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 혹은 징크스

일상을 군더더기

by 덜깬잠꾼

살아가면서 늘어나는 뱃살만큼이나 나도 모르는 사이 생겨 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혹자는 습관이라고 하기도 하고 혹자는 루틴(왠지 있어 보이는)이라고 하기도 하고 혹자는 징크스라고도 불립니다.

순간순간 승부를 해야 하는 운동선수들이 유독 그런 징크스를 많이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경기가 있는 당일이면 수염을 깍지 않는다든지 속 옷을 갈아입지 않는다든지 심지어는 운동화 끈을 맬 때 반드시 왼쪽 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등 … …

괜히 그런 것들에 의지해서라도 일말의 위안을 삼고자 하는, 마음의 불안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살아가면서 하나씩은 생겨 나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시험을 보는 아침에 누군가로부터 편지를 받으면 시험 결과가 이상하리 만치 좋았습니다.

시험 날 아침이면 평소에는 얼씬도 하지 않던 학과 사무실 우편함을 기웃거리며 혹시나 하며 편지를 확인하고는 받아 든 편지를 천군만마를 얻은 것보다 더 큰 것을 얻은 양 씩씩하게 시험장으로 향하곤 했습니다.

출근을 하기 시작하면서 매일 아니 매 순간이 시험입니다.

시대가 바뀌고 반갑게 기다리던 편지가 SNS로, 전자메일로 바뀌었습니다.

루틴처럼 출근과 더불어 메일을 클릭합니다.

과거에 와있기를 기다렸던 편지를 지금은 역설적이지만 나를 수신인으로 하는 메일이 없기를 바라봅니다.

오늘은 조금 쉽게 지나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클릭을 하지만 오늘도 역시나 읽지 않은 반갑지 않은 메일로 가득한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조금은 느린, 쓰면서도 몇 번을 고쳐 썼던 편지에서 키보드 몇 번으로 쓰여진 메일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은 그만큼 바빠졌고 편해졌지만 사고의 깊이는 그만큼 얕아져 버렸습니다.

이모티콘으로, 복사& 붙여 넣기로 안부를 전하는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의 눌러쓴 편지가 그립습니다.

습관적으로 기생집으로 향하는 말의 목을 쳤던 신라의 장수처럼 순간도 참지 못하고 루틴처럼 “메일 받기”를 “새로 고침”을 클릭하는 제 손을 잘라 버려야 할지?

오늘 하루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클릭을 해봅니다. 메일이 없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결과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손 편지를 보내본 적이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오늘 편지를 쓰지 못하겠지만 포스트잇에 몇 글자 이쁘게 적어서 마음을 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랑한다는 말도 덧붙여서요.

2021. 06. 25 덜깬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