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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기 Feb 29. 2024

그래, 너희가 이겼다

나는 동물과 친하지 않다. 겁이 많은 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운 탓도 큰 것 같다. 기억하기로 친척 중 개를 키우는 집이 두어 집 있었다. 하지만 요즘 식의 “반려동물”로서가 아니라 고기나 농사일을 위해 소를 키우듯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키우고 집을 지키기 위해 개를 키우던 집들이다. 개는 모두 집 밖 대문 옆에서 목줄에 매여 살았다. 


이모는 개를 한 마리 키웠다. 어지간히 사나운 녀석이었다. 이모네 집은 외갓집에서 겨우 오분 거리라 명절이면 항상 인사차 들러야 하는 곳이었다. 집이 있는 골목 초입부터 어린 나는 늘 긴장하곤 했다. 이미 낯선 발소리를 듣고 그 악마 같은 개가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손님을 맞기 위해 이모는 항상 대문밖까지 나와야 했다. 그 집안 식구 누군가가 손님을 엄호해 주지 않으면 무사히 그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문에서 집까지 불과 오 미터나 될까, 나는 매번 숨을 참고 전력질주해서 집안으로 뛰어들었고, 등에서는 진땀이 흘렀다. 녀석은 주인인 이모네 식구들에게도 종종 달려들었고, 그럴 때마다 이모는 담벼락에 새워둔 대걸레 자루로 녀석을 제압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산책은 고사하고 평생 마당, 그것도 목줄이 허락하는 작은 반경 내에서 평생을 갇혀 살다 보면 아무리 보살 같은 개라 해도 사람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그 개 덕분에 나는 어려서부터 개가 있는 집에는 절대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엄중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내게 있어 동물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고양이와 제대로 마주친 것은 친한 언니 집에서였다. 복층 원룸에 살고 있던 그녀는 화가. 당시만 해도 정식으로 작품을 팔아 본 적이 없는 학생이었고, 생활비는 원룸에서 개인 레슨을 해서 충당하고 있었다. 집이기도 하고 작업공간이기도 하고 또한 레슨 장소이기도 한 그곳은 당연하게도 각종 물건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설마 하니 그 속에 고양이가 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알았다면 자진해서 들어갈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사실 동물과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들 중 일부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그러지 않을까 지레 짐작하기도 하는 것 같다. “실은 우리 집에 큰 선인장이 있는데 괜찮겠어?”,라고 물어보지 않듯이 “실은 우리 집에 고양이가 있는데 괜찮겠어?”,라는 질문도 무의미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세상에 어떤 이가 고양이를 싫어할 수 있겠어,라는 기본 가정이 깔려 있는 것이다. 털이 날려서 혹은 가구가 엉망이 되어서 등등의 어떤 피치 못할 이유로 고양이를 키우기 힘들어하는 사람은 있어 해도 고양이 자체를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사람이 (심지어 그것도 어른이) 세상에 존재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며 그렇게 언니는 무심히 말했다. 


참, 우리 집에 고양이 있어. 

집에 들어갔더니 희한한 모양의 모래상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냄새는 그다지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청소에 크게 연연하지 않던 그녀의 성격을 떠올려보면 청소를 잘해서 고양이 냄새가 사라졌다기보다는 테레빈유나 물감의 강한 향이 모든 걸 덮어버렸던 것 같다. 차 한잔 하면서 얘기를 좀 나누려고 집을 찾았지만 고양이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그저 안절부절 대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제 공간에 침입한 낯선 이를 탐색하느라 바쁜지 내 주위를 계속해서 맴돈다. 고양이가 근처로 다가오면 나는 가방을 품에 안고 벌떡 일어섰다. 녀석이 본능적으로 나를 탐색하기 시작한 것처럼 나 역시 본능적으로 도망갈 궁리를 한 것이다. 그나마 녀석이 저쪽 끝에 있고 내가 이쪽 끝에 있다면, 그래서 서로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견뎌볼 만도 했다. 따라서 내게 중요한 것은 녀석이 지금 당장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너무 빠르고 게다가 이곳에는 잡다한 짐이 너무 많아 숨을 곳이 너무 많았다. 내 눈은 도저히 고양이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 언니와는 꽤나 오랫동안 자주 보며 지냈지만 다시 내가 그 집을 방문하는 일은 없었다.



세월이 흘러 개나 비둘기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을 정도의 평정심을 갖춘 나는 마침내 동네의 캣카페에 도전해 보기로 한다. 아이들이 진작부터 소원을 하던 곳이었다. 카페는 아주 넓지도 아주 좁지도 않았다. 다만 들어서자마자 커피 향과 섞인 묘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얼핏 봐도 대여섯 마리는 되어 보이는 고양이들이 카페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심지어 한 마리는 카페 주인의 어깨에 올라탄 상태였다. 고양이들은 자기들이 그곳의 주인임을 알고 있는 듯했다. 손님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있어도 그건 고양이로부터 잠시 대여한 것일 뿐 고양이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테이블 위를 활보했다. 그곳의 주인은 자신들이니까. 주문을 하고 아이들에게 음료를 쥐어주었다. 들어가 살펴보니 카페에는 전체 넓이의 절반쯤 되는 곳을 이층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고양이 카페라고는 하지만 일층은 그나마 음료를 먹기 위한 사람이 주가 되는 곳이라면 이층이야말로 본격적으로 고양이만을 위한 곳 같았다. 거기에도 대여섯 마리의 고양이들이 자기들 방식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음료가 나왔지만 아이들은 음료 따위에 관심이 있을 리 없었고, 이미 이층으로 올라간 상태였다. 



