제 눈에 들어온 건 여느 암환자들과 다르지 않은 그녀의 의문이었어요.
왜 내가.
그녀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고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나는 술 담배도 안 하는데 왜 걸렸는지 몰랐다”라고 말합니다.(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81697)
담배는 안 피지만 술을 가끔 마시는 저는 잠시 찔리는 대목이지만 저의 가족 중에도 술 담배 안 하고 식생활도 담백한 동생이 제일 먼저 암에 걸렸던 걸 생각하면 암을 유발하는 요인은 정말 다양하고 예측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던 중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원인을 찾아 헤매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인과관계(因果關係)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말하죠. 하나의 원인이 다른 하나의 결과를 야기하는 관계.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지만 그 원인을 찾기는 정말 어려워요. 인간의 능력으로는 찾기 힘들 기도 하고 특히 질병처럼 그 결과가 사람에게 발현되는 것이라면 사람마다 다른 유전자와 기질, 그가 사는 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니까요.
끊임없이 원인을 찾으려 애쓰지만 어떤 때는 원인이 없는 결과도 있어요. 아니 없다기보다는 정의하기 힘든 경우가 있어요. 그게 바로 우연이죠. 우연 이랬다가 다른 말로 운명 이랬다가 팔자랬다가. 어쨌든 설명할 수 없는 영역으로 넘어가죠.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고3 때 가족 모두 교통사고를 당하는 끔찍한 일도 일어났었고, 남편이 업무 중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 처벌을 받게 되면서 가족 모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했어요.
왜 나에게, 왜 우리 가족에게.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남들에게 해코지를 했나, 나 때문에 누가 큰 피해를 입었나, 남의 돈을 뺏은 적이 있나.
난폭운전도 한 적 없고 길거리에 휴지 한 장 버린 적 없고 누군가를 증오해서 마음속으로 죽으라고 빈 적도 없고.
심지어 교통사고 당시 아버지가 운전대를 잡으신 것도 아니었고 남편이 그 사건을 일으킨 직접 당사자도 아니었는데.
하지만 누가 했든 무엇이 야기시켰든, 결과는 나의 가족에게 발생한 것이고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것이었죠.
조금 무겁게 접근한 감이 없지 않네요.
그런데 사랑도 그렇대요.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시작된다고 해요.
첫눈에 반하는 사람들이 있죠. 첫눈에 반해서 결혼에 이르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저처럼 서서히 알아가면서 좋아지는 관계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요.
이런 일도 있잖아요. 저 사람 내 이상형이 아닌데 왜 좋아하게 된 거지. 처음엔 눈에 띠지도 않던 사람인데.
명확한 이유를 대기 어렵지만 그냥 만나면 좋은 사람도 나타납니다.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 터지는 거죠.
사실 사람의 감정만큼 설명하기 어렵고 해석하기 어려운 것이 있을까요. 인과관계도 불분명하고 시간의 흐름에 반드시 따르지도 않으며 심지어 변덕스럽기까지 하니까요.
급기야 결과로 원인을 각색(?)하는 경지에 이릅니다. 전생에 옷깃이 천 번 이상 스쳐야 이생에서 인연이 된다는 말이 있죠. 우연이 천 번 이상 쌓이면 필연이 되나 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은 이미 예정돼 있었다고 믿고 싶은 거죠. 결과가 좋으면 다 좋다, 이유가 뭐가 중요한가. 이제는 두루뭉술 넘어갑니다. 사실 좋은 게 좋은 거죠 뭐.
원인만 찾다가 시간 다 흘러가면 뭐 하나요. 내게 온 시련들의 원인을 찾아보려 애쓰지만 찾지 못할 수도 있고, 아니 찾았다 한들 결과가 바뀌나요. 타임 슬립으로 다시 돌아가서 고칠 수도 없는데 말이죠.
작업도 아니고 실험도 아니고 처음부터 다시 쓸 수 있는 소설도 아니고.
결국 이렇게 쓰인 이야기. 앞으로 여기서부터 어떻게 잘 써내려 갈까를 고민하고 숙고하는 게 낫겠죠.
저도 제게 닥친 친 사건 사고들, 불행, 시련, 고난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한 때 신을 원망했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어떻게 내가 극복하고 지우려 애쓰는가가 중요하며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짐짓 별 일 아니라고 넘겨 버리는 것이 현명하더라고요.
결국은 인생의 종착역인 죽음도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친구들 부모님 빈소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납득하지 못하고, 그럴 리 없을 텐데, 그럴 수가 없는데 하며 눈물짓는 친구들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원인이 명확해도 수긍이 안됩니다.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든 겁니다.
시간은 흘러갑니다. 원인을 야기한 사람들, 상황들을 탓하는 동안에도 흘러가고 있습니다.
특히나 생과 사, 만남과 헤어짐, 사랑과 이별에 관해서는 인과관계에 매달리지 않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사는 동안 굵직굵직한 사건과 사고를 겪으면서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성숙해지리라 믿어봅니다.
결과를 수용하고 감내해 가면서 마음의 평온을 찾는 것. 그렇게 평온하게 흘러가는 것이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