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몇 달 만에 끝나고 말았지만 몇 년 전 혼자 우쿨렐레를 연습했던 적이 있다. 우쿨렐레는 초등학교 방과 후 취미 수업으로 많이들 선택하는 악기 중 하나다. 기타보다 작고 배우기 쉬워서 아이들이 선호하는 악기가 된 것 같다. 우쿨렐레 수업을 처음 신청한 것은 큰 아이였다. 5만원에 보급형 우쿨렐레를 하나 구했다. 방과 후 수업은 석 달 단위로 진행되는데 큰 아이는 첫 석 달이 끝나기도 전에 흥미를 잃었다.
일 년 정도 지났을 때였을까? 이번에는 둘째가 우쿨렐레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내 욕심이었다. 이왕 악기까지 사놨는데 싶어 둘째를 부추긴 것이다. 하지만 둘째도 비슷했다. 재미가 없으니 더 이상은 무리라고 했다. 몇 년이 흐른 후, 문득 그렇다면 이번에는 내가 한번 도전해 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도 하는 건데 하는 마음이 절반이었고, 창고에 박혀 있는 악기가 안쓰러운 마음이 절반이었다.
악기는 아기자기하게 예뻤다. 우울함과는 몇 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명랑한 곳의 체취를 가졌다. 매끈하고 통통거리는 나무판을 손으로 쓸어보면 이미 무겁고 갑갑한 일상과는 다른 뭔가가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손으로 줄을 뜯어 소리를 낸다는 것이 과연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고, 또 그 소리가 기타와는 어떻게 다를지가 기대되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앙증맞은 악기가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실패한 이유도 알고 싶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교본을 사서 혼자 매일 십분 정도 반 년쯤 연습하다 그만두었다. 코드와 박자가 복잡해지면서 한계를 느낀 탓이다. 연주 실력은 쉬운 곡 몇 개, 그마저도 어설프기 짝이 없는 수준이지만, 나는 이쯤에서 만족한다. 나는 우쿨렐레가 ‘벼룩이 톡톡 튄다’는 뜻의 하와이 말에서 기원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수십 개의 코드가 있다는 것,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가 셔플 리듬으로 연주하기 좋은 곡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케이스에서 악기를 꺼내고 줄을 고르고 음정 맞추는 일을 해봤고, 햇빛 좋은 날 혼자 의자에 앉아 내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불러보기도 했다. 아마 다시 이 악기를 꺼내게 될지 아닐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닫혀 있던 우쿨렐레라는 악기의 문을 열어보았고, 최소한 내가 원했던 만큼은 엿본 것 같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도 그렇다. 달라붙어 있는 세계가 있다. 혹시나 고양이를 키울 날을 대비해 틈틈이 고양이 관련 책을 찾아보곤 했지만, 그런 내게도 실제 고양이는 새로운 세계였다. 고양이를 처음 키우게 된 한 달간. 거의 매일 새로운 것들을 접하게 되었다. 불과 어제까지도 상상조차 못 했던 것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고양이 다리. 나는 교육받은 성인이다. 하지만 고양이의 앞다리와 뒷다리가 다른 모양으로 생겼다는 사실을 고양이를 집에 데려온 며칠 후에 처음 "발견"했다. 내 머릿속의 고양이 다리는 네 개의 막대기 같은 것이었다. 마치 만화나 아이들 그림에서처럼 관절도 없이 그저 일직선으로 뻗은 네 개의 다리.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그럴 수가 없는 노릇이다. 웅크리고 뛰고 점프하는 것이 고양이다. 뒷다리는 앞다리보다 훨씬 길고 다리의 절반 정도는 마치 스키의 앞코처럼 비스듬히 지면 쪽으로 굽어져 있다. 이 접힌 부분을 확 펼침으로써 고양이는 제 몸통만큼이나 높은 곳으로 몸을 밀어 올리는 것이다.
그루밍이란 것도 그랬다. 그루밍이란 혀로 털을 핥아 마치 빗질하듯 털을 다듬는 것이다. 그루밍을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심지어 그저 앞발 정도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제 아무리 몸이 유연하다고 한들 몸 전체를 그루밍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찬찬히 관찰해 보니 머리 위나 등의 일부를 제외하고 고양이는 몸 전체를 그루밍했다. 그 와중에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럽고 기묘하다고 할 만한 자세들이 나왔다. 고양이는 다리를 들고 고개를 밀어 넣어 자신의 배, 사타구니, 항문까지도 다 핥았다. 고양이들이 똥오줌을 싼 후에는 모래를 덮어 흔적을 지우려 한다는 것도 놀라웠다. 고양이 모래라는 것도 신기한 물건이다. 우리가 쓰는 것은 두부모래라는 제품인데 녀석들이 오줌을 싸면 순간적으로 흡수되어 굳기 시작한다. 냄새도 거의 나지 않는다.
생활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옛날 사람들이 하던 식으로 마당 한 구석에 용변을 보게 하고,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나 챙겨 던져주던 식으로 개나 고양이를 키울 수는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이렇게나 많은 물건이 필요하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태어나 지금껏 집에서 동물을 키운 적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제껏 동물용품점에 출입할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사실 사료나 목줄 외에 동물용품점에서 도대체 뭘 팔고 있을까 궁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일단 발을 들어가 보니 그 역시 신세계였다.
수십 종의 장난감, 위생용품, 사료, 간식, 액세서리, 배변 용품들이 존재하고 있다. 수요가 많아지고, 시장은 날로 커졌다.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고양이의 입맛이나 행동을 연구해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상상조차 못 했던 것들이 “고양이용”이라는 이름을 달고 내 앞에 열렸다. 고양이가 좋아하는 음악, 고양이를 진정시키는 향기, 고양이 입냄새를 줄여주는 치약, 목욕을 싫어하는 고양이를 위한 거품 물수건, 음수량을 늘여주는 고양이 사탕 등등.
큰 아이 교복을 맞추러 교복집에 들렀을 때다. 아이는 견본 옷을 입어보느라 탈의실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어디선가 희미하게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도 모르게 불쑥 “혹시 고양이 키우세요?” 라고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냥 벨소리예요. 근데 집에 고양이를 키우기는 해요.” “아, 그러시구나. 저희도 한 마리 키워요.” 이 마법 같은 한마디가 나가자 저쪽 구석에서 재고 정리를 하던 주인 아저씨가 물건을 내려놓고 굳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서로의 고양이 품종을 묻고 털날림이라던가 좋아하는 간식 등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만 아는 이야기다. 나는 어느새 이쪽 세계 사람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