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고양이를 들인 뒤 맞는 첫 아침. 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발바닥이 미끈한다. 실내는 아직 살짝 어둑하고 안경도 쓰지 않은 터라 처음에는 상황 파악을 할 수 없었다. 그랬다. 간밤 안방 문 앞에다 고양이는 똥을 싸 놓았다. 문자 그대로 나는 똥을 밟은 것이다.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서둘러 똥을 치우고 알코올로 소독을 했다. 발을 씻고 또 씻었다.
거실 화장실로 이어지는 복도에는 독한 냄새가 풍긴다. 화장실 앞 매트가 진원지였다. 거기에 오줌을 싼 것이다. 이렇게 일을 저질러놓고 정작 고양이는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숨을 곳을 찾아냈나 보다. 구석구석 뒤져보니 냉장고 옆 손바닥 너비의 틈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내가 근처로 다가가니 더 깊이 뒷걸음친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눈만 아니었다면 완벽에 가까운 은폐다. 락스 희석액에 매트를 담그고 화장실 주변을 청소했다. 소독액을 뿌리고 걸레질을 하고 탈취제까지 뿌리고 나니 이마가 땀으로 번들거린다. 이제 겨우 아침 6시인데 대기는 후끈후끈하다.
나는 유달리 냄새에 민감하다. 재미있게도 우리 엄마는 냄새를 못 맡는다. 엄마는 어릴 때 우물에서 떨어져 제법 크게 머리를 다친 적이 있다. 다행히 아이가 금방 일어나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말대답도 곧잘 했기에 어른들은 별다른 치료를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중년이 되고서야 엄마는 자신이 냄새를 못 맡는 이유가 어쩌면 만성 비염이나 축농증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그 사고의 후유증이 아닐까 의심을 품게 되었다. 어쨌건 그 덕분이랄까? 후각이 약한 엄마를 대신해 어려서부터 냄새와 관련된 집안의 잡다한 일들은 죄다 나에게로 넘어왔다. 어제 먹었던 반찬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알아내는 것도, 병 속의 액체가 식초인지 술인지 가려내는 것도, 불 위 냄비에서의 탄 냄새를 맡고 불을 끄러 가는 것도 모두 내 소관이 되었다. 엄마는 희미한 냄새도 쉽게 가려내는 나를 늘 신기해하셨다.
그렇게 우리 집에서 냄새에 관한 최종 심급은 항상 나였다. 냄새에 관해서라면 항상 내 의견은 옳았다. 하지만 진화론적으로 보자면 현대인에게 뛰어난 후각이란 그다지 큰 쓸모가 없다. 탄 냄새를 못 맡아도 천장의 센서가 알아서 감지하고 물을 뿌려줄 것이다. 하루 종일 돌아가는 공기청정기가 알아서 유해물질을 잡아 주니 코가 좀 둔하다는 이유로 독가스를 마실 염려도 별로 없다. 사실 쓸모가 없다는 정도가 아니라 생활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퇴화 요건이라고 할 만하다. 보통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수많은 냄새 공격에 예민한 코는 딱히 자랑할 만한 자질은 못된다. 오히려 보통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들까지 신경 쓰고 거슬려한다는 점에서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한다.
복도 청소는 다 마치고 거실로 돌아갔다. 아까 분명히 거실도 다 닦아냈는데 예민한 내 후각은 다시금 불쾌한 냄새를 감지한다. 공격적인 냄새다. 청소를 하는 잠깐 동안 냄새는 잠시 사라진 것 같았지만, 사실 냄새는 정말로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공기 중을 부유하던 먼지가 잠시 고요해진 틈을 타 바닥에 가라앉은 것과 비슷했다. 보이지 않지만, 냄새만으로 고양이는 거실에도 복도에도 식탁 위에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당장 근처 팻샵으로 달려가 반려동물용 냄새제거제를 사 와 이곳저곳 끝없이 뿌렸다. 집안의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열고 선물 받은 향초에 불을 올렸다. 한참 법석을 떤 후 제풀에 지쳐 안방 침대 위에 주저앉았다.
내가 무슨 짓을 벌인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