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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기 Apr 02. 2024

명절 나기 2


시간은 흐르고 흘러 또다시 명절이 찾아왔다. 지난번에는 고양이를 두고 다녀왔으니 이번에는 데리고 가기로 한다. 집을 비우는 기간도 3박 4일로 지난번 보다 길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최선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직접 해 보는 수밖에 없다. 


역시나 양가에 고양이를 데리고 가도 될지 허락을 받고, 들고 가야 할 물건들을 준비했다. 차 트렁크에 공간적 여유가 많지는 않았지만, 녀석의 화장실 하나와 숨숨집 하나쯤은 약간의 무리를 해서라도 들고 가기로 했다. 녀석은 조금이라도 긴장하면 전혀 먹지도 싸지도 않는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동시간이 워낙 길다 보니 식사와 배변도 준비해 두기로 한다. 약간의 사료와 물을 따로 챙겨 두고, 뒷자리 좌석과 바닥 전체에는 강아지 용 배변 패드를 사서 틈 없이 깔아 두었다.  


출발 전 평소보다 조금 더 넉넉히 먹이고 화장실까지 다녀오는 걸 확인한 후 우리는 녀석을 이동가방에 넣었다. 이동가방을 보자마자 녀석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눈치챈 모양이다. 잽싸게 도망가는 걸 잡아서 가방에 넣고 꼭 안은 채 차로 데려갔다. 내려가는 내내 가방 안에서 몸을 비틀며 버둥거린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그때부터는 아예 얼어버린 고양이. 나는 앞자리에 타고 아이들이 녀석을 보살피기로 했다. 30분 정도 달렸을까, 조금 진정된 듯해서 아이들은 이동가방의 지퍼를 열어 주고 간식을 내밀어 보지만, 녀석은 버둥거리지만 않을 뿐 가방에서 나올 생각일랑 없어 보였다. 그렇게 또 한 참을 달리자 녀석은 마침내 가방에서 나와 뒷좌석 아이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전히 간식은 거부한 채 얼어 있지만, 처음처럼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 달리다 보니 어느새 녀석이 사라지고 없었다. 차 문을 연 적이 없으니 밖으로 나갔을 리는 없고, 발 밑을 살펴보니 역시나 좌석 바닥의 어둑하고 구석진 곳에 몸을 숨기고 있다. 시댁에 도착할 때까지 녀석은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길이 막혀 이동시간은 예정보다 한참이 늘어났다. 간간히 휴게소에 들러 스트레칭도 하고 간식도 사 먹으면서 내려온 우리와 다리 녀석은 분명 배로 갑갑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묵묵히 참고 잘 와 준 녀석에게 감사할 뿐이다.  


차문을 열고 녀석을 안아내리니 녀석은 다시 낯선 풍경에 얼어붙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우르르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 누군가는 손을 뻗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을 만지려 한다. 전에 없던 고양이의 방문에 시댁 식구들의 호기심은 당연한 것이지만, 소심한 딱지는 점점 더 쪼그라들어 내 품속을 파고들 뿐이었다. 

얼른 우리 방으로 마련된 곳에 녀석을 넣고 숨숨집이며 화장실이며 꺼내 둔다. 여러 시간 굶었으니 물이며 사료도 준비해 두었다. 하지만 녀석은 그 정도의 여유도 없는 모양이다. 우리가 쓰는 방에는 네 발이 달린 낮은 화장대가 있는데 방안에 들어가자마자 녀석은 그곳으로 숨어버린다. 명절맞이 청소를 했다고는 해도 평소 쓰지 않는 방이라 화장대 아래는 그야말로 먼지투성이다. 


녀석이 후다닥 기어들어가자 잠자고 있던 먼지더미가 후욱하고 솟구친다. 몸을 깔고 안을 들여다보니 이미 녀석은 안쪽에서도 가장 사람 손이 닫기 힘든 안쪽에 몸을 붙이고 있다.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고집불통이다. 할 수 없이 손을 끌고 나왔다. 얼굴이며 몸통 전체가 먼지로 엉망진창이다. 급한 대로 물티슈로 녀석과 가구 아래 손 닿는 곳의 먼지를 털어낸 후 녀석을 숨숨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딱지는 그날 밤이 될 때까지 먹지도 싸지도 않고 내내 숨어 있었다.


시댁 식구들은 고양이가 왔다는데 왜 고양이가 안 보이냐고 묻는다. 겁이 많아서 그래요,라고 하자 주인이 바로 곁에 있는데도 이렇게 몸을 사리냐며 놀라신다. 우리가 옆에 붙어 이것저것 신경을 써주었다고는 해도 익숙한 공간이 주는 안락감을 대신할 수는 없었던가 보다. 


방문을 열 때마다 녀석이 동요하는 게 느껴져서 결국 가능한 문을 닫아 둔 채 내버려 두기로 했다. 잠은 우리와 함께 잤다. 다음날 아침 살펴보니 밤새 화장실도 한 번 썼고, 사료도 조금 먹은 눈치다. 천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방문을 살짝 열어두자 녀석은 조금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방안을 나와 거실이며 부엌 근처까지 냄새를 맡고 돌아다닌다. 물론 누군가 녀석을 만지려 하거나 큰 소리가 나면 당장 원래 방으로 도망가 숨어버렸지만 말이다. 그렇게 며칠을 보낸 후 우리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녀석은 조용할 뿐이었다. 있은 듯 없는 듯 마치 그림자처럼.


마침내 집에 도착했다. 익숙한 현관이 눈에 들자마자 녀석은 품에서 바둥거리더니 집안으로 날듯이 뛰어들어갔다. 낯선 곳을 전젆하던 지난 며칠 동안 어쩌면 녀석은 다시는 이곳에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구나,라고 지레 포기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으니 녀석으로서는 사정을 알 방법이 없다. 우리 중 이 집을 가장 사랑하는 이는 바로 고양이였다.


갑자기 시장기가 도는지 녀석은 냐옹거리며 사료와 물을 찾는다. 배불리 먹고 마시자 녀석은 화장실을 쓰고, 뒤이어 한참 동안 그루밍을 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익숙한 냄새가 나는 거실 카펫에 한참 동안 몸을 비비다가 잠에 빠져들었다. 며칠 만에 처음으로 구석에 숨지 않고 개방된 곳에서 잠에 든 것이다. 

 “이 정도면 정말 잘 지낸 거 아냐?” 남편 말대로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모두 녀석이 요 며칠간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지 않는다. 역시나 명절이란 쉽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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