나는 혼자 남아 내 몫으로 주문한 커피를 마셨다, 아니 마시려고 했다. 이제 일층에는 사람이라고는 주인과 나 이렇게 둘이다. 나는 고양이들의 타깃이 되었다. 한 놈은 벗어 놓은 내 코트 위에 자리를 잡을 태세였고, 다른 한 놈은 내 테이블과 바로 옆 테이블 사이를 반복해서 점프해 가며 나를 긴장시켰다. 다른 한 놈은 내 가방 속이 궁금한 지 냄새를 맡는다. 참고 참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너 번은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커피 한잔은 다 마시고 일어서자며 스스로를 타일렀건만 결국 나는 자리에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오분 정도를 견디다 커피를 들고 그만 일어섰다. 아직은 때가 아니구나. 



예외가 없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아이들은 동물을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 집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요즘은 인간에게 친숙해진 동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동물 카페는 물론이거니와 집 근처 공원에는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개들은 한결같이 작고 귀엽다. 낯선 이 가 옆을 지나도 어지간해서는 으르렁거리지도 않는다. 그 옛날 이모집에서 키우던 개와는 아예 다른 종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주인에게 사랑을 받고 자라 그런지 사람들 틈이 불편하지 않은 것이다. 큰 아이는 산책길에서 만난 개들에게 자주 인사를 건넨다. 아주 가끔이지만 이글거리는 눈으로 개를 보고 있는 큰 아이가 안쓰러워서인지 어떤 친절한 주인은 자기 개를 소개해 주고 만져보게도 해준다. 아이는 덩치가 크고 털이 북슬북슬한 큰 개를 원했다. <플란다즈의 개> 속 파트라슈처럼 충성스럽고 든든한 친구 같은 개 말이다. 



반면 작은 아이는 늘 고양이 쪽이었다. 말랑말랑한 고무 발바닥을 가진 새침하고 도도한 고양이. 아마 아이는 언젠가 친구들과 놀다 아파트 후미진 곳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를 발견했었나 보다. 아이들은 돈을 모아 사료캔을 사 오고 집에서 물을 떠 와 고양이에게 먹이며 얼마간 고양이를 키웠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고양이는 사라졌는데, 아마 민원이 여러 곳에서 들어오다 보니 관리실에서 손을 쓴 게 아닌가 싶다. 


나는 개나 고양이 그 어느 쪽도 키울 생각이 없다며 처음부터 확실히 선을 그었다. 하지만 엄마가 반대한다고 해서 아이들 마음이 그리 쉽게 접힐 리가 없다. 집에서 도통 어렵다면 동물을 키우는 친구의 집이나 동물카페 등을 찾아다니면 될 일이었다. 큰 아이, 작은 아이 모두 초등학교 고학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그런 방식으로 갈증을 해소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몰랐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쪽이 승리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아이들은 몇 년이 지나도록 희망을 놓지 않았다. 열 번 찍으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더니 언젠가부터는 우리 집에서 당장 키우지는 않겠지만, 너희가 커 독립해 나가면 그때 키워보라며 말을 바꾸기 시작했고, 그럴 때는 이런 종의 개나 고양이가 좋지 않을까 하며 함께 적합한 견종이나 모종을 찾아보기도 했다. 



분기점이 된 것은 코로나였다. 처음에는 이렇게 오랫동안 세상을 뒤집을 줄은 몰랐었다. 몇 달 그러다 말겠지, 설마 21세기에 전 세계가 바이러스 하나에 이렇게 무너질까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이년 재에 접어들었다. 아무래도 가족 외의 사람들과 모이고 만나는 게 어려워졌다. 아이들 학교도 그때 그때 확진자 현황에 따라 등교 여부가 갈렸다. 모두들 집안에 들어앉아 이래저래 쌓인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고 있을 뿐이었다. 그즈음 아이들 친구 중 반려동물을 들여오는 집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외출도 힘들고 친구와 노는 것은 더 힘들고 결국 놀이 친구로 동물이 선택된 것이다. 


나 역시 일 년 넘게 집안에 틀어박혀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절대 안 돼!”를 외치던 내 결심도 어느새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개가 아닌 고양이를 키우기로 한 데는 일단 개를 훨씬 더 무서워하는 내 의견이 좀 더 반영되었다. 마침 이사를 생각하던 참이어서 고양이를 데려오는 것은 이사 후로 하자고 구체적인 시점까지 결정되었다. 돌이켜보니 절대 반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려 오 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아이들과 나의 장기전. 나는 깔끔하게 패배를 선언했다. 


그래, 너희가 이겼다. 이제는 고양이를 찾아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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