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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기 Feb 29. 2024

고양이가 왔다



글 올리신 거 보고 연락드립니다. 저희는 4인가족이구요. 동물 좋아하는 아이 둘 있어요.  창밖으로 나무랑 새 보이고 고양이가 뛰어도 상관없어요.
기회가 된다면 데려오고 싶네요

동물을 돈 주고 사지는 말자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었다. 대신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다른 집으로 보내지는 고양이를 데려 오기로 했다. 그런 고양이들을 중개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등록을 하고 수시로 그곳을 들락거렸다. 하지만 마음이 가는 고양이는 생각만큼 많지 않았고, 또 마음이 간다고 해서 그 고양이를 우리집에 데려올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 생각은 비슷하다 보니 귀엽고 적응 잘 할 것 같은 건강한 고양이는 인기가 많았다. 경쟁은 꽤나 치열했다. 그간 대여섯차례 연락을 넣어보았지만 대부분 답이 없거나 이미 다른 주인을 찾았다는 답을 돌아왔다. 인터넷에 올라 있던 그 고양이는 없지만 다른 고양이는 어떠시냐는 소위 낚시 게시물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과연 분양이 가능하기는 할까 싶어 차라리 전문 브리더에게 돈을 주고 사올까 고민하기 시작하던 바로 그 때. 인기 많은 페르시안 계통의 고양이가 올라왔다. 페르시안이라면 성격이 온순하고 활동량이 많지 않아서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괜찮은 선택지였다. 고양이는 처음인 우리에게는 아기 고양이보다는 좀 큰 고양이가 좋겠다고 생각해왔는데 마침 2살 정도라 그 또한 적당해 보였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인기가 많은 종이라 아마 누군가 먼저 연락을 했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문자를 보내고 잠시 뒤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이라도 고양이를 데려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로 고양이를 받게 된다니 반가운 마음보다는 오히려 겁이 덜컥 났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후회하게 되지는 않을까?’ 심장이 쿵쿵거렸다. 통화중인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간절한 눈빛에 화상을 입을 지경이다. 어쩔 수 없다. “준비하고 기다리겠습니다”, 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 


옷을 입고 함께 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나갔다. 가는 내내 조잘조잘 신이 났고, 발은 땅에서 붕 떠 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수년간의 간절함이 보상받는 감격적인 순간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가게에서 이것 저것 필요한 물건들을 대충 챙겨 나왔다. 당장 필요한 최소한에 최소한으로만 골랐는데도 10만원 정도가 흔적없이 사라졌다. 고양이는 지갑으로 키운다는데 새삼 그 말을 실감했다.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집 정리를 했다. 


밤 9시 반쯤 드디어 고양이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는 모두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멀리 한 젊은 부부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남편은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있었고, 부인은 사료 조금과 고양이 모래 한통을 들고 있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남편이 고양이를 품에 받았다. 순한 아이라더니 정말 그런 듯했다. 발톱을 세우지도 않고 조용히 남편의 품에 몸을 맡겼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자기 주인에게서 버림받는데 이리도 끝까지 순종적이라니. 이 녀석은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잠깐의 인사를 나누고 그들은 사라졌다. 그렇게 2021년 7월 15일 우리집에 고양이가 왔다. 오랫동안 벼르던 일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일이 진행될 줄은 몰랐다. 가장 용감한 남편이 우리 모두를 대표해 고양이를 안고 집으로 올라왔다. 고양이를 든 것은 남편이지만 남은 가족 모두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녀석은 그야말로 얼어붙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옷에서 지린내가 난다고 했다. 지하주차장에서 집까지의 그 짧은 잠깐 사이 녀석은 오줌을 지렸었나 보다. 집으로 올라와 소파 끝 구석진 곳에 고양이를 내려주었다. 아무래도 탁 트인 곳보다는 그곳을 더 편안해할 것 같아서 미리 사료 그릇과 배변판을 놓아둔 곳이다. 


고양이는 바닥에 닿자마자 소파 아래로 숨어들어간다. 당장이라도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녀석은 내려진 바로 그 장소에서 한발짝을 못 움직인다. 우리는 지척 거리의 쇼파에 앉았다. 우리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무심한 척하고 있노라면 아주 조금씩 자리를 이동한다. 그래봤자 1미터를 못가지만 말이다. 그러다 우리가 쳐다보거나 말을 걸면 다시 얼어붙는다. 마치 사물이 된 것처럼 숨도 참는 것 같다. 고양이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사라지게 해주세요. 안보이게 해주세요”, 라며 신께 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양이가 또 이렇게 한걸음 물러나면 우리도 다시 텔레비전을 본다. 정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믿는 척”을 해준다. 삼십 분 가량 그렇게 지냈을까? 우리는 당장 필요하다는 사료, 물, 스크레쳐, 그리고 배변판을 의자 근처 놓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날이 밝아올 앞으로의 몇 시간 동안 거실은 고양이의 영토가 될 것이다. 그렇게   첫날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네가 와서 두근거려. 너는 어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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