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변천 字史
妻(아내 처): 女(계집 녀) + 十(열 십) + 彐(돼지머리 계, =又(또 우)) 주 1)
妻(아내 처)는 여성(女)의 머리 위에 얹힌 무언가(十)를 손(彐(又))으로 만지는 장면이다. 알 수 없는 것은 十의 정체다. 여성의 머리 위에 라면, 머리카락, 비녀, 빗, 가발 또는 가채, 모자 같은 것들이 대략일 텐데, 十자의 모양이나 의미만 가지고는 도대체 그게 무엇인지 가려내기 어렵다.
다행히 갑골자에 답이 있다. 손이 머리 위에서 떨어져 있고, 그 반대편으로 내빼는 여성의 머리에는 하늘로 풀어헤쳐진 머리카락이 그려져 있다.(1) 妻에 대응시켜 보면, 十의 ‘l’은 머리카락, ‘一’은 그 머리카락이 풀어져 펼쳐진 상태의 간략화다. 종합하면, 妻는 여성의 풀어진 머리카락을 남성이 낚아채는 폭력적이고 격정적인 장면의 묘사인데, 고대 중국의 약탈혼이나 강제혼 습속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 옛날 풍습인 보쌈은 그 같은 맥락이다. 妻는 지금 시각에서 보면 분명 야만의 글자다. 방언인 討老婆(토로파, 타오라오프어)는, '아내를 얻다'라는 뜻으로 지금까지도 쓰이는 말이다. 老婆(노파)는 '아내', 討(토)는 '정벌하다'를 의미한다. 야만적인 약탈혼의 흔적이다.
妻의 자형 변천을 보면 시대를 따라 세 가지 변화가 생긴다. 이 세 가지를 통해서, 妻는 약탈과 강제로부터 비로소 해방되어, 혼례와 존중을 통해서 얻어진 여성을 변화하게 된다.
하나는, 손이 머리 위로 올라간다. 머리카락에 엉킨 듯도 하고, 만지는 듯도 하고, 올려놓은 듯도 하다. 쫓아가 붙잡으려는 손이 아니고, 어여삐 보고 아껴서 쓰다듬는 손이다.(2~10)
둘은, 머리 위에 격식이 생기고(2~11) 그중에 어떤 것은 호화로워 지기(6)까지 한다. 우리로 치면, 왕실에 적관(翟冠)이나 가체(加髢), 반가에 화관이나 족두리가 그런 것들일 텐데, 지나친 사치로 흐르고 심한 과시 경쟁을 불러와 폐단이 많았다. 조선 영조의 한 며느리는 가채 때문에 목이 부러져 죽었다 하니…쯧! 고대 중국인들 역시 다르지는 않았을 게다. 주 2)
셋은, 여성의 자세인데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꿇은 무릎은 어떤 굴욕이 아니라, 예의를 갖춘 단아한 자태 정도로 이해된다.
손을 조금 더 보자! 손은 자형 변화 전 과정에서 일관되게 머리 주변을 붙어 다닌다. 그 손의 주인은 여종일까 정인(情人)일까? 부인의 복잡해진 머리 위를 간수하려니 여종이라도 두어야 했을 테니 전자도 그럴 듯은 하지만, 妻를 귀부인에 한정하게 되는 것이 좀 어색하다. 기방에서 생겼다는 '머리 올린다'는 말과, 첫날밤에 새색시 족두리를 벗기는 신랑을 생각해 보면 후자가 맞을 듯 하다.
'머리에 손'!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익숙한 장면이다. 예쁜 여배우 머리 결을 어루만지는 남자 주인공의 부드러운 손길, 영화나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미장센, 굳이 말을 빌리지 않고서도 연심을 고백하는 상투적 로맨틱이다. 그 장면의 역사가 이렇게 유구한 줄은 미쳐 알지 못했다.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다른 여자 머리카락을 만졌다가 곤혹을 치를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역사는 세월을 이유로 사라지지 않는다. 주 3)
사족, 妻는 정실(正室)이고 그 상대어인 측실(側室)은 妾(첩 첩)이라 한다. 辛(매울 신)과 女(계집 녀)를 합친 글자다. 辛은 노예의 몸이나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뾰족한 도구였으니, 妾은 원래는 일반적으로 여자 노예를 가리켰다. 여종들 중에서 주인의 수청을 자주 드는 여자 노예가 생겼을 텐데, 妾은 이들을 한정하여 칭하는 글자로 자의가 바뀐다. 妾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첩이라는 말을 비하할 때 쓰는 이유가 그 글자 속에 이미 숨어 있다.
妾의 별칭이 측실(側室)인 걸 보면, 노예 신분임에도 자기 방을 갖는 복지를 누렸다는 거다. 방이 없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반 노예는 奴(종 노)이나 僕(종 복), 婢(계집종 비)이다.
재미 삼아서 현대적 의의로서의 妻를 만들어 본다. 지아비 부(夫) 보다 감투 하나를 더 올려 쓰고, 남편의 손을 마지못해서 잡아 주는 여성! 그대, 그녀의 머리 결에 손 닿았던 적이 언제인가?
주) 1. 彐의 새김인 돼지머리의 뜻으로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妻에서는 그냥 손 모양이다.
2. 적관(翟冠) : 왕비의 예복에 착용한 관모, 가체(加髢) : 덧붙임 머리. 모두 중국에서 왔다.
3. 머리카락에 대해서는 더이상의 상상을 멈춘다. 풀어헤쳐 산발한 머리는 에로틱으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 19금은 지양한다.
p.s. 다음 한자썰은 化(될 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