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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Feb 16. 2022

[한자썰17] 目, 눈의 직립 진화

그리고, 문명의 기원

目(눈 목)의 갑골자는 그 누가 척 봐도 그냥 눈이다(1, 2, 3). 눈꼬리가 실감 나게 날카롭고 동공이 부라림이 선명하다. 目은 그 갑골 눈을 직선과 장방형으로 바꾸고 횡에서 종으로 세웠을 뿐이지, 그래도 여전히 그냥 눈이다. 전국시대와 소전을 지나면서, 目은 직립한다(4, 5, 6, 7). 그람마 에렉투스(Gramma Erectus)한 것이다. 눈이 세로로 선 영장류를 본 적이 없거늘, 이 무슨 조화라는 말인가? 주 1)


(출처) 百度百科, www.baidu.com

글자는 뜻을 잘 나타내기도 해야 하지만, 쓰기에도 편해야 한다. 이것은 글자가 사회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너도 나도 쉽게 알아보고, 쉽게 쓸 수 있는 글자라야 유용하고, 그럼으로써 그 글자는 살아남는다. 또한, 양자 사이에 적절한 균형도 중요한데, 상황에 따라 그 균형은 달라진다. 모양과 상징을 통해 뜻을 갖는 표의문자인 한자는 특히 더 그런데, 글자의 ‘쉽게 알기’와 ‘쉽게 쓰기’의 우선순위가 급 반전한 目은 그 전형이다.


갑골자를 거북 등껍질이나 소뼈에 새기려면 단단하고 예리한 도구를 써야 했다. 그러니, 갑골의 표면이 거칠고 결이 나있지만, 글쓰기에 큰 방해가 되지는 못한다. 따라서, 글자 획이 가로냐 세로냐, 직선이냐 곡선이냐가 거의 무차별하다. 갑골자가 사물의 원형에 가깝게 상형(象形)할 수 있었던 이유다. 쉽'게' 알'아' 볼 수 있는, 目의 갑골자(1, 2, 3)가 그렇다.

전국시대에 들어서 죽간(竹简)과 붓(毛笔)이 일반화되면서 한자 자형에 일대 변화가 일어난다. 대나무의 세로 결에 부드러운 붓이 거슬리다 보니, 가로보다 세로획이, 곡선보다 직선 모양이 글씨 쓰기에 보다 수월 해진다. 죽간은 대나무를 세로로 좁게 쪼개서 만들어 지니 기본적으로 가로 획이 많고 길면 불리하다. 세로 획은 붓이 잘 미끄러져 모양까지 바르다.


한편으로, 진시황의 문자 통일도 영향을 미쳤을 게다. 표준화 측면에서, 똑 같이 다시 그리기가 어려운 곡선보다, 직선이 훨씬 유리하다. 진의 소전(小篆)은 여전히 곡선이 많지만, 글자의 전체 골격은 직선을 기본으로 한다(7). 갑골자의 '누운 곡선 눈'이 '직립 직선 目'으로 변신한 사연이 그렇다. 한대에 이르러서 결이 없고 매끈한 종이가 발명되지만, 문자 통일의 결과로 중국 전역에 퍼지고, 오랜 사용으로 익숙해진 직립 한자가 다시 눕는 일은 없었다. 쉽'게' 쓸' 수 있는, 目(4, 7)이 그렇다.


사족, 지구 상에 현존하는 200여 종의 영장류 중에 눈을 멜라닌으로 염색하지 않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그래서, 인간만큼 흰자위가 넓은 눈을 가진 종이 없다. 주 2)


이 특징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이 어디를 보는 지를 금방 알아차린다. 그뿐만 아니라, 넓은 흰자위에 둘러 싸여 또렷해진 동공은, 그 움직임과 빛깔, 크기를 이용해서, 그 사람의 내밀한 감정과 깊은 속내를 아무 여과 없이 드러낸다. 눈치라는 말이 괜히 생겼을 리 없다. 눈은 인간들에게 신속하고 거짓 없는 고효율 정보전달 장치다.


인간만이 고도의 문명을 성취한 것은, 협력과 소통에 유독 뛰어났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은 그 협력과 소통을 위한 와이파이 역할을 담당했다. 침팬지의 포커페이스 눈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눈썹 뼈가 발달해서 눈이 깊고 어두운 호모 에렉투스가, 머리 크기가 작고 체구도 왜소한 호모 사피엔스에게 멸절당한 비밀이 이 눈에 숨겨져 있을 수 있다. 넓은 흰자위와 또렷한 동공을 강조한 目자는, 선인들이 후대에 남긴 인간 생존과 문명 발전의 전략 코드다.


"만약 우리가 서로의 눈을 바라볼 수 없다면 인간의 우정과 로맨스가 얼마나 달라질지 상상해 보시라!"


주) 1. 그람마(Ggramma): '글자'의 라틴어. 글자의 변화는 생물진화를 닮았다. 글자를 쓰는 사람이 많으니 다양한 변화(이)가 생기기 마련이고, 당시의 문화와 기술 환경 속에서 적자생존한다. 그러니, 호모 에렉투스처럼 그람마 에렉투스라 할만하지 않은가!

2. "휴먼카인드(Humankind), 뤼트허르 브레흐만" 114~115쪽 참조 또는 인용. 이기적 인간에 대한 많은 해석과 연구, 이론들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허위의식일 수 있으며, 인간은 본질적으로 협력하고 소통하도록 진화되어 온 사회적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엄청 노력한 명저.


p.s. 다음 한자썰은 風(바람 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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