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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기 Mar 06. 2024

중성화 수술 2

고양이가 우리에게 오고 제법 시간이 흘렀다. 처음보다 이 집의 구조나 냄새, 소리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자주는 아니지만 사람 곁에 와 조용히 잠을 자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녀석이 우리에게 마음을 주었다고 생각했다면, 이 집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우리의 착각이었다. 여전히 녀석에게 이 집은 완벽한 안식처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제 정을 붙여 가려는 첫발을 떼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리석은 우리는 녀석의 적응이 완료되었다고 생각하고 다음 단계로 고양이를 끌고 갔다. 



처음부터 여름에 수술을 시킬 작정은 아니었다. 덥고 습한 여름은 상처가 덧나기 쉽기 때문이다. 사실 2년을 기다렸는데 몇 개월 더 기다린다고 그 사이 뭔가 일이 생길 것 같지도 않았다. 다만 배변판이 아닌 집 여기저기에 소변 실수를 하는 횟수가 다시 늘면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중성화가 안된 수컷 고양이의 경우 소변으로 영역 표시 행위를 하는 경우(스프레이)가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녀석의 소변 실수가 의도적인 스프레이인지 단순한 소변 실수인지 고양이를 처음 키우는 우리로서는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결론을 말하자면 그것은 그저 실수였지만 초기에 우리는 스프레이라고 오해했고 이것이 수술 시기를 앞당기는데 큰 역할을 했다. 



물을 많이 먹지 않는 고양이 특성상 고양이 오줌은 암모니아 농도가 높아 악취를 풍긴다. 바람 한점 불지 않는 습하고 더운 여름날, 이 냄새에 너그러워질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마침 우리 집 적응도 어느 정도 마무리 된 것 같아 우리는 그렇게 덜컥 수술 날짜를 예약해 버렸다.



수술은 오전 10시 반이었다. 수술 직전 8시간 이상은 금식해야 했다. 우리 집 고양이는 배고플 때 외에는 거의 울지 않는다. 녀석이 냐옹거리면 우리는 지체 없이 그릇에 사료를 채워준다. 그날 아무리 울어도 먹이는 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때부터 녀석은 그날 하루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눈치를 채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병원 갈 채비를 마쳤다. 사실 그날은 고양이가 우리 집에 온 후 두 번째로 동물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첫 번째 진료를 받던 날, 남편과 큰 아이는 고양이를 이동자에 넣느라 진땀을 뺐다. 우리도 긴장했고 그 긴장감이 고스란히 고양이에게도 전달된 까닭이다. 그래도 한번 해봤던 일이라 그런지 두 번째는 조금 수월했다. 큰 아이 혼자서도 쉽게 고양이를 이동장에 넣었다. 순식간이었다. 조짐이 좋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의 10분 남짓한 수술이 끝나면 곧바로 평소의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 기대했다. 물론 철저한 오산이었다. 



수술 후 다섯 시간 정도 지났을까? 병원으로부터 마취가 깼으니 데리러 오라는 전화가 왔다. 역시나 남편과 큰 아이가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서 돌아와 이동장을 열자 플라스틱 넥카라를 한 고양이나 튀어나왔다. 녀석은 아직 마취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다리에 힘이 풀려 기다시피 그러나 필사적으로 녀석은 도망쳤다. 넥카라 때문에 시야가 가려 집안 벽이며 가구며 수없이 부딪치면서도 계속 도망을 갔다. 그 광경이 얼마나 처참했던지 둘째 아이는 어깨를 떨며 눈물을 흘렸다. 



어떻게 찾았는지 알 수 없지만, 녀석은 처음 우리 집에 와 숨어 있던 세탁실로 다시 들어갔다. 넥카라가 걸려 낑낑거리면서도 세탁기 뒤편의 좁디좁은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세상에 생살을 찢고 장기를 떼어내는데 간단한 수술이 어디 있을까? 어쩌면 중성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야생의 동물을 집안으로 들여오려다 보니 이 모든 부자연스러운 일들이 생겨난 것은 아닐까? 



길고양이들은 보통 6년 정도를 산다고 한다. 물론 성묘가 되기까지는 수많은 시련을 뛰어넘어야 한다. 하지만 주인을 얻어 집에서 보살핌을 받는 고양이들은 이제 20년 가까이도 산다. 영양이 풍부한 먹이를 먹고, 천적들에게서 보호를 받으며, 예방주사와 각종 치료를 통해 수명을 연장시킨다. 



