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고양이에게 방은 개방되어 있지 않았다. 어제도 방문은 모두 닫고 잤기 때문에 고양이가 자기 냄새를 묻힐 수 있었던 곳은 거실, 복도, 주방 정도다. 나는 안방 베란다 창에 고개를 내밀고 신선한 공기를 빨아들였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공기를 빨아들일 수 있어 기쁘다. 고양이가 낯선 장소 이곳 저곳에 자기 냄새를 묻히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다. 고양이 입장에서 봤을 때는 백번 천번 잘 한 일이다. 하지만 왠지 모를 반감이 고개를 쳐든다. 우리집을 자기 것으로 만드려는 고양이의 본능이 불온하게 여겨진다. 저 작은 동물이 이 집을 통째로 장악해 나가고 있다. 고양이는 방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나는 방 밖으로 쉽게 나가지 못한다.
고양이는 두번째 밤, 냉장고 옆보다 더 좋은 자리를 찾아냈다. 부엌 베란다에 놓인 세탁기 뒤켠이다. 밤새 거실을 누비다가 아침이 되면 사료와 물을 먹고 세탁기 뒤로 향한다. 나보다 고양이에 더 애틋한 아이들이 갖은 간식을 들고 고양이를 유혹해본다. 뒤도 돌아보지 않을 것 같던 고양이는 이틀을 보낸 후 마음을 조금은 돌린 것 같다. 2년 가까이 지냈던 주인가족과 헤어져 낯선 곳에 떨어진 신세. 계속 숨어 있을 수만은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용기를 낸 것 같다. 못 이기는 척 아이들이 내민 간식을 받아먹는다. 그래봐야 얼마 안되기는 하지만 세탁기 밖으로 나오는 시간이 매일 조금씩 늘어났다. 기특한 일이다.
고양이는 자기 냄새를 그리 불쾌해하지 않는 다른 가족들과는 며칠사이 조금은 친해졌다. 아이들은 고양이 냄새를 맡고, 고양이는 아이들의 냄새를 맡는다. 나는 고양이 냄새를 여전히 못 견디고 내 냄새를 고양이에게 맡게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서먹하고 내외한다. 원체 나 자신이 고양이를 겁내기도 했고, 고양이의 특성을 잘 몰라 실수를 저지른 면도 없지 않다. 나로서는 앞으로 친해져 보자는 뜻으로 눈을 맞추고 지긋이 바라보곤 했는데, 친밀감이 없는 상태에서의 그런 행동은 고양이어로 번역한다면 적대감의 표현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잘못된 시그널을 보낸 셈이다.
고양이가 우리집에 온 지 닷새째다. 고양이가 밤새 냄새를 뿌리면, 낮 시간 나는 이 냄새를 지운다. 수 일째 반복되는 일상이다. 눈에 보이는 칼 같은 건 없지만, 더 많은 영토를 차지 하기 위해 우리는 냄새를 가지고 매일 매일 합을 겨루며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다행히 오줌 실수는 많이 줄어들어 첫날만큼의 강렬한 냄새는 더 이상 나지 않는다. 이미 남편과 아이들은 지금의 냄새가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고 한다. 나로 말하자면 어떤 날은 이 냄새에 조금은 적응한 것 같다가, 또 어떤 날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다가를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 고양이는 새 환경에서 적응하기 위해 아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멋대로 녀석을 이 집에 데려온 사람은 바로 나. 그런만큼 나와 고양이 사이의 싸움에서 내게 승산은 없다. 내가 깨끗이 승복해야 끝날 싸움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