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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기 Mar 08. 2024

네 이름은 딱지

우리 집 고양이의 예전 주인은 두 마리의 페르시안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다. 둘 사이에서는 네 마리의 아기 고양이가 태어났고, 주인은 사랑과 정성으로 여섯 식구의 고양이를 보살폈다. 하지만 일이 바빠지면서 여섯 마리나 되는 대가족을 제대로 건사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법이다. 결국 남에 집에 가서도 잘 적응할 만한 녀석 둘이 옛 집을 떠나게 되었고, 그중 한 마리가 바로 우리 집에 찾아온 이 녀석이다. 




우리 집에 왔을 무렵 녀석의 나이는 2살. 인터넷을 잠깐 뒤져보니 고양이 나이를 인간 나이로 환산한 재미있는 자료가 있었다. 어떤 근거로 만들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거기에 따르면 2살 고양이는 인간 나이로 24살 청년에 해당한다고 한다. 우스개 소리로 사람도 그 나이쯤 되면 길러준 부모에게서 독립해 새 살림은 개척하는 일이 적지 않으니 녀석은 제법 알맞은 시기 새집으로 자리를 옮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 입장에서 보자면, 익숙하고 편안한 곳에서 떨어져 나와 엉성한 초보 집사 집에 내동댕이쳐진 셈이니 일종의 벌을 받고 있다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장 같은 번식장에서 태어나 눈도 채 뜨지 못한 채 팔려가는 많은 동료 고양이들과는 달리 부모 형제와 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다 헤어졌으니, 그만하면 고양이 치고 초년운은 좋은 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집 고양이의 이름은 딱지다. 고양이를 건네받던 날이 떠오른다. 늦은 밤 우리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에서였다. 품에 고양이를 안고 있던 남자 주인이 우리 쪽 품에 고양이를 넘겨주었다. 고양이는 하악거리지도 발톱을 드러내지도 않은 채 마치 얼어붙은 듯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평소 써왔다는 모래와 사료도 약간 받았다. 




“혹시 궁금한 거 없으세요?” 저쪽에서 묻는다. 당연히 물어보고 싶은 것이 산더미였다. 하지만 일을 마치고 먼 거리를 달려 여기까지 왔을 그는 무척 피곤해 보였다. 더구나 케이지도 없는 상태에서 혹시나 고양이가 도망이라도 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긴 시간 그를 잡아 둘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 아이, 이름이 뭔가요?

 

잠깐의 고민 끝에 결국 꺼낸 질문은 그거였다. 녀석의 이름은 딱지. 사람을 워낙 좋아해 주인 곁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아, 그렇구나. 그 정도면 괜찮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 궁금증은 차후 전화로 묻기로 하고 우리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굳이 왜 이름을 물어봤을까? 애초 우리 집에 들어오면 새롭게 이름을 지어줄 생각이었으면서 말이다. 고양이가 우리 집에 들어온 다음날까지도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예전 집에서의 이름은 예전 집에서 쓰던 것이고, 우리 집에 들어오면 우리 맘에 드는 이름으로 바꾸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좀 더 솔직하자면 딱지라는 이름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몇 번 소리 내 불러봤지만 입에 착 들어붙는 맛이 없었다. 더구나 우리 집에 온 초기 얼마동안, 사람을 좋아해서 사람 껌딱지라 불렸다는 이 녀석은 사람만 보면 숨기 바빴다. 마치 네모를 보고 세모라고 부르는 격이었다.




오스카, 빈이, 헨리 등등 우리는 꽤나 오랫동안 고양이 입양에 대해 생각해 왔기 때문에, ‘언젠가 고양이를 키우게 되면 말이지’라는 가정하에 많은 이름들을 만들어 불러보곤 했다. 하지만 막상 이 고양이의 실제 이름을 듣고 나니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이 뭔가 석연찮아졌다. 그 녀석은 이미 이름이 있었다. 청년이 될 때까지 불리던 “딱지”란 이름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 맘에 드네 마네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 껌딱지는커녕 냉장고 뒤며 세탁기 뒤로 도망가기 바쁘지만 그게 그 녀석의 이름인걸.




숨막히는 며칠이 지나고 녀석에게도 드디어 조금씩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던 모양이다. 녀석은 딱지라는 자기 이름에 확실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다. 이미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녀석은 딱지라는 이름으로 살아왔으므로. 사람으로 치자면 이미 자신의 정체성, 생활 습관, 성격 같은 것들이 굳어진 엄연한 청년이 아닌가. 새 집에 왔다고 새 이름을 짓고 새로운 고양이가 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일 같았다. 그래서 딱지는 우리 집에서도 계속해서 딱지로 지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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