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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공주 Nov 09. 2023

그녀, 음악선생님

사람을 살아있게 하는 힘은 사람이다.

 1997년 서른일곱이던 난 전남 여수에 있는 특성화고등학교 보건교사로 재취업했다. 60 학급 약 2,700명 학생과 교직원 120명이 있는 사립학교다교직원 연령대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다이동이 없는 사립학교 특성상 교직원들은 가족 같았다전교생이 많은 만큼 보건실 드나드는 아이들도 넘쳐났다다행히 보건실 위치가 교무실 앞이라 여러 선생님이 도와주었다

 첫 출근이 엊그제 같은 내년 2월이면 정년퇴직이다그동안 학교는 조금씩 변했다삭막하던 교정이 꽃과 나무들로 채워졌다먼지 풀풀 날리던 운동장은 인조 잔디를 덮어 파릇파릇하다그와 달리 학생학급교직원 숫자는 줄었다여전히 변치 않은 것은 교직원들의 끈끈함이다나는 친분을 나누던 선생님 중 절친도 생겼다. 


 음악 선생님인 그녀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최우선인 친구다그녀는 아나운서처럼 명확한 발음과 맑은 목소리를 가졌다학생을 지도할 때도 노래하듯이 부드럽게 이야기한다학생과 교직원은 그런 그녀를 존경하면서 따른다나도 다정한 그녀에게 서서히 젖어들었다. 우린 가끔 퇴근 후 포도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틈틈이 두서없는 글을 쓰던 난 그녀에게 읽어주기도 했다내 어깨를 두드리며 계속 써보라며 응원을 해줬다방학이면 국내 여행을 하며 30대 이후 만난 우리의 우정을 과시했다자연스럽게 가족들까지 친해졌다그녀 남편은 우리를 시샘하듯 말했다.

 “여자들 우정도 남자 못잖게 진하구먼두 분 사이가 부러워

 광주광역시의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인 그녀 남편은 2021년 2월 정년퇴임했다. 주말부부인 그 둘은 여수에 살림을 합쳐 두 번째 신혼을 맞이한 듯 깨가 쏟아지고 있다그녀 남편은 자칭 김 주부’가 되어 집안 살림을 맡았다종종 그녀를 통해 당신이 만든 음식을 내게도 배달해 준다난 그 둘의 사랑에 점점 더 몸과 마음이 풍성해지는 중이다그녀는 여전히 나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고 있다나는 보답하고자 하지만 받은 사랑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난 늘 가슴속에 품고 있는 것들을 글로 정리하고 싶었다큰 용기를 내 얼마 전 순천대학교 평생교육원 일상의 글쓰기 수필창작 교실에 참여했다제멋대로인 글을 제대로 쓰고 싶은 내게 필요한 수업이었다난 흩어져진 것들을 모아쓰기 시작했다정리되지 않은 글이지만 교수님 조언대로 무조건 써 내려갔다생각들이 글로 써질 때 기분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2020년 4월 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으로 시작된 원격수업을 위해 교육부에서 노트북이 지급되었다. ‘노트북은 때와 장소 구분 없이 즉시 사용하기에 편한 기기다교육부 재산인 이것이 글을 쓰는 나와 함께했다.

 하지만내년 2월 퇴직과 함께 반납해야 한다

 그녀는 수필 교실을 다니면서 들뜬 얼굴로 글을 쓰는 나에게 멋지다내 친구!”라며 격려했다상대의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칭찬하는 사람이다.

 며칠 전 출근한 나를 새 노트북이 반겼다너무 놀랐다사고 싶어 여기저기 찾아보는 중이었는데, 내 책상 위에 있었다. ‘띵동!’ 소리와 함께 문자가 왔다

 ‘예전부터 말하고 싶었어네가 글을 쓰고 나에게 읽어줄 때 표정이 정말 사랑스러웠거든몰랐지이 노트북으로 원 없이 글을 써봐요즘 수필 수업 다니면서 더 활기차고 행복해 보이더라그런 널 바라보는 나도 즐겁고 좋아알지내 마음수필 수업 후 네가 읽어주는 글을 듣다 보면 생선살이 점점 차올라 맛있어지는 느낌이야축하해발전하고 있는 내 친구 김 작가님!’ 

 아침부터 난 울었다상대를 관심 있게 따뜻한 눈으로 지켜보는 그녀였기에 가능한 선물이었다흐르는 눈물 말고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았던 날이다.   

  

 나는 사람을 살게 하는 가장 큰 힘은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벼랑 끝에 몰려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그 손을 잡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살아갈 힘이 생김을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어려운 문제에 부딪힌 나를 보면 그녀는 항상 손 내밀어 잡아준다따뜻한 그 손을 놓치지 않으려 난 힘을 내 살고 있다부족한 나를 끊임없이 채워주는 그녀의 사랑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음악실에서 피아노 소리와 함께 그녀 목소리가 들린다

 “Time to say goodbye~~” 

 변성기 지난 남학생들의 굵고 묵직한 목소리가 따라온다.

 “타임 투 세이 굿바이~~” 

 세계적인 테너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와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이 부른 듀엣곡이다이탈리아어인 ‘Con te partirò’는 너와 함께 떠나자라는 의미로 보통 졸업식이나 결혼식 같은 새 출발을 축하하는 곡이다영어로 제목을 바꿔 독일 유명 복서인 마스케의 마지막 경기 후 고별 곡으로 쓰였다. 그 후 ‘Time to Say Goodbye’라는 영어 제목 탓인지 이별을 슬퍼하는 대표적인 곡이 되었다문득 내년 2월 퇴임식을 할 내 모습과 음악실에서 피아노 치는 그녀노래하는 학생들이 그려진다난 벅차오르는 감정을 ’ 누르며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해본다

 “그녀음악 선생님 고맙습니다.”   

https://youtu.be/DuvZH8TipME?si=jhcfd1rIWwt-M3SS  

<youtube: TIME TO SAY GOODB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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