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그동안 아무 문제도 아니었던 일들이 하나 둘 골칫거리가 되어 다가왔다. 대표적으로 명절이 그렇다. 시댁까지는 차로 장장 여섯 시간을 달려야 하는 먼 거리다. 명절이니 시댁만 가는 게 아니다. 시댁에 이어 친정까지 들르면 보통 3박 4일의 일정이다. 고양이가 없어도 명절은 피곤하지만, 고양이가 있는 명절은 훨씬 더 피곤하다.
자, 저 녀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방법은 크게 두가지, 간단하다. 놓고 가든지 데리고 가든지. 집 비우는 시간이 길면 보통 데리고 가는 게 맞다. 고양이는 낯선 공간을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만 4일에 가까운 긴 시간 혼자 둘 수는 없을 듯 싶었다. 하지만 이동 거리가 긴 우리의 경우 데리고 가는 것도 쉬운 선택은 아니다. 개는 물론이거니와 고양이도 긴 자동차 여행을 힘들어 하기 때문이다. 멀미를 하기도 하고, 내려서 갑작스레 컨디션이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물론 고양이마다 상황은 다르다. 고양이를 키우다보면 느끼는 바, 종의 특징만큼이나 개체의 특징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각자의 최선책은 각자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 혼자서 삼사일도 거뜬한 녀석이 있는가 하면, 어딘가에는 반나절도 버거워하는 녀석이 있을 것이다. 고양이들 대부분이 낯선 환경을 싫어한다고 하지만, 새 공간 탐험을 좋아하는 녀석도 없으라는 법은 없다. 짧은 거리도 차만 타면 불안해하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무던하게 잘 버티는 녀석도 있다. 충분한 먹이와 여분의 화장실을 마련해 두면 평소처럼 잘 지내는 녀석이 있는 반면, 한번에 다 몰아 먹고 배탈이 나는 녀석들도 있다. 딱지는 과연 어느 쪽일까, 우리는 아직 정보가 부족했다.
그렇다면 누군가 와서 녀석을 돌봐 주는 건 어떨까? 나는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상상해 본다. 그는 고양이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여건상 고양이를 키우지 못하는 사람이다. 연휴를 맞아 그는 곤란해진 우리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
명절 동안만이라도 제가 딱지를 돌보면 안될까요? 하루에 두 번 찾아가서 먹이도 주고 물도 갈아주고 화장실도 치워줄게요. 물론 사냥놀이도 실컷 해줄 생각입니다. 제발 고양이를 만져보게 해 주세요.
물론 그런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 나는 펫시터 사이트를 찾아본다. 이런 저런 사이트를 들낙거리고 전화 상담도 해보지만, 결국에는 포기한다. 막상 날짜가 닥쳐오니 낯선 이에게 고양이와 집은 내주는 게 왠지 꺼림직했던 것이다. 남편은 그렇게 까탈스럽게 굴면 아무것도 안된다고 한다. 맞는 말인데 내 마음은 또 그렇다. 뒤이어 애견호텔처럼 고양이를 맡아주는 곳이 있나 알아보았다. 하지만 개와 달리 영역동물인 고양이는 낯선 곳, 그것도 다른 동물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은 큰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어 권장하지 않는다고 했다. 막판까지 결정을 못 내리고 망설이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선언했다.
이번에는 그냥 데려가 보자. 어떤 방법이 좋을지는 해봐야 아는 거니까.
맞는 말이다. 녀석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앞으로 명절이 되었든 여행이 되었든 하루 이상 집을 비울 일이 몇 번이나 될까? 이번에는 데려가 보고 다음번에는 놓고 가보고 또 다음번에는 누군가에게 잠시 부탁도 해 봐야지. 뭐든 해 봐야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고양이를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일단 양가에 허락을 받아야 했다. 시댁은 예전에 개를 키워본 적이 있으셔서 그런지 평소에도 동물에 대해 큰 거부감은 없으셨다. 다만 예정대로라면 명절은 시아버지께서 어깨 수술을 받고 퇴원한 지 얼마되지 않는 시점이었다. 아직 몸을 추스려야 할 시기에 괜히 고양이를 데려가 일을 번잡스럽게 만드는 건 아닐까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시아버지께서는 오히려 고양이가 온다는 말에 기대를 하시는 눈치다. 워낙 개나 고양이를 좋아하시니까. 반면 동물을 키워본 적도. 가까이서 만져 본 적도 없는 친정의 경우 방 한 칸에 넣고 거실에 풀어두지 않는 조건으로 허락하셨다. 나중에 듣자하니 올케는 개나 고양이를 상당히 무서워한다고 한다. 혹여 동생네와 마주치더라도 한두시간 정도에 불과하겠지만, 그 부분은 주의해야겠다 싶었다. 마지막으로 시댁에서 함께 이틀 정도를 보내게 될 형님네. 전화로 사정을 말했더니 오히려 대환영이었다.
그러나 계획은 갑작스레 취소되었다. 시아버지의 퇴원이 예상보다 며칠 늦춰진 것이다. 결국 명절은 각자의 집에서 보내고 퇴원 후 적당한 날을 봐서 시댁을 찾아뵙는 것으로 정리했다. 아버님은 추석 직후 퇴원하셨고, 우리는 이틀의 짧은 일정으로 시댁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우리는 고양이는 놓고 가기로 한다.
집을 떠나기 전 여기 저기 먹이와 물을 충분히 놓고 여기 저기 간식들을 숨겨놓았다. 혹시나 삼켜서 위험할 만한 물건들은 모두 안방에 치우고 문을 닫아버렸다. 화장실도 추가로 두 곳 더 만들어 놓았고 혹시 심심할 때를 대비해 새 장난감도 사서 거실에 던져두었다.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준비하고 집을 나섰지만 역시나 평소와는 달리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집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혹시나 하는 생각에 걱정도 쌓여갔다. 혹시 우리가 없는 동안 똥오줌으로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까? 한번에 사료를 다 먹고 병이 나지는 않았을까?
마음이 급한 탓인지 예정보다 몇 시간 빨리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여는 순간 눈을 잠시 감았다. 혹여 집이 엉망진창으로 변해 있더라도 흥분하지 말고 잘 대처하자는 내 나름의 각오였다. 눈을 뜨고 바라보니 집은 그저 조용했다. 떠나기 전과 별 차이가 없다. 사료를 넣어둔 그릇들은 모두 비어 있었고, 숨겨둔 간식들도 모두 찾아 먹은 듯 남아 있지 않았다. 녀석은 우리를 보고도 별 다른 기척이 없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집 곳곳을 유심히 살펴보니 큰 아이 침대 시트 위에 토한 자국이 있다. 필시 한번에 간식들을 다 집어먹어 속이 불편해진 탓이었다. 얼른 시트를 벗겨 세탁기에 넣고 집안 정리를 했다. 내 걱정이 우스워질만큼 녀석은 잘 지내고 있었다. 물론 이번보다 더 긴 기간의 여행은 또다른 고비다. 그 때는 역시나 고양이를 데려가거나 고양이를 돌봐줄 누군가를 집으로 부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편한 마음으로 여행을 떠날 일은 다시 오지 않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