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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기 Mar 27. 2024

고양이도 훈련이 되나요?


고양이와 함께 한 지 두 달. 마침내 녀석은 더 이상 내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함께 있어도 그저 배경 음악이나 풍경처럼 편안히 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우리가 시행착오를 거쳐 일종의 평화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해 왔다. 나는 녀석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매일 사료와 물을 챙기고, 빗질과 양치질을 해주고, 화장실 청결에 힘쓴다. 녀석에게도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간단하지만 내게는 무척 중요한 것들이다. 배변 실수하지 않기, 그리고 사람을 공격하지 않기. 계약서 같은 걸 쓴 적은 없지만, 꽤 오랫동안 우리는 각자에게 기대되는 일들을 잘해 나갔다. 




하지만 이야기가 이렇게 시시하게 끝날 리가 없다. 일 년 정도가 흘렀을 때 딱지는 다시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상 행동은 역시나 배변 문제였다. 부엌에도 복도에도 거실에도 심지어 안방까지 들어와 변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 한 번씩이었으니 실수라고 부르기도 힘든 수준이다. 도대체 왜 또 갑자기? 우리 둘 사이의 높은 벽이 다시 나타났다. 




나는 녀석의 작은 행동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고, 예민한 녀석 역시 내 이런 변화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또다시 서로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다시 우리 관계는 일 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침이 되면 나는 눈을 부릅뜨고 집안 곳곳을 살폈다. 밤새 집 어딘가에 녀석이 실수를 해놨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피곤한 일이다. 그리고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역시나 무리였던가, 생각 하게 되는 것이다. 




고양이는 습성상 화장실 사용 전에 앞발로 바닥을 파는 듯한 행동을 한다. 녀석이 엉뚱한 곳에서 앞발로 구덩이 파는 듯한 행동을 하기라도 하면, 나는 당장 달려가 녀석을 안고 고양이 화장실에 넣어준다. 그러면 녀석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다. 하지만 하루에 보통 두 번 변을 보고, 다섯 번에서 여섯 번 정도 소변을 보는 녀석을 내가 매번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낮이야 그렇다 쳐도 잠을 자야 할 한밤중은 어쩔 도리가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히 문제는 해결되었다. 예전보다 나는 조금 더 노련해졌고, 녀석은 조금 더 예측가능해졌다. 배변 실수는 워낙 흔한 일이라 인터넷에는 교정법이 여러 가지 나와 있다. 시간이 걸려도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하다 보니 어느새 녀석은 다시 예전의 고양이로 돌아왔다. 사람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녀석에게 화를 내고 야단을 쳐봐야 야단치는 스스로가 우스워질 뿐 실익은 없다.




배변 실수의 가장 흔한 원인은 화장실에 대한 불만이다. 물론 방광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경우도 있고, 다묘 가정의 경우 세력다툼 과정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우리의 경우 얼마 전 정기검진에서 건강하다는 말을 들었고, 고양이는 집에 한 마리밖에 없으니 이 요인들은 일단 제외했다. 그렇다면 화장실이다. 고양이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고양이의 행복을 위해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개수나 크기, 위치에 불만이 있을 수도 있고, 화장실의 위생상태나 사용하는 모래 재질에 대해서도 예민할 수 있다. 혹시 얼마 전 사용하던 모래를 굵은 입자에서 가는 입자로 바꾸었는데 그게 화근이었나 싶어 다시 모래를 본래대로 갈아주었다. 별 소용이 없었다. 




이번에는 고양이는 먹는 곳과 변을 보는 곳을 구분 짓는다는 말이 생각나 녀석이 자주 실수하는 곳에서 간식을 먹이거나 간식그릇을 놔두기도 했다. 하지만 녀석은 조금 전 간식을 받아먹던 장소에서 아무 위화감 없이 변을 본다. 녀석은 생각보다 비위가 좋다.




그렇다면 이제 가능한 건 훈련인가? 방법은 단순 명료하다. 화장실에서 변을 보면 상을 주고, 그렇지 못하면 벌을 주는 것이다. 상이야 좋아하는 간식과 엉덩이 툭툭이면 될 테지만, 벌은 어떻게 내려야 하나? 힌트를 얻은 건 한 수의사의 동영상이었다. 고양이가 싫어하는 것, 하지만 녀석에게 실질적인 해가 가지는 않는 것, 바로 물을 뿌리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고양이는 물을 싫어하고 딱지 역시 예외가 아니다. 




녀석이 거실 바닥에 특유의 자세를 잡고 일을 벌이려 자세를 잡으면, 나는 등 뒤에 감추고 있던 물뿌리개를 발사한다. 치익 치익. 녀석은 순간 축축해지는 공기와 시끄러운 소리에 기겁을 한다. 털에 물이 닿는 것도 불쾌하다. 반면 녀석이 제대로 화장실에 볼일을 보면 당장 달려가 볼펜으로 딸깍딸깍 소리를 내고 간식을 주었다. 시간이 지체되거나 예외가 많아지면 효과가 떨어질까 싶어 꼬박 며칠간 잔뜩 주의를 기울였다. 훈련의 효과는 드라마틱했다. 녀석은 다시 화장실을 애용하기 시작했고, 나 역시 녀석을 더 이상 감시하지 않는다. 




고양이와 함께 한지 얼마되지 않았던 무렵 큰 아이는 고양이 꽤나 훈련에 열심이었다. 손가락 두개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면 고양이가 머리를 쏙 집어넣게 만드는 게 목표였다. 많은 시간과 간식을 허비한 후 아이는 훈련을 포기했었다. 아이가 내 건 이유는 “지능 부족” 하지만 딱지는 사랑스러우니까 그까짓 동그라미나 앉아 일어서를 못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하지만 녀석은 배변 훈련을 제대로 해냈고,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지금도 볼펜 딸깍거리는 소리가 뭘 의미하는지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아이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어쩌면 녀석은 그저 손가락 동그라미가 하기 싫었던 게 아닐까?  알면서도 모르는 척, 듣고도 못들은 척, 고양이는 그런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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