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가는 대로 허우적 거려본다.
내가 인터넷 사이트 ‘다음’을 보다 ‘브런치스토리’를 알게 되었다. 유명 작가가 아닌 개인들이 쓴 글이었다. 어쩜 다들 눈에 쏙쏙 들어오도록 쓰는지 대단했다. 언젠가부터 가슴속에 품고 있던 것들을 글로 토해내고 싶었다. 이런 내게 그들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눈을 크게 뜨고 여기저기 기웃거려 봤다.
나는 컴퓨터로 문서작성, 수업자료로 쓰기 위한 파워포인트 만들기 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더 섬세함을 요구하는 것은 아직도 버벅댄다. 언제든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교무행정사님, 정보 선생님이 가까이 있어서다. 지금까지 노력하지 않았던 난 반성한다. 굳이 변명하자면 그냥 퇴직하면 그럭저럭 늙어가려고 해서였다.
하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갈망이 게으른 날 이겼다. 용기를 내 ‘브런치스토리’에 작가 신청을 했다. 길게 안내하는 글을 읽어봤지만, 도무지 해석되질 않았다. 마음만 앞서서였다. 무작정 신청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냥 글이면 된다는 생각에…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가족들과 친구들 응원이 한몫했다. 특히 딸아이와 사위가 열심히 성원했다.
난 약 27년 동안 아침 해를 바라보며 출근한다. 오늘 아침 산등성이에 걸린 아침 해를 바라보다 오래전 썼던 글이 생각났다. 나와 점점 멀어져 가는 딸아이가 속상해서 주절주절 썼던 글이었다. 딸아이도 ‘못된 엄마’ 때문에 힘들었다 한다. 사실, 딸아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곳으로 이사한 후 둘 다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생각해 보니 딸아이가 더 힘들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아빠’때문에.
어렸던 딸이 이제 결혼도 했다. 그때의 엄마를 이해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듯하다. 변화도 있다. 보호자였던 내가 사위와 딸에게 보호받고 있다. 기분 좋은 역전이다. 덕분에 난 새롭고 더 신난 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나는 사춘기보다 더 무섭다는 갱년기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힘을 빌려 딸아이에게 말해야겠다.
"나도 너만큼 힘든 시간이었다. 나도 너 눈치 많이 봤거든. 이제 우리 눈치 보지 말고 할 말하면서 살자!"
다음은 ‘좋은 생각’에 실렸던 글이다. 원본은 사라지고 책자만 남아있다.
< 당신의 기일 >
여보! 어제 당신을 위해 차려놓은 음식, 맛보셨나요? 제가 정성스럽게 준비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굳이 변명하자면, 당신을 만나는 날이 가까워지면 이상하게 기운이 없답니다. 며칠 전부터 온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힘들었어요. 어쩌면 그때 당신 곁을 지키면서 제대로 먹지도 잠들지도 못하고 쪼그리고 앉아있던 탓은 아닐까요.
어제 상에 올렸던 사진은 마음에 들었나요? 서방님 표정이 안 좋았지만 제가 지방 대신 사진을 놓자고 고집부렸어요. 사진 속 당신은 아직도 서른 중반인데 그 앞에 서 있는 전 사십 대, 중년의 아줌마네요. 파릇파릇한 보리 순처럼 통통 튀던 제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면 이젠 잊어주세요.
어제는 좀 소란스러웠지요? 친정 동생들이 아이들을 데려왔거든요. 당신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어요. 당신과 함께한 추억들을 나누며 우울한 제사가 아닌 훈훈한 축제 분위기 만들어 보려고 했는데, 서방님은 너무나 슬프고 엄숙한 표정으로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더군요. 혹시 그때 당신도 우리 곁에 와 계셨나요? 당신 손이 내 어깨 위에 닿았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뿌옇게 흐려진 두 눈으로 당신 사진을 바라보던 저를 알아보긴 했나요?
어제는 당신 딸을 뚫어지게 바라만 보고 가셨는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이 떠날 때 겨우 여덟 살이던 아이가 벌써 열여섯 숙녀가 되어가요. 사춘기를 겪고 있는 올해는 어느 때보다 유난히 지켜보기 힘들어요. 사랑하지만 상처도 주고받는 우리 모녀가 어떤 표정으로 당신 앞에 서 있던가요? 당신 힘을 빌리고 싶었는데, 너무나도 간절하게 바랐는데, 혹 당신은 그런 제 마음을 아셨나요?
당신이 내 곁을 떠난 지 벌써 8년. 이제는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정말 당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안락함’ 속에서 평화롭게 쉬세요. 이제는 먼저 떠난 당신을 원망하던 마음 모두 접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우리가 그리우면 슬쩍 우리 머리맡에 다녀가세요. 그곳에서 지내시다 우리가 부르면 또다시 사진 앞으로 와서 앉으시고요. 그러고는 두 손 크게 벌려 우리를 포근히 안아주세요. 다음에 더 좋은 곳에서 만나자고 인사하면서요. 이제 다시 그곳으로 떠났을 당신, 안녕. (2004년 6월호.)
오늘 퇴근 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동안 투고했던 글들이 생각 나서다. 책꽂이 어딘가에 꽂혀있을 자그마한 책자를 찾아 정리해야겠다. 나의 글쓰기는 계속 진행될 것이다. 이런 나에게 난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