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털과 개털에 알레르기가 있네요. 아주 심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약한 것도 아니고…
검사 결과 큰 아이는 개, 기니피그, 토끼, 햄스터, 돼지고기에 "보통" 정도의 항체 농도를 가지고 있고, 고양이에게는 "조금 높음" 정도의 항체 농도를 갖고 있었다. 의사에게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어떻게든 하셔야겠네요”라는 말에 “어떻게요?”라고 되물었다. 의사는 다소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릴 뿐 말을 아낀다. “고양이는 키우시면 안 됩니다”, 이 말을 하고 싶었을 테지만,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의 면전에 그런 말을 하기는 힘들었나 보다.
우리 집 아이 둘은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겁도 별로 없었다. 난공불락의 엄마 때문에 그들은 용돈을 받기 시작한 때부터 정기적으로 펫카페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고양이도 개도 예쁘기만 하단다. 펫카페 주인과 안면을 틀 정도로 자주 다녔지만, 단 한 번도 두드러기나 재채기가 났던 적은 없었다 했다. 나나 남편 역시 다른 일로 오래전 알레르기 검사를 받은 적이 있고 고양이 알레르기는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고양이를 데려 오기로 했을 당시 털 알레르기로 이리 속을 썩게 되리라는 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의사의 말을 토대로 추측해보자면, 아마 큰 아이는 처음부터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고작 몇 시간 고양이 카페에서 놀거나 친구네 집 고양이를 만지는 정도로 급격한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다른 얘기다. 알레르기 원인 물질은 누적된다. 차곡차곡 쌓이다가 어느 날 폭발하는 것이다.
집에 있을 때면 고양이가 귀찮아할 정도로 붙어 있는 큰 애였다. 그렇게 일 년 정도가 흘렀을 때부터 아이는 자주 코가 막혔고 재채기를 시작했다. 눈이 가려운 날도 많아졌다. 병원에 가자고 했더니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다. 나중에 와서 보니 자기 딴에도 고양이 때문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고 한다. 의사는 검사를 권했고, 결과는 중증의 고양이털 알레르기였다.
집에 돌아온 후 고양이 알레르기 대처법을 찾아보았다. 털이 문제이므로 털이 길게 자라지 않게 미용을 시키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겁이 많은 녀석에게는 너무 가혹한 것 같아 일단 보류. 알레르기 물질을 덜 뿜어내게 하는 사료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이 역시 소화기관이 약해 특정 브랜드 사료만 먹는 녀석에게는 쓸 수 없는 방법. 결국 더 이상 고양이를 큰 아이 방에 들이지 않고, 가능한 자주 꼼꼼히 큰 애 물건들을 세탁하는 것 정도가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큰 아이가 할 일이었다. 고양이를 멀리 하는 것.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 중 어려운 일이었다.
엄마, 그냥 나 약 먹을게. 재채기 그깟 거 좀 하면 어때서.
큰 애는 고작 이틀 만에 백기를 들었다. 알고 조심을 한 덕분인지 아니면 학년이 올라가 집에 있는 절대적 시간이 줄어든 탓인지 큰 애의 알레르기는 두어 달을 기점으로 며칠씩 요란을 떨다가 약을 먹으면 가라앉는 정도로 조절되고 있다. 물론 그 마저도 겪어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얕잡아 볼 만한 것은 아니다. 머리는 아프고 눈은 빨개지고 코가 막혀 답답하다. 하지만 큰 애한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모든 것을 감내할 만큼 고양이가 주는 행복은 절대적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