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베짱이]

명절 인사

by 덜깬잠꾼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더운 나라 사람보다 태생적으로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좁은 땅에서 한 톨이라도 더 얻으려면 게으름을 필 여유가 없다.

겨울이 뭔지도 모르는 더운 나라 사람은 공감하지 못하는 "개미와 베짱이" 동화로 어려서부터 국어책에 넣어 세뇌를 당하는 이유다.

사계절에 맞는 옷도 입어야 해서 옷을 만들어 파는 사람마저도 시간 내에 만들어 팔지 못하면 망하기 때문에 부지런을 떨지 않으면 안 된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민족의 태생적 숙명이기에 게으름은 죄악이기에 "여유"라는 단어는 사치였다.


쉬는 것을 낯설어하고 여유스러움을 참지 못해서인지 한 번으로도 충분한 새 해를 두 번씩 보내야 한다.

양력만 사용하는 나라에 사는 그들보다 음력까지 사용하는 나라에 사는 나는 새해를 두 번씩 맞이한다.

하나도 벅찬데 둘을 챙기려면 그들보다 땀나게 뛸 수밖에 없고 머리를 더 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맘 때가 되면 항상 같은 고민에 빠진다.

송구영신을 부르짖으며 작년 연말에 새해에는 건강하시라고 그리고 복 많으시라고 덕담을 드렸는데 음력설에는 어떤 인사를 드려야 할까 하는 고민이다.

너무 짧은 시간에 찾아온 또 다른 새해라 연말에 드렸던 덕담을 Cntl C 해서 Cntl V를 하기에는 부지런함이 몸에 밴 나에게는 죄악이기에 색다른 덕담을 찾느라 없는 머리를 짜내야 한다.


땅만 파먹고 살 수 없는 시대다.

부지런하면 몸만 피곤한 시대를 살아간다.

몸에 밴 부지런함이 꼭 맛난 밥을 주지 않을 수도 있는 시대다.


토끼와 거북이 동화는 동화일 뿐이다.

달릴 수 있을 때 열심히 달리고 쉴 때는 쉬면 된다.

꾸준히 느리게 달리는 것도 좋지만 빠르게 달렸다가 좀 쉬기도 하고 다시 달리면 된다.

쉬는 동안 거북이가 앞서가면 가라고 두면 된다.

베짱이 노래를 들으면서 커피도 한잔 하는 여유를 부리며 충전해서 또 달리면 된다.

개미가 미화되는 동화가 아니고 거북이로 묘사되는 동화가 아닌 "베짱이"의 훌륭한 연주에 힘을 받은 "토끼"가 승자가 되는 그런 동화를 쓰고 싶다.

게을러도 되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

2023년 1월 20일 덜깬잠꾼


숨 가쁘게 달려오셨습니다.

또 달려야 하겠지만 올 한 해 가끔은 게으름과 여유로움을 함께 누리실 수 있는 한 해가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그래도 되는 한 해 보내시길 한번 더 기원하겠습니다.

3년 만에 다시 밟은 서울 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