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기와 더위대신 마른바람이 부는 날입니다.
I' ll be back을 외치며 브런치를 닫은 지가 벌써 16주, 112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설렘이 더위와 폭우를 따라가고 두려움만 남길래 잠시 문을 닫았는데. 감히 학창 시절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장기 결석생이 돼버렸습니다. 그래도 용기 내어 브런치 문을 두드려봅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쑥스러움 꽉 찬 장기 결석생이 되어 편지를 쓰려하니, 제가 담임일 때 갖가지 이유로 결석하던 아이가 떠오릅니다. 가출한 녀석을 부모님과 친구들이 찾고 또 찾아 기어이 결석생 딱지를 떼게 한 첫날. 녀석은 쭈뼛거리며 교실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 녀석에게 학급 아이들은 박수로 환영을 했고요. 당황하며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른 녀석을 제 특기인 환한 미소로 안아줬습니다. 그날 녀석은 점심도 굶고 교실에서 종일 잠만 잤습니다. 종례를 마친 저를 따라오며 오늘 하루만 방과 후 수업을 빼 달라던 녀석을 저는 운동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제가 손을 잡자 녀석은 뿌리쳤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순순히 놓아줄 사람은 아니라, 녀석 팔짱을 끼었습니다.
“너도 나이 들어봐. 혼자 걷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 거다. 지금 쌤이 넘어질 것 같아서 그러니깐 좀 봐주라.”
제 손을 뿌리치고 양손을 바지 호주머니에 넣고 걷던 녀석이 팔짱은 허락하더군요. 녀석과 저는 팔짱을 낀 채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운동장을 내려오면서 오늘 하루 애썼다며 녀석의 등을 두드려줬습니다. 하교 인사를 하는. 녀석에게 B4 용지 2장이 들어있는 봉투를 줬습니다. 11포인트로 학급 아이들과 저에게 할 말을 적어 오라며 녀석의 두 손을 잡고 흔들었습니다. 컴퓨터로 써오고 싶다는 녀석에게 손 글씨만 허락한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등교 시간. 녀석은 학교 근처 경찰서 화장실에서 다급한 목소리로 저에게 전화했습니다.
“쌤, 배가 너무 아파서 버스에서 내려 경찰서 화장실에 왔습니다. 곧 가겠습니다.”
아마도 가출에서 돌아와 다른 애들과 같이 등교하는 게 멋쩍어서였을 겁니다. 조회 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교실로 들어와야 함을 강조하면서. 저는 녀석과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경찰서 화장실로 보내줬습니다.
결석을 마치고 등교 이틀째이던 날. 저는 녀석에게 국어 교과서를 그대로 옮겨 적은 B4 용지 2장과 가나 초콜릿을 받았습니다.
제가 지금 그때 그 녀석 마음입니다. 브런치 문을 다시 열긴 했는데 112일 동안 잊고 있던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텅 빈 가슴과 머릿속은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굳어진 손가락은 어떻게 풀어야 할지. 그렇다고 녀석처럼 경찰서 화장실을 찾아갈 수도 없고….
저는 미꾸라지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설렘을 두고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부터 브런치 식구들과 함께 저에게 찾아왔던 두려움을 털어내며 다시 설레보려 합니다. 이런 저와 친구가 되어주시겠습니까?
개근상을 놓쳐 아쉽기는 하지만, 저도 그 녀석처럼 빛나는 졸업장은 받고 싶습니다. 오래간만에 쓴 편지라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다음 주부턴 지각하지 않고 제시간에 반가운 문을 열고 찾아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25년 11월 마지막 목요일 아침 뱃살공주 드림.
추신: 이 편지는 영국에서 유래된 행운의 편지가 아니 오니 7명에게 보내진 말아 주십시오.^^