물론 그만큼 고양이들은 인간화된다. 사냥을 할 필요도 없고, 천적에 맞서 나무 위로 높이 뛰거나 빨리 달릴 필요도 없다. 고양이들은 점점 작고 연약해진다.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고양이가 예쁨을 받는다. 발정기에 고양이가 보이는 평소와는 다른 행동들도 사람 눈에는 이상행동일뿐이다. 한두 마리면 가정에 고양이는 충분하니 더 이상의 번식도 원치 않는다. 그러니 중성화 수술이 답이다. 



문명화된 방식으로 야생을 길들인다. 나는 중성화 수술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개체수가 많다고 그 종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할 때 중성화 수술은 도시에서 고양이와 사람이 공존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다만 그 일반론과 중성화를 마치고 헐떡이는 고양이를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것 사이에는 굉장한 괴리가 있다. 



아침까지만 해도 누구보다 건강했던 녀석이다. 지금은 다리를 들 힘도 없어 바닥에 오줌을 지리고, 그 오줌 위에 널브러져 있다. 하루 가까이 금식을 해서 분명 배가 고플 것이 분명한데 간식도 사료도 심지어 물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항생제 탓인지 계속 설사다. 고양이는 어쩌다 다시 세탁실을 나와 작은 아이 방으로 숨어들었다. 사실 알고 숨었다기보다는 여전히 정신없이 이리저리 부딪치고 튕겨가길 반복하다 보니 그 방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고양이는 그 방에서 몸조리를 했다. 



십분 정도의 간단하고 쉬운 수술. 해야 할 일이니 어서 후딱 해치우자, 이 정도의 각오로 벌인일이었다. 마취가 풀리면 물론 평소보다 힘이 없겠지만, 좀 쉬고 나면 금세 본래 모습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이 바보처럼 여겨졌다. 자기 냄새를 지우려 오줌도 모래로 덮어버리는 녀석이 지금 이렇게 코를 찌르는 냄새 속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녀석은 그만큼 심하게 앓고 있었다. 다만 사람을 보면 기어서라도 도망을 간다. 뒷다리를 채 들지도 못해 질질 끌면서라도 구석으로 찾아들었다. 



우리를 잇고 있던 실낱 같던 신뢰는 수술을 계기로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고통으로 신음하는 존재를 보면 누구나 안쓰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 내가 지금 느끼는 마음은 안쓰러움과 더불어 죄책감이다. 평생 집안에서만 살 수컷인데, 호전적이기는커녕 순하디 순한 겁쟁이 녀석인데 굳이 이렇게 수술을 시켰어야 했나 싶다. 내 선택으로 고통받는 존재가 눈앞에 있다. 문명이란 이름으로 내가 야만적 행동을 한 것 같아 마음이 괴롭다.




뭔가 당장 해줄 게 없을까 싶어 동물용품점으로 가 직원과 상담을 했다. “플라스틱 넥카라가 상당한 스트레스일 겁니다. 천으로 된 걸로 바꿔주세요.” 당장 천으로 된 넥카라를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다. 바닥에 깔 배변패드와 목욕 티슈도 샀다. 집에 와 넥카라를 바꿔주니 한결 편해 보인다. 누워 있는 자리에 패드를 깔아주고 목욕 티슈로 오줌에 젖어 있던 털을 닦아주었다. 



문제는 다음날 아침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거실로 나가보니 배변판 주변 마루에 똥이 군데군데 묻어 있고 넥카라는 벗겨져 한쪽에 나뒹굴고 있었다. 아마 밤사이 화장실을 쓴 후 평소처럼 그루밍을 하려고 애쓰는 사이 넥카라가 풀렸나 보다. 안된 마음에 조임 줄을 꼭 채워두지 않았던 탓이다. 죄책감 때문에 식욕이 없는 녀석에게 사료 대신 간식을 잔뜩 준 덕분에 설사까지 하게 된 것 같다. 어설픈 동정으로 일이 더 커지고 말았다. 할 수 없이 남편과 큰 아이는 또 한 번 병원을 다녀왔다. 다행히 녀석이 그루밍을 하기는 했지만, 수술 부위의 실밥이 터지거나 상처가 악화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 녀석의 수술은 잘 마무리되었다. 상처가 아물고 컨디션이 돌아오면서 고양이는 다시 우리에게 다가왔고 예전의 모습을 서서히 회복했다. 이전의 오줌 실수가 스프레이 현상은 아니었던 것이 분명하기는 하지만 우연인지 뭔지 오줌 실수도 수술 이후에는 다행히 완전히 사라졌다. 



인간에게는 별 일 아닌 걸로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녀석은 태어나 가장 큰 일 중 하나를 치른 셈이고, 우리는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이제 이 고양이는 빈말이 아니라 진짜 우리 집 고양이가 된 것 같다. 처음 집으로 데려왔을 때 그저 순하고 귀여운 얼굴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었지만, 이제 우리는 작은 산을 함께 넘은 동지가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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