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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기 Mar 03. 2024

연착륙을 바란다

고양이가 우리 집에 들어온 지 오늘로 엿새째다. 여전히 배변 실수를 하기는 하지만 많이 좋아졌고, 어제저녁부터는 아이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세탁기 뒤에서 나와 거실을 잠시 돌아다니기도 했다. 오늘 낮에는 창가에 걸터앉아 한참 동안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새, 그리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구경했고, 아이 옆에 배를 깔고 누워 낮잠을 자기도 했다. 



고양이의 마음을 읽을 수야 없지만 옛 집, 옛 주인과의 일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이구나, 하고 마음을 정한 것 같다. 새 집에 적응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를 쓰고 있는 것이리라. 여전히 두렵고 불편하지만 마음을 붙여보려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아 무심한 듯 눈길을 피하고 있었더니 조심조심 내게 다가온다. 덩치는 대왕고양이만 한 나지만 사실 나도 고양이를 포함해 대부분의 동물을 무서워한다. 


너도 무섭지? 나도 실은 많이 떨고 있어.



우리는 언어가 달라 서로 말이 통하지 않지만 어쩌면 그 녀석도 내 체취에서 이런 두려움을 맡았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마음으로 아무리 “괜찮다. 괜찮다”, 외쳐 본들 몸은 딴소리를 할 때가 종종 있다. 고양이는 우리 집에 온 다음날부터 하루에 한 번씩 조금이지만 먹은 것을 게워내고 있다. 배변 실수도 처음보다는 줄었다고는 해도 두 살 고양이치고는 아직 잦다. 아침이 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녀석이 간밤에 마루 여기저기 싸 놓은 똥오줌을 치우는 일이다. 전날은 하루동안 세 번이나 토했다. 일부러 예전에 먹던 것과 같은 사료를 주고 있으니 사료 문제는 아니었다. 



고양이가 토하는 원인은 너무 많아 한번에 특정하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예전 주인 말에 따르면 우리 집에 오기 직전까지는 건강했던 아이고, 우리 집에 온 바로 다음날부터 토하기 시작했으니 원인은 뻔하다. 스트레스인 것이다. 녀석은 새로운 환경을 아직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 것이다.



사실 소화불량은 고양이만 걸린 게 아니다. 나 역시 고양이가 들어온 이래 내내 안절부절이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첫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전전긍긍 실수투성이의 그때를 다시 돌려보는 기분이다. 물론 자식 키우는 것과 고양이 키우는 것을 동일선상에서 말할 생각은 없다. 반려동물을 아들이니 딸이니 하며 자식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런 마음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나는 그런 쪽은 아니다. 다만 그만큼 마음 쓸 일이 많고 책임감도 만만치 않다는 말이다. 



막 엄마가 되었던 당시, 미리 육아서적을 여러 권 읽기다고는 해도 실전에 들어가니 무용지물이었다.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었고 나는 그저 바보에 천치였다. 고양이 입양을 염두에 두면서부터 관련 책이며 영상들을 보면서 조금씩 공부를 해왔다. 하지만 막상 실물 고양이와 맞닥뜨리니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나,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어쩌지 하는 순간의 연속이다. 식사를 준비하다가 책을 읽다가 혹은 길을 걷다가 문득문득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나 새삼스레 의심이 생기고, 의심은 이내 걱정으로 치닫는다. 덕분에 어깨는 무거워지고 어딘가 체한 것처럼 배 안쪽이 불편해온다. 



저 작은 녀석 때문에 내 생활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몹시 당혹스럽고 짜증이 난다. 평소의 일과 중 놓치는 게 없도록 더욱 악을 쓴다. 골치가 아프기는 하지만, 나는 내 일을 잘해나가고 있고, 내 생활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집에서 예민하게 굴고 있는 것은 나와 고양이 둘 뿐일지도 모른다. 남편과 아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저 놈이 우리 집에 살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군다. 곁에 다가와도 한번 쓱 쓰다듬어주고 제 할 일을 한다. 오직 나와 저 놈만이 눈치를 보고 신경을 쓰고 이 상황이 불편해 속이 쓰리다. 지금 심정이라면, 고양이를 데려오고 싶다고 연락을 했던 그날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하지만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 



우리는 아직 활주로에 막 도착해 덜컹거리는 비행기 속에 있다. 별 진동 없이 미끄러지듯 내릴 수 있다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지금 상황으로 볼 때 그렇지는 못하다. 그래도 언젠가는 비행기는 멈출 것이고 우리는 짐을 챙겨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다만 이 덜컹거림이 오래지 않고 빨리 잦아들기를